[인터뷰] 조승우, 미슐랭 ★★★같은 배우 같으니라고!

입력 2015-11-30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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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가이드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레스토랑의 정보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며 등급에 따라 별점을 매긴다. 별이 하나면 요리가 특별히 훌륭한 집, 두 개면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 찾아갈만한 집, 세 개면 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집으로 구분하고 있다.

연기에 관하여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믿고 보는 배우’의 기준이 있다면 조승우는 ‘미슐랭 쓰리 스타’ 같은 배우가 아닐까. 영화 ‘클래식’, ‘말아톤’, ‘타짜’, ‘퍼펙트 게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헤드윅’,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닥터 지바고’, ‘맨 오브 라만차’ 그리고 드라마 ‘마의’, ‘신의 선물-14일’ 등 안정된 연기력으로 믿고 보게 만드는 조승우는 이미 뮤지컬계에선 독보적인 관객층을 형성하고 있다. 오직 그를 보기 위해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 구매)’을 한다’는 소리도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 조승우가 출연한 영화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맴돈다. 2012년 ‘복숭아나무’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조승우의 ‘내부자들’이 흥행 청신호를 켜고 달리는 중이다. 그의 연기를 보기 위해 관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개봉 3일 만에 100만, 6일 만에 200만 관객수를 돌파했고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는 중.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서의 기록을 깨고 있다. 인터뷰 당시 “내 스크린 기록은 썩 좋지 않다”고 말했던 그가 무대 연기에 이어 이젠 스크린 연기도 점령할 기세다.

처음 이 작품을 제안 받았을 당시 그는 세 번이나 거절했다. 조승우가 맡은 검사 ‘우장훈’ 역을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었다. 제작보고회나 언론시사회 당시 “외모적으로 안 어울릴 것 같아 출연 고사를 했다”고 한 바 있다.

“막내이모부가 검사 출신이셨어요. 부드러운 인상이지만 카리스마가 있으셨죠. 그래서 어릴 때 봤던 이모부의 우직함을 내가 표현할 수 있을지 걱정된 게 사실이에요. 오히려 제가 영화에 폐를 끼칠까봐 출연을 고사했어요. 역할이 어울리지 않아서 에너지를 제대로 낼 수 없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우민호 감독은 ‘조승우’라는 카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감독님은 내 분량이 적어서 안 한다고 한 줄 아셨나보더라. 대본을 계속 수정해서 가지고 오셨다. 절대로 그런 게 아니었는데”라며 “게다가 제가 이 작품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에서 더 난리였다. ‘도대체 왜 안 하냐’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계속된 추천에 곰곰이 생각해 본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감독님의 삼고초려에 설득 당한 거죠.(웃음) 근데 솔직히 조금 기분 좋기도 했어요. 이병헌 선배나 백윤식 선생님 같은 쟁쟁한 분들이 계신데 저 같은 배우가 뭐라고. 제가 한류를 이끄는 스타도 아니고 요즘 말하는 ‘국위선양’하는 배우도 아닌데 감독님께서 ‘승우 씨 말고는 아무런 대안이 없습니다’라고 하시니 감사할 따름이었어요. 배우는 언제나 선택 당하는 사람이잖아요. 선택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배우도 사람인지라 가끔 ‘승우 씨를 생각하며 썼어요’라고 하시면 내심 기분이 좋답니다. 하하.”

출연을 결정한 만큼 그는 차곡히 캐릭터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살을 빼기도 해보고 찌워보기도 하며 캐릭터에 어울리는 모습을 찾았다. 게다가 검사 ‘우장훈’은 원작 웹툰에서도 없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조승우 스스로 인물을 찾아내야 했다. 어려운 작업임에는 틀림없었지만 그는 즐거웠다. 조승우는 “오랜만에 영화 촬영이라 재밌었다. 더 찍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즐거워서 후유증도 좀 남았다”라고 말했다.

“저도 ‘미생’만 봤을 뿐 ‘내부자들’은 보지 못했어요. 없는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반면에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사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제가 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이)병헌 선배나 백윤식 선생님이나, 대명이까지…주고 받듯 연기를 하며 ‘우장훈’을 탄생시킨 것 같아요. 뚝심 있게 성공하고 싶어하는 인물이고 정의로움만 내세우기 보다는 성공을 위해선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단순화 시켜서 접근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웃음)”


오랜만에 영화 복귀도 좋았지만 간만에 ‘현시대’ 사람을 연기해 신선하기도 했다. 그동안 ‘돈키호테’나 ‘지킬 앤 하이드’ 그리고 지금은 ‘베르테르’까지 과거를 배경으로 한 인물들을 소화한 그였다. ‘내부자들’에서 수트와 넥타이를 매고 A4용지를 들고 다니니 기분이 남달랐다. 그는 “나는 낭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저는 과거를 정말 좋아해요. 성향이 ‘올드’하고 ‘빈티지’해서 옛날이야기, 시대의 낭만을 좋아해요. 스크린을 봐도 옛날이야기를 연기하는 제 얼굴이 더 마음에 들고 좋아요. 요즘은 휴대폰으로 간단하게 문자를 보내지만 저는 손 편지 쓰는 게 더 좋아요. 그래서 뭔가 애달픈, 쉽지 않은 것들이 끌리는 것 같아요. 이번 영화는 낭만적이진 않지만 우장훈이 어릴 때 살던 집은 정말 좋았어요. 그 장소가 담양에 있는 서점이래요. 도시에서 큰 서점을 하셨던 사장님이 책을 처분할 수 없어서 산 속에 건물을 조악하게 지어놓고 책을 옮기셨대요. 그 때 촬영할 때 나던 책 냄새가 정말 좋았어요.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죠.”

평소 팬이었던 이병헌과의 호흡은 안성맞춤이었다. 조승우는 이병헌에 대해 한참이나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는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이병헌이기에 어깨에 꽤나 힘은 들어가 거들먹거리지 않을까 우려도 했지만 기우였다. 조승우는 “오히려 영화만 아는 ‘바보’에 가까웠다”라고 이병헌에 대해 표현했다.

“주구장창 영화이야기만 해요. 오죽하면 ‘지겹다. 딴 이야기 좀 해라. 형은 영화에 한 맺혔어?’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현장에서도 자기 촬영 끝나면 모니터 앞에만 앉아있어요. 끊임없이 자기 연기를 지적하고 고치는 것 밖에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만날 ‘노인네 배우’라고 놀렸어요. 사실 대선배라 어떻게 친해질지 고민을 많이 했죠. 병헌이 형도 낯을 많이 가려서 제가 먼저 다가가야겠더라고요. 일부러 집에도 놀러가고 ‘커피 타 와’, ‘밥 좀 줘’라면서 많이 부려먹었어요. 그러면 ‘이게 형한테 뭘 자꾸 시키냐’면서 핀잔을 주면서도 다 해요. 진짜 바보예요.(웃음)”

‘내부자들’ 홍보 외에도 그는 현재 뮤지컬 ‘베르테르’(제작 CJ E&M)에서 타이틀롤을 맡고 있다. 조승우가 출연하는 작품은 언제나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에 대한 부담감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기분 좋은 말이다. 배우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하지만 제 실력보다는 99% 운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제겐 과분한 칭찬이에요. 이렇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제 실력보다는 운이 좋아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선택’당하는 입장인 배우에게 좋은 작품이 왔고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중압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건 연습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티켓이 판매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요. 표가 벌써 다 팔렸다는데 제가 과연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죠. 기쁨과 고통이 수반되고 설렘과 부담이 동시에 찾아와요. 그래서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요. 이번 ‘내부자들’도 관객들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해요. 제가 스크린 성적은 뮤지컬처럼 좋진 않아서.(웃음)”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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