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과실에 꺾여버린 ‘리듬체조의 꽃’

입력 2015-12-0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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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체조선수들에 대한 무관심, 체조계의 허술한 행정관리가 오직 올림픽 무대를 바라본 이다애의 꿈을 꺾어 버렸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세계선수권에서 이다애는 공정한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지금은 무의미한 태릉선수촌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이다애가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혼신의 볼 연기를 펼치고 있는 모습. 스포츠동아DB

■ 이다애, 올림픽 꿈 좌절 ‘형평성 논란’

세계선수권 3종목 출전해야만 점수 인정
손연재·천송이 4종목, 이다애 2종목 배정
체조협 규정 미숙지로 올림픽 기회 박탈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이뤄지는 여인의 우아한 몸놀림과 표정 연기. 리듬체조는 하계올림픽의 꽃이다. 한국에선 ‘요정’ 손연재(21·연세대)가 유일하게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9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2015세계리듬체조선수권대회에서다.

그러나 손연재 홀로 모든 것을 일굴 수는 없다. 묵묵히 함께 땀 흘린 동료들이 있었기에 훨씬 값진 결실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서글픈 스토리가 담겨있다. 똑같이 노력했음에도 좌절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이다애(21·세종대)와 얽힌 이야기다. 실력이 부족해서라면, 또 열정이 없어서라면 충분히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지만, 동등한 기회조차 얻지 못했기에 그로 인한 상실감과 좌절감은 대단했다. 올림픽, 아니 프레올림픽 출전이라도 바라보고 준비한 지난 수년의 시간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행정 과실에 의한 기회 상실

이다애는 4월 18일과 7월 19일, 2회에 걸쳐 진행된 리듬체조국가대표 1·2차 선발전에서 합계 124.125점으로 2위에 올랐다. 특히 이 선발전이 중요했던 것은 올림픽 쿼터가 걸린 세계선수권대회 출전(3명) 여부가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선발전 1위는 125.225점의 천송이(18·세종고)가 차지했고, 선발전 합계 5위였지만 대한체조협회 추천을 받은 손연재가 남은 1장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세계선수권대회 진행방식이다. 국가대표선수 3명이 10종목(곤봉3·리본3·후프2·볼2)을 나눠 소화하는데, 개인종합 점수로 인정받기 위해선 한 선수가 3종목 이상 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러시아와 벨라루스 등 대부분의 리듬체조 강국들은 3명이 각각 4개, 3개, 3개 종목을 출전하도록 안배하고 있다.

한국의 선택은 달랐다. 대한체조협회는 손연재와 천송이가 4개, 이다애는 2개 종목에 나서도록 했다. 이는 곧 아무리 잘해도 개인종합 점수를 얻지 못한다는 의미다. 기본적 요건을 채우지 못한 이다애는 올림픽은커녕 프레올림픽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출전종목 배분이 4-4-2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이다애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자, 체조협회에서도 4-3-3 분배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체조협회 고위 관계자는 “선수가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국제체조연맹(FIG) 대회운영 규정에 따르면, 세계선수권의 경우 선수 3명의 명단을 대회 5개월 전 임시등록한 뒤 3개월 전 최종등록하고, 1개월 전에 종목별 지명 리스트를 넘기게 돼 있다. 이다애 측과 체조협회가 논의한 시점은 8월 25일이었고, 세계선수권대회 종목별 리명 리스트 제출 마감일은 8월 24일이었다. FIG에서 “변경할 수 없다”는 답변을 해온 것은 당연했다. 불과 하루 차이로 이다애는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 확률이냐, 공정성이냐

물론 이다애가 출전한다고 해서 올림픽 티켓을 확보했으리란 보장은 없다. 다만 분명한 점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결정이었다는 사실이다. 올림픽 쿼터가 주어지는 무대는 세계선수권대회가 유일했다. 선수 1명이라도 더 기회를 얻었어야 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최종등록을 마감한 시점까지도 아무런 사전 공지를 접하지 못한 이다애는 자신이 2종목에만 출전하게 됐다는 사실을 체조협회와의 미팅 직전에야 인지했다.

체조협회 관계자는 “종목 구성은 국가대표 선발전 순위가 기준이다. 1∼2위가 4개, 3위가 2개 종목을 뛰도록 해왔다. 개인종목은 3종목 점수 합산이므로 1명이라도 더 (올림픽 출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경기력향상위원회가) 이런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례적으로 그렇게 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관계자의 설명은 조금 잘못됐다. 선수 3명이 뛰어야 할 종목이 10개로 줄어든 것은 재작년부터다. 당시 FIG는 3명이 4-4-2로 뛰게 했는데, 올림픽 전년해인 올해 초를 기점으로 4-3-3 채택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따라서 체조협회가 기본 룰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일단 체조협회는 특정 선수가 불이익을 받게 됐다는 부분에는 확실히 동의했다. “(이다애의 상황을) 알고서 3종목을 추천하기로 했는데, 이미 시기가 늦었다. 리듬체조 지도자들에게도 이를 알렸다. 불합리한 판단이라고 의견이 사전에 제기되면 미리 시정할 수 있었는데, 그런 이의가 나온 적도 없었다”면서 “앞으로는 규정을 바꿔서라도 전체 선수들이 균등한 기회를 부여받는 게 옳다고 본다. 어떤 것이 선수들에게 가장 좋은 방법일지 깊이 연구하고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가대표로서 최대 목표로 삼은 꿈이 좌절된 이다애는 지금도 태릉선수촌을 오가며 훈련하고 있다. 이유가 기가 막히다. 그저 훈련일수를 채우기 위해서다. 손연재와 천송이가 동유럽 전지훈련을 진행 중인 가운데 이다애는 국내에 머물고 있어 무의미하게 태릉선수촌을 왕복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리듬체조계의 처사는 공정하지 않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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