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리거 박병호·김현수 멘탈이 달랐다

입력 2015-12-2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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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박병호-볼티모어 김현수(오른쪽). 사진|스포츠코리아·스포츠동아DB

최악의 상황에서 포기 않는 정신력
좌절·시련 극복하고 ‘ML 꿈’ 이뤄


세계 최고의 리그, 꿈의 무대에서 만났지만 박병호(29·미네소타)와 김현수(27·볼티모어)가 걸어온 야구인생은 전혀 다르다. 1차지명과 신고선수 입단, 기나긴 2군 생활과 화려한 20대 초반 등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박병호와 김현수는 교집합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정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과 메이저리그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김현수는 24일(한국시간) 볼티모어와 계약한 뒤 25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홈구장 오리올파크를 직접 찾았다.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입단식도 못해본 선수였는데…”라며 혼잣말을 했다.

2006년 2월 고교를 졸업한 야구선수들 중에는 큰 주목을 받는 유망주가 많았다. 류현진(LA 다저스)과 강정호(피츠버그)가 대표적이며, 한기주(KIA)는 당시 청소년대표 에이스였다. 이재원(SK), 차우찬(삼성), 민병헌(두산), 김영민(넥센) 등은 1차 또는 1∼2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청소년대표 출신 김현수는 그 어느 팀에도 지명 받지 못했다. 결국 큰 수모 속에 신고선수 입단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김현수는 2007년부터 두각을 드러냈고, 2008년부터 KBO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다. 그리고 올해까지 거의 매해 전 경기 출장에 도전하며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줬다.

성남고 시절 최고의 거포로 주목받은 박병호는 2005년 LG의 1차지명을 받고 3억3000만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에 데뷔했다. 그러나 2010년까지 ‘1.5군 선수’라는 둘레는 벗어나지 못했다.

좌절과 시련의 시간이 길었어도 박병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2012년 넥센에서 개막전 4번타자를 맡자 “지금은 내가 리그에서 가장 약한 4번이지만 3년 안에 맨 앞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고 말했고, 1년 만에 독보적인 4번이 됐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전 경기 출장을 달성했고, 올해도 4번으로 개근을 노릴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발휘하며 빅리그 도전을 착실히 준비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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