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원년 에이스’ 황규봉, 별이 지다

입력 2016-01-2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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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원조 에이스 황규봉이 18일 6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프로야구 출범 원년인 1982년 15승11패19세이브포인트, 방어율 2.47로 역투했다. 다승 공동 2위에 올랐고, 원년 구원왕을 거머쥐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대장암 투병끝 63세 일기로 별세

경북고 시절부터 에이스였던 특급 투수
1973년 亞선수권 호텔 화재로 허리 부상
한국화장품서 재기·프로야구 원년 15승
뒤늦게 별세소식 전해져 야구계 안타까움


또 하나의 별이 졌다. 프로야구 원년 삼성의 에이스로 활약한 황규봉 전 삼성 코치가 대장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 뒤늦게 소식을 접한 야구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18일 오전 6시30분 6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발인은 20일 오전, 장지는 고향인 경북 성주의 선산이다.

대구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장례식장 빈소를 지킨 매제(손아래 누이의 남편)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11월 병원 검진을 통해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곧바로 입원해 치료를 시작했지만 이미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전이돼 있어 결국 두 달 만에 눈을 감고 말았다.

고인은 그동안 야구계와 연락을 끊고 살아 사망 소식을 대부분의 야구인들도 몰랐다. 1989년 삼성 코치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뒤 지인과 동업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나, 순탄치 않았다. 연이어 사업에 실패하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해졌다. 그러면서 야구인들과 교류도 끊었고, 가족과도 헤어진 채 부산에서 홀로 살아왔다.

매제는 19일 스포츠동아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검진을 전혀 하지 않았다. 참고 참다 허리가 너무 아파 작년 11월 중순쯤 병원을 찾았는데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고생을 많이 했다. 야구계를 떠난 뒤 사업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나락으로 떨어졌다. 운동선수 출신이라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사는데, 본인의 처지가 어려우니 야구인들과도 연락을 끊고 살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인과 동기로, 현재 일본 미야자키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영남대 이선희 투수 인스트럭터가 뒤늦게 소식을 접한 뒤 곳곳에 연락했지만 빈소를 찾은 야구인은 드물었다.

고인은 어릴 때부터 천부적 재능을 발휘한 특급투수였다. 1년 선배인 남우식에 이어 1970년대 초 경북고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팀을 전국 최강으로 이끌었다. 동기 이선희와 더불어 ‘우규봉-좌선희’로 불리며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고려대 1학년 때인 1973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발탁됐을 정도로 한국 마운드의 미래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대회 도중 숙소인 엠파이어 호텔이 전소되는 대형 화재가 발생해 2층에서 뛰어 내리다 허리를 다친 그는 이때의 충격으로 3년 동안 한양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고소공포증을 겪었다.

묵직한 강속구가 주무기였지만 한동안 스피드를 잃었고, 점차 구속을 되찾아 재기에 성공했다. 1976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화장품에서 활약하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전성기가 지난 시점이었지만, 원년에 15승(11패·방어율 2.47)을 기록하며 이선희-권영호와 함께 삼성의 ‘15승 트리오’로 맹활약했다. OB 박철순(24승)에 이어 다승 공동 2위. 또 19세이브포인트(11세이브+8구원승)로 원년 구원왕을 차지했다.

1984년(10승2패·4세이브)과 1985년(14승7패·4세이브)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낸 뒤 1986년 3승(5패·3세이브)을 끝으로 은퇴했다. 프로 통산 154경기, 48승29패24세이브, 방어율 3.08의 성적을 남겼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삼성에서 코치를 지낸 뒤 야구계를 떠났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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