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피해자들이 입을 모아 지목하는 범인(?)은 개그맨 출신 프로 방송인 김경식(46).
김경식은 프로그램의 간판 코너인 ‘영화 대 영화’에서 ‘꿀잼’ 멘트를 날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김경식이 추천하는 영화가 모두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노잼’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핵노잼’ 영화마저 흥미롭게 만드는 김경식의 탁월한 말솜씨에 시청자들은 매주 속고 또 속는 것이다.
덕분에 김경식에게는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독특한 별명까지 생겼다. 이 수식어가 의심된다면 오는 일요일 방송되는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보라.
15년째 ‘영화 대 영화’를 지켜온 김경식의 ‘말빨’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가 추천하는 영화를 보게 되는 사기(?)를 당할 것이다.
▽ 다음은 김경식과의 일문일답
Q. ‘희대의 사기꾼’을 만나서 영광입니다.
A. 하하. 포털 사이트 연관 검색어에도 ‘김경식 사기꾼’이 나오더라고요. 제 코너인 ‘영화 대 영화’를 보고 나서 ‘재밌겠다’ 싶어 영화를 봤는데 재미없으니까 ‘속았다’는 생각이 드는 거겠죠.
Q. 15년째 ‘영화 대 영화’를 지켜왔는데 그 비결이 궁금하네요.
A. 제가 2002년 5월 26일쯤 첫 방송을 했는데요. ‘영화 대 영화’는 목소리가 좋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저는 촐싹거리면서 진행하는 스타일인데 여기에 성대모사도 하고 추임새도 넣죠. 운이 좋았고 잘 맞아 떨어진 부분도 있어요.
영화를 어렵게 만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차라리 ‘영화 대 영화’를 보는 게 나은 작품도 있어요. 재미없거나 흥행이 안 된 작품에는 주관적인 입장이 들어갈 때도 있어요. 발연기면 발연기라고 해요. 사람들이 ‘아 맞다’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하는 거죠. 우리 코너는 ‘단소리’만 하지 않아요. 그래서 시청자들이 더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Q.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 여행’의 매력은 뭘까요.
오래된 원조 식당 같은 거죠. 요즘은 영화를 ‘비디오’라고 부르지도 않잖아요. 이름만 봐도 비디오 시절부터 있었던 프로그램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오래됐죠.
‘출발 비디오 여행’ 이후 비슷한 프로그램도 많이 생겼어요. 저와 목소리가 비슷한 분들도 있어요. 경쟁은 치열해졌지만 ‘출발 비디오 여행’에는 ‘원조 맛집’ 같은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프로그램은 작가와 PD들이 고생을 많이 해요. 다른 프로그램도 해봤는데 이 팀이 제일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랜 시간 잘 되는 것 아닐까요.
Q.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었나요.
A. 그것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어요. 특집으로 ‘영화 대 영화 대 영화’ 배우 정재영의 세 작품을 다룬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 특집을 1주일 만에 해야 하니까 작가가 죽을 듯이 힘들어 하더라고요.
이것저것 해봤는데 지금 포맷이 제일 나아요. 다른 걸 해보려고 하면 더 이상해져요. 김치찌개는 처음 그대로 돼지고기에 신김치만 넣고 맛을 내야지 다른 재료를 넣으면 안 되더라고요.
Q. ‘무한도전’ 무도 드림 특집에서 ‘영화 대 영화’ 녹화를 15분 만에 끝낸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됐습니다.
A. 우리 CP님이 재미 위주로 말한 것 같아요. 15분 만에 끝내긴 하는데 준비 과정까지 더하면 30분이에요(웃음). 사실 준비하는 건 1주일 내내 해도 빠듯해요. 촬영 시간만 짧은 거죠. “15분 만에 녹화를 끝낸다”고 단정지으면 제작진 입장에서는 아쉬울 거예요. 제 코너 ‘영화 대 영화’만 봐도 작가와 PD가 작품을 고르는 과정부터 촬영과 편집까지 영화를 하나하나 보면서
고심하거든요.
Q. ‘영화 대 영화’의 실제 방송 시간이 15분 안팎인데 녹화 시간이 15분이라면 NG가 없는 건가요.
A. 한두번 NG가 나긴 해요. 그래도 큰 NG 없이 비교적 빨리 마치는 편이죠.
Q. 설명이나 추임새가 대본이 아닌 애드리브로 느껴질 때가 많던데요.
A. 다~ 대본에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베테랑’을 소개할 때 ‘갑 중에 갑은 수갑이지’라는 멘트도 무턱대고 하면 말장난이 되지만 상황에 맞게 하니까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는 것 같아요. 제작진에서 제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대본에 반영하기도 하고요. 서로 맞추는 게 이상적이죠.
Q.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제작진과 이렇게 잘 맞았나요.
A.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녹화를 하다 중간에 끊고 대본을 다시 고치기도 했고요. 여러 시도를 했고, 호흡이 맞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하다 보니까 손발이 맞더라고요. 익숙해지면서 내 것이 됐고요.
Q. 직접 멘트를 제안하기도 하나요.
A. 그러기도 하는데 담당 작가가 워낙 글을 잘 써요.
Q. 영화 프로그램을 오래 한 만큼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 같아요.
A. 원래 영화를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많이 봤어요. ‘영화 티켓값이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영화만큼 그 가격으로 많은 뭔가를 느낄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책도 10000원 안팎의 가격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 지식 그리고 즐거움이 상당하잖아요. 영화 또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지금까지 본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생 영화’는?
A. (망설임 없이)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요. 10번도 더 봤을 거예요. 장가가기 전에 처음 봤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이 작품을 다시 봤을 때 더 뜨거운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예전에는 시대적인 상황과 남녀의 사랑이 많이 보였는데 다시 봤을 때는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에게 끔찍한 전쟁이라는 고통을 주지 않으려고 미화해서 포장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어요. 로베르토 베니니의 다른 영화도 다 찾아봤는데 이 영화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라붐’과 지난해에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도 좋았어요. 영화는 5년 혹은 10년 단위로 다시 보면 느낌이 달라요. 세월이 지나도 재밌는 영화는 재밌어요. 다시 봤을 때 느낌이 다른 작품도 있고요.
Q. 한국 영화 중에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A. 총각 때 (이)동우와 본 영화도 있어요. 우리는 왜 남자 둘이서 ‘클래식’을 볼 생각을 했을까요? 하하. 손예진 씨가 좋아서 큰 기대 없이 시간 때우려고 봤거든요. 그런데 너무너무 슬픈 거예요. 그날 둘 다 펑펑 울었어요. 기억에 남는 영화 정말 많죠. 끝도 없어요.
Q. 최근에 본 영화는?
A. 봤던 영화를 다시 봤는데 ‘컨트롤러’라는 맷 데이먼 주연의 작품이 있어요. ‘운명을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그렸죠. 운명을 좌우하는 하느님을 컴퍼니처럼 만든 작품인데 내포된 의미가 좋았어요. 타임슬립의 흥미 위주로 봤는데 인생의 의미를 보게 하더라고요. 보다가 울컥했어요.
Q. “울컥했다”니 감성이 풍부한 것 같네요.
A. 감성이 풍부한 건지 중년이라서 그런 건지(웃음). 극 중 맷 데이먼이 대통령이 될 운명을 거스르려고 해요. 그런데 인류를 위해서는 그가 대통령이 돼야 하니까 천사들이 여자와의 인생을 반대하죠. 결국은 주인공이 운명을 뿌리치고 그 여자를 만나요. 대사도 멋지고요.
Q. 극 중 주인공이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A. 대통령이 돼야죠. 농담이고요.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여자가 나타난다면 여자를 선택해야죠. 이 영화가 주는 포인트는 사실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아니라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내 삶을 내가 선택하는 거죠. 거기에 제 가슴이 불타오더라고요.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Q. 어느덧 데뷔 24년차입니다. 연예계 활동 또한 본인의 선택이었을 텐데요.
A. 진짜 인생은 늙어죽을 때까지 선택이에요. 제가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선택이었고요. 그 선택에서 항상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군대를 다녀온 2년을 빼고는 하루도 쉰 적이 없어요. 이것도 복이에요.
제가 코미디도 안 하고 주류에서 안 보이니까 ‘활동을 안 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사실 저는 작든 크든 늘~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어요.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한 방향으로 가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어요.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죠.
Q. 그 방향은 어떤 것인가요.
A. 방송인으로 간다는 것이죠. 코미디언으로 출발했지만 꼭 코미디 프로그램을 해야만 코미디언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 대 영화’에서도 제가 위트 있는 부분을 집어넣었을 때 ‘코미디언이라서 할 수 있는 재미를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Q. 활동하면서 후회한 적은 없나요.
A. 왜 후회해요. 이 일을 안 했다고 생각해보면 끔찍해요. 제가 뭘 하겠어요. 저는 광고창작을 전공했지만 거기에 뜻을 두지는 않았어요. 방송으로 나가고 싶어 했고 졸업하자마자 시험을 봐서 된 거죠. 잘 걸어오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24년 동안 활동할 수 있었다는 상황이 고마워요.
Q. 앞서 언급했듯 대중은 ‘무한도전’이나 ‘라디오스타’처럼 큰 예능에 안 나오면 활동을 쉬는 줄 알더라고요.
A. 사람들은 주류가 아니면 안 하는 줄 알아요. 일요일 아침에 익숙하게 제 목소리 들으면서 말이죠. 12시 10분이 되고 ‘영화 대 영화’ 음악이 나오면 ‘점심 먹을 때가 됐네’라고 인지되는 것 자체가 감사하죠. 사업을 해도 5년을 넘기기 쉽지 않고, 직장도 10년 이상 한 곳에 다니기 쉽지 않잖아요. 특히나 기복 있는 방송 판에서 한 코너로 오래 가는 게 행운이에요. 안 놓으려고요.
Q. 개편 시즌에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안이 오지 않나요.
A. 기회라는 게 흔치 않아요. 반대로 제가 제안을 넣어보려고요(웃음). 그 자리에 선 사람들을 보면 실력도 있지만 기회가 왔을 때 딱 잡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김구라 씨도 무명 시절이 꽤 길었지만 차근차근 밟고 올라온 사람이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저는 한창 젊었을 때 틴틴파이브로 한 시대를 재밌게 즐겼잖아요. 미련 두지 말고 항상 준비하면서 ‘새로운’ 김경식을 기다려야죠.
Q. 김경식에게 지금은 기다리면서 ‘갈고 닦는 시기’인가요.
A. 예능 판은 갈고 닦을 필요도 없어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나야죠. 마치 김구라가 없는 ‘라디오스타’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명성을 쌓아놓은 잘 된 프로그램에 제가 갑자기 끼어들어가는 건 이기적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무임승차죠. 인기 없는 프로그램을 훌륭하게 키우는 게 능력인데 아직 운이 안 닿았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요. 늘 준비하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받아들여야죠.
‘영화 대 영화’만 해도 2002년에 제가 더빙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처음에 잠깐하다 말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올 줄 몰랐어요. 어떤 프로그램을 만날지, 어떤 PD와 함께할지는 모르는 일이거든요.
Q. 개그맨부터 MC, 성우, 라디오DJ, 가수, ‘희대의 사기꾼’까지 다양한 수식어를 갖고 있습니다. 또 어떤 수식어를 갖고 싶은가요.
A. ‘꾸준한’ 김경식이요. 제 별명이 ‘꾸준히’였으면 좋겠어요. ‘딱따구리 쟤는 늘 꾸준하구나’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한때 과한 칭찬도 들어보고 ‘재미없다’는 이야기도 들어봤는데 ‘꾸준하다’는 이야기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부지런하고 한결같기가 제일 어렵거든요.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포기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꾸준한 김경식으로 보이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김경식의 사기에 속은 영화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시죠.
A. 속는 걸 알면서도 그 맛에 보잖아요. 그런 재미도 인정해줘서 감사하죠. 여기서 중요한 건 속았다고 해서 실질적인 손해는 없다는 거! 허탈함은 3분 정도 가지만 다음 주에 또 볼 거면서~ 앞으로도 ‘꾸준한’ 사기꾼이 될게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