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철 PD는 영화 ‘귀향’이 14년의 기다림 끝에 빛을 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힘쓴 숨은 주역이다. 사진제공|제이오엔터테인먼트
쿠싱병 발병·갈비뼈 부러져도 ‘귀향’ 곁 지켜
프로듀싱에 연기까지…“죄책감이 날 이끌어”
와우픽쳐스 남기웅 팀장의 파트너십도 한 몫
2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귀향’은 제작비 마련부터 개봉, 흥행까지 ‘기적의 연속’이다. 그 기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몫을 해낸 사람들로부터 시작됐다.
‘귀향’(제작 제이오엔터테인먼트)은 연출을 맡은 조정래 감독이 14년간 완성한 영화로 주목받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숨은 주역은 또 있다. 영화 전체의 살림을 도맡았고, 일본군 역할로도 출연한 임성철 PD와 배급사 와우픽쳐스의 남기웅 배급팀장이다. 두 사람은 눈물로 동고동락하며 ‘귀향’을 완성한, 지나칠 수 없는 주역이다.
임 PD는 화가였다. “선하고 좋은 애니메이션을 하겠다”는 뜻에서 영화계를 수소문하다 조정래 감독과 연이 닿았다. 조연으로 출연하기로 하고 2010년 ‘귀향’에 뛰어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책임은 커졌다. 연출을 뺀 모든 부분을 인솔해야 하는 프로듀서의 역할이었다. 가족까지 일손이 부족한 촬영장으로 이끌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형은 미술감독으로, 화가인 아내 역시 현장에 합류했다.
그렇게 5년간 고생하다 지난해 4월 촬영을 시작하고 얼마 지난 뒤였다. 그는 극심한 고통에 병원을 찾았고 쿠싱병 발병 사실을 알았다. 쿠싱병은 호르몬 문제로 일어나는 희귀난치성질환. 심한 고통이 따른다고 했다.
“그 즈음이었다. 누군가 500만 원을 투자한다기에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계단을 오르는데 나도 모르게 대변이 흘러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다시 찾아가니, 이미 30분 지각인 상황이었다. 별수 없이 내 사정을 전부 설명했다. 내 말을 듣던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계약서도 보지 않고 사인을 하더라.(웃음)”
영화 ‘귀향’의 임성철 PD의 출연 모습. 사진제공|제이오엔터테인먼트
그 때 임 PD는 자신의 투병이 “영화에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촬영 때 갈비뼈가 부러졌고, 작년 말 4.5cm짜리 종양제거수술 부작용 탓에 진통제 없이 버틸 때도 변함없이 ‘귀향’의 곁을 지켰다. 그 힘은 “죄책감”에서 나왔다.
“감독에게 이끌려 나눔의 집을 처음 갔을 때다. 참담했다. 생존 할머니들의 고통이 지속되는 걸 봤다. 내가 더한 고통을 당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죄책감과 자괴감에서 벗어나 나를 구원하고 싶었다.”
임성철 PD와 파트너십을 발휘한 남기웅 팀장도 ‘귀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 ‘귀향’이 일반인을 상대로 제작비를 모금한다는 소식에 곧장 임 PD를 찾아갔다. 이후 틈만 나면 서울 마포의 영화사 사무실을 들락거렸고, 그렇게 ‘귀향’의 일원이 됐다.
시간은, 두 사람 사이의 든든한 신뢰를 남겼다. 사실 ‘귀향’이 완성된 이후 서너 곳의 배급사가 ‘함께 하자’고, ‘돕겠다’고 나섰다. 꽤 매력적인 조건을 내건 회사도 있었지만, ‘귀향’ 팀은 흔들리지 않았다. 덕분에 와우픽쳐스는 2014년 설립 이후 ‘귀향’으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 남기웅 팀장은 “성과를 떠나 ‘귀향’에 모인 사람들, 그 만남이 기적 그 자체”라며 “전부 감독과 임성철 PD, 참여한 배우들의 공”이라고 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