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완지시티 기성용.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기성용=어릴 땐 그저 국가대표만 바라보고 뛰었어
이젠 육아·잔심부름에 장까지 보느라 바빠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아빠 되고 철 들었지
이청용=언제 호출 받을지 몰라 꾸준히 몸 만들어야
솔직히 지난 겨울이적시장 땐 고민 좀 했어
아직은 여기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
더 이상 새내기가 아니다. 한국축구의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주축이자 주역이다. 2010년 남아공, 2014년 브라질에 이어 다가올 2018년 러시아까지 어엿한 베테랑으로서 이제 3번째 월드컵 무대를 바라보는 이들이다. 팬들의 큰 사랑을 받는 여러 명의 태극전사들이 유럽 무대에 있지만, 세계 최고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꾸준히 성공적인 이력을 써내려가고 있는 기성용(27·스완지시티)과 이청용(28·크리스털 팰리스)을 빼놓고 이야기할 순 없다. 누구보다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콤비인 둘은 ‘쌍용’으로 불리며 울리 슈틸리케(62·독일)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눈빛만 봐도 친구의 생각을 읽고, 또 친구의 고민과 걱정거리를 잘 안다. 머나먼 외지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터라, 서로의 고충 또한 비슷비슷하다. 스포츠동아는 3월 초 영국 런던(크리스털 팰리스 연고지)과 스완지(스완지시티 연고지)를 찾아 기성용, 이청용과 인터뷰를 했다. 기성용과는 스완지시티 홈구장인 리버티스타디움 메인 리셉션 홀, 이청용과는 런던 첼시 지역의 작은 카페에서 마주앉았다. 각기 달리 진행한 인터뷰를 사커토크 형식으로 풀었다.
● 시련&도전
기성용(이하 기)=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네. 우리가 FA컵에서 일찌감치 탈락했고, 자연스레 휴식시간이 길다보니 컨디션을 열심히 관리하고 있는데, 마음처럼 마지막까지 잘 풀려야 할 텐데.
이청용(이하 이)=그래도 넌 경기라도 꾸준히 나가잖아. 난 솔직히 요즘 잘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하고 있어. 솔직히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이야. 기약 없는 기다림. 그런데 언제 호출 받을지 몰라 꾸준히 몸은 만들어야 하니…. 이런 것이 멘탈 훈련이 아닐까 싶어.
기=그래서 가족들이 있는 것 아냐(기성용의 아내 한혜진 씨와 딸 시온 양은 올 1월부터 스완지에 함께 머물고 있다). 예전 싱글로 지낼 때는 홀로 버티는 게 내가 할 일이었는데, 솔직히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육아에 힘을 보태려고 해. 최대한 많이 놀아주고, 잔심부름도 열심히 하고. 카시트 정리하고, 장을 보고.
이=에고, 맞는 말이지.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는 건 맞는 말이야. 가족들이 힘의 원천이 됐으니. 힘들지만 버틸 수 있도록 해주잖아.
기=친구들과 동료들도 빼놓을 수 없지. 지금 대표팀의 많은 동료들이 런던 일대에 전부 모여살고 있잖아. 아무래도 난 조금 멀리 떨어져 있고(스완지는 런던에서 고속열차로 3시간 거리). 어릴 적에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요즘은 솔직히 비행기 타는 게 가장 힘들더라. 작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몸이 먼저 말해주는 것 같아. 넌 그렇지 않아?
이=먼저 정신적인 스트레스라니까. 경기 하루 전까지 선발출전이 예고돼 있다가 하루 사이 결정이 바뀌어버리는 통에 혼란이 많아. 이 때 코칭스태프로부터 뭔가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통 해주시지 않으니. 팀도 워낙 침체기에 있고. 서운하더라도 지금으로선 참는 수밖에 없지.
기=그래, 그럴 거야. 나도 얼마 전까진 그랬잖아. 네가 (볼턴에서) 꾸준히 출전하는 동안 난 임대도 경험했고, 이유 없는 결장도 반복했으니. 어쩌면 (이)청용이 넌 조금 그 시기가 늦게 왔다고 봐. 우리 고충은 비슷할 거야. 밖에선 잘 이해하기 어려운. 아시아 선수이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든지, 아무 것도 즐길거리가 없는 황량한 곳에서 아는 이들도 없이 홀로 외로움과 싸운다든지.
이=예전에 내가 참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싶어. 그래도 배우는 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야. 벤치에 앉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팀원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됐으니. 출전 기회를 많이 잡지 못한 동료들이 어떤 심경이었는지 새삼 이해하고 있어. 이런 감정은 참 좋은 공부라고 생각해. 그렇다고 과거가 딱히 그립진 않아. (못 뛴다는 사실에) 적응이 덜 됐을 뿐이지.
기=생존을 위한 엄청난 고통. 나도 하루하루 많은 공부를 해. 나중에 해외에 도전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크리스털팰리스 이청용.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열정&비전
이=지난 겨울이적시장에 사실 고민을 좀 했어. 정말 떠나야 하나? 그게 옳은 건가? 선수는 땀 흘리며 필드를 누빌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 기회를 찾아가려 했지. 그런데 워낙 부상자가 많다보니 앨런 파듀 감독께서 남아줬으면 하시더라고. 그래서 일단 한 시즌 끝까지 잘 마쳐야겠다 싶었어. 다만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리고 여름이적시장이 열린다면 또 모르지.
기=난 우리도 환경만 조금 다를 뿐, 계약직 직장인이라고 생각해. 다만 나라는 선수를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수 있도록 해준 팀이라 고마움은 정말 커. 그래도 세상에 축구선수란 직업을 지닌 사람들은 많고, 그 한 부분이 잉글랜드잖아. 아직까지는 난 만족하고 감사함을 갖지만 앞날은 또 모르지.
이=우리가 팀을 선택할 때 단순히 금전적 조건만 보지 않지. 발전의 여지, 비전에 최우선 기준을 삼잖아. 크리스털 팰리스가 그렇긴 해. 점차 발전의 여지가 있었고, 투자도 좀더 적극적으로 할 것 같았어. 더욱이 파듀 감독께서 부임 후 첫 이적시장에서 날 선택해줬으니, 이 팀에 오는 건 나름 쉽게 선택했던 것 같아.
기=난 다른 길을 진지하게 고민하긴 했어. 꼭 스완지시티가 아니어도. 역시 클럽의 철학이 날 사로잡았지. 내가 추구하는 축구를 할 수 있는 팀이란 점이 중요했어. 챔피언십(2부리그)에서 승격한 팀이라 환경적인 부분은 좀 부족하긴 했지만, 다행히 차츰 발전을 했으니. 넌 다른 리그는 생각 안 해봤어?
이=솔직히 전혀 생각이 없다면 거짓이지. 다만 볼턴에서 팀을 옮길 때는 잉글랜드가 최우선이었어. 물론 지금도 크게 생각이 다르진 않아. 프리미어리그가 주는 매력과 이곳에서 성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지. 다만 가능성은 열어두려고.
기=어릴 적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동경했어. 환경이나 조건이 맞지 않아 기회가 열리지 않았지. 이제는 내가 가장 사랑받고 꾸준히 경기를 뛸 수 있다면 그 행선지가 어디든 크게 상관없다고 봐. 그런데 크리스털 팰리스나 우리나 경기력 자체는 조금 부족하지?
이=우리 감독님도 생각이 굉장히 복잡할 거야. 11∼14명으로 거의 한 시즌을 소화하고 있는데, 벤치에서 기다리는 이들에게도 좀더 기회를 주고, 몸 관리를 시켰다면 좀더 좋지 않았을까.
기=난 내 자신이 어려웠거든. 시즌 첫 경기부터 부상을 당했고, 딸이 태어나 한국을 왕복하고, 잔 부상에 시달리고, 대표팀을 오가느라 팀 성적도 조금 불안했고. 여러 면에서 처음 내 생각과 전부 반대로 돌아갔어. 그래도 두렵진 않아. 몇 경기를 빠지더라도 그로 인한 불안감은 딱히 없어. 일단 내 길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있어.
● 꿈&현실
이=요즘 내가 부쩍 성장한 것 같아. 예전에는 나 혼자만 생각했는데,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어. 내 가족, 우리를 보며 힘 낼 수 있는 팬들까지.
기=축구를 하는 이유가 많지. 역시 가족이 크지. 어릴 때는 그저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생각만으로 축구를 했는데, 지금은 내 일에 최선을 다하는 떳떳한 선수와 멋진 가장을 향해 뛰고 있으니.
이=확실히 우리가 철은 들었어. 기량이 크게 발전했다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항상 꾸준하게 훈련하고 컨디션을 만들고 최상의 몸을 유지하려는 자세부터 달라졌으니.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과정이 헛되진 않았다고 봐.
기=어릴 때부터 호주에서 지내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고, 프로에도 일찍 들어와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하면서 철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내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었어. 그로 인한 사건사고도 많았고. 다행히 지금은 감정과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고, 눈도 넓어졌어.
이=땀과 노력을 얼마나 투자하느냐가 좋은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생각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고도 과연 축구에 올인할 수 있는 자세가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리라 봐. 여전히 많은 외국 클럽에서 한국선수를 인정하고 찾는다는 것은 결국 성실함이잖아. 일단 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 단순히 삶의 가치가 출전에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가진 것보다 훨씬 큰 인정도 받고 있고.
기=그래, 맞는 이야기야. 우리가 조금 부진해도 질타를 받는 것은 그만큼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대가 커졌다는 것을 보여주잖아. 항상 들뜨지 않고 냉정하게, 언제 어디서나 초심을 잃지 않고 뛰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우린 참 행복한 선수들이야. 우리 지금처럼 늘 멋지게 해보자. 지금껏 잘해왔잖아. 힘내자고. 파이팅!
런던·스완지(영국)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