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도 재해보상” 보험료 폭탄 맞은 보험사

입력 2016-05-2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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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에 생명보험사 ‘날벼락’
미지급 2000억원·추산규모 1조원


금융위, 실손보험제도 개혁 팔걷어
개선안 따라 ‘보험 생태계’ 변화 예상

보험업계가 요즘 ‘쓰나마급’ 외부환경 변화에 긴장하고 있다. 쓰나미급 외부환경 변화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정부가 최근 말 많고 탈 많았던 실손의료보험을 개선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개선안의 방향에 따라 실손보험료가 크게 올라 무더기 해약사태가 올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생명보험의 ‘자살 보험금 지급’ 여부다. 대법원은 최근 ‘자살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요지의 판결을 해 자칫하면 보험업계가 최대 1조원의 돈을 토해 낼 위기에 있다.


● 실손의료보험에 손을 대기로 한 정부

금융위원회는 지난 18일 ‘실손의료보험 제도 정책협의회’ 킥오프(Kick-off) 회의를 열었다. 보건복지부 차관과 금융위 부위원장이 공동 주재하고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험개발원, 보건사회연구원, 보험연구원 등이 참석했다.

정부가 실손보험의 개혁을 서두르는 이유는 현행 제도가 불합리하고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일부 가입자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로 전체 실손보험료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제재할 마땅한 인프라가 없다.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항목 등을 보장해 주는 상품이다. 사실상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성장했지만 일부 가입자들의 무분별한 의료쇼핑과 병원들의 과잉진료가 문제다. 과다청구→보험사 경영악화→보험료 인상이란 악순환을 낳고 있다.

보험사들도 ‘묻지도 않고 가입’과 같은 무분별한 영업으로 가입자 수를 늘려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 지금은 주인이 없는 돈을 일부 부도덕한 이용자들이 챙겨가는 구조다. 당연히 손해율은 높아졌다. 보험사들은 이를 보험료에 반영했고 결국 보험료만 내고 보험금을 한 번도 받지 않은 2500만명의 선량한 피해자들만 손해를 보고 있다.

이런 양심불량 행위가 계속될 경우 조만간 실손보험료가 2배 이상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 경우 실질적으로 보험 혜택이 필요한 노년층의 부담이 커져 보험 계약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회의 참석자들은 실손보험료의 급등세 추이, 비급여 부문 과잉진료 가능성, 실손보험 관련 인프라 정교화 필요성 등을 집중 논의했다. 7월까지 올해 안에 추진할 과제들을 선정하고 8∼10월 사이에는 보험업계 등 이해 당사자들을 포함시켜 실무자 회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최종적으로는 12월께 차관급 테스크포스에서 실손보험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 개선안에 따라 실손보험의 영업환경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 대법원발 태풍에 전전긍긍하는 생명보험 회사들

지난 13일 대법원은 자살한 A씨의 부모가 B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재해특약 약관’에 따른 자살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그동안 ‘자살보험금’을 둘러싼 논란에서 생명보험사들이 우려하던 최종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생명보험사들은 1조원 규모의 자살보험금을 토해내야 하는 쓰나미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자살보험금 지급여부를 두고 소송 중인 생보사는 9곳이다. 미지급 보험금만 2000억원이 넘는다. 앞으로 지급해야할 보험금까지 더한 업계의 추산규모는 1조원을 웃돈다.

뇌관은 약관이었다. 2010년 표준약관 개정 이전 대부분의 생보사 보험약관에는 ‘계약의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경과된 후에 자살한 경우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재해특약 약관을 사용했다. 생명보험사들은 “2010년 표준약관을 개정하기 전에 실수로 포함된 것”이라며 “자살을 재해에 포함시킬 수 없다”며 재해보상금 지급을 거부해 왔다.

그동안 보험사와 가입자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보험사는 약관을 내세웠다. 사실상 가입자들은 보험에 가입할 때 약관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내용도 복잡하고 글자도 조그맣게 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게 만든 약관도 많았다. 그래서 불리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보험사가 자신들이 만든 약관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대법원은 가입자의 편을 들어줬다.

보험사 입장에서 보자면 재해사망 보험금이 일반사망 보다 2∼3배 정도 많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생명보험사들은 자살면책 기간 2년을 넘긴 고객이 자살하면 일반사망으로 보고 보험금을 지급해 왔다. 생명보험사는 그동안 ‘자살 보험금’ 지급을 미뤄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왔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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