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그대, 포기하고 싶은가? 원종현을 보라

입력 2016-06-0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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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원종현은 지난해 2월, 스물여덟 나이에 암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공을 던지는 오른팔이 아닌 왼팔에 주사를 맞아가며 버텨냈다. 암을 이겨낸 긍정적인 마음가짐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원종현. 스포츠동아DB

■ 암을 이긴 사나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대장암 이기고 592일만에 152km 희망투
“12차례 항암 치료 한번도 절망하지 않았다”


삶이 무료한가. 인생이 따분한가. 역경 앞에서 주저앉고 싶고, 시련 속에서 포기하고 싶은가. 그러나 이들을 보면 다시 옷깃을 여미고, 팔소매를 걷어붙일 것이다.

NC 원종현(29). 살겠다는 일념으로, 야구를 다시 하겠다는 집념으로, 참 먼 길을 돌아 우리 곁에 왔다. 5월31일 마산 두산전에서 5-6으로 뒤진 9회초, NC 6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얼굴은 야위었고, 근육은 줄어들어 있었지만, 최고구속 152km의 불같은 강속구로 깜짝 놀랄만한 탈삼진쇼를 펼쳐나갔다. 2번타자 오재원∼3번타자 민병헌∼4번타자 오재일로 이어지는 두산 3할 타자들을 모조리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돌아와 준 것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마운드에 선 것만 해도 눈물이 차오를 만큼 고마운데, 그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씩씩한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임무를 마치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던 그는 뒤돌아서서 자신의 뒤를 지켜준 수비수들을 기다렸다가 일일이 손을 마주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함께 싸우겠다”며 모자와 가슴에 ‘155’라는 숫자를 새기고 기다려준 동료들을, 이번엔 그가 기다려줬다. 155는 2014년 10월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원종현이 던졌던 최고 구속 155km를 상징하는 숫자였다.

얼마나 서고 싶었던 그라운드였을까. 얼마나 그리웠던 함성이었을까. 2014년 10월17일 잠실 두산전 이후 592일 만에 밟은 1군 마운드. 그가 이렇게 삶의 마당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과정을 안다면 어찌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15년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도중 몸에 이상을 느껴 귀국한 그는 병원에서 정밀검진을 통해 대장암 2기 판정을 받았다. 스물여덟 살에 날아든 암 선고였다. 수술 후 한 달에 2차례씩, 무려 12차례 이어진 항암치료. 일주일에 3∼4일 동안은 고향 군산 집에서 약물주머니를 왼팔에 달고 혈관주사를 맞아야만 했다. 암세포를 죽일 만큼 독한 약물이 주입돼 온몸에 퍼지는 순간, 살아있는 세포까지 함께 죽는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다. 속은 매스꺼웠고, 헛구역질과 구토가 뒤따랐다. 음식물 섭취는 불가능했다. 과일 등을 갈아 만든 해독주스를 마시는 것이 유일한 에너지원 공급이었다.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 그러나 그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고, 운명을 탓하지도 않았다.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다”며 긍정의 동아줄만 붙잡고 사투를 벌여나갔다. 왼팔에 약물주머니를 달았던 것도, 반드시 암을 이겨낸 뒤 공을 던져보겠다는 우완투수의 집념 때문이었다.

아버지 원요안(57)씨는 군산 집에서 TV로 아들의 복귀전을 지켜보며 마음으로 울었다. “그 힘든 항암치료 과정을 겪으면서도 아들은 단 한번도 절망하거나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더군요. 오히려 우리 부모를 위로했습니다. 머리카락이 부스러지고 빠질 때에도 아예 삭발을 하면서 덤덤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힘든 과정들을 다 이겨낸 아들이 대견스럽습니다.”

팬들은 기립박수를 쳤고, NC 동료들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 한번도 울지 않았던 원종현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NC 구단은 원종현이 돌아오자 작은 부분까지 배려하고 있다. 불에 구운 고기는 해롭다고 하니, 경기 전 식단에 야채와 함께 수육을 준비하면서 근력 유지를 돕고 있다. 이렇게 우린 한마음이 돼 그를 기다려온 보람이 있었다.

원종현뿐이랴. 그에 앞서 한화 정현석(31)과 LG 정현욱(38)은 위암을 이겨내고 돌아왔다. 이들은 위를 잘라낸 탓에 하루에 9끼씩 음식을 나눠먹으며 몸을 만들어온 인간승리의 주인공들이다. 정현석은 지난해, 정현욱은 올 시즌 그라운드에 복귀해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삶이 무료한가. 정현석을 보라. 인생이 따분한가. 정현욱을 보라. 포기하고 싶은가. 원종현을 보라. 어찌 우리네 삶과 인생이 순탄하기만 할까. 절망의 시간을 견뎌낸 야구선수들이 우리 앞에서 던지는 것은 야구공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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