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①] 아버지 기다리다 바위가 된 삼형제…이젠 든든한 마을지킴이

입력 2016-07-1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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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이 든 풍류리 월하마을 앞바다에 물 위로 3개의 작은 바위가 보인다. 얕게 차오른 물이 그 바위의 머리부분을 드러낸다. 삼형제가 바다로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바위가 됐다는 설화를 간직한 삼형제 바위는 풍어와 뱃길의 안녕을 비는 기원의 공간이다. 고흥(전남)|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8. 두원면 풍류리 월하마을 삼형제 바위

물 빠지면 모습 드러내는 삼형제 바위
동네사람들 바지락 캐며 情 나누는 곳
뱃길 안전 바라는 마을기원제 올리기도

세밀한 생활사와 풍속사 혹은 세상의 어긋난 도리에 대한 풍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 윤색과 와전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이야기를 낳은 공간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의 입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다. 콘텐츠로서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본래의 설화를 들여다보는 까닭이다. 넘쳐나는 대신 그만큼 사라져가는 진정한 스토리텔링 콘텐츠로서 설화의 가치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전남 고흥군은 땅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반도의 토양 위에서 먼 옛날부터 이야기가 풍성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류몽인이 이 곳에서 ‘어우야담’을 쓸 수 있었던 한 배경이기도하다. 웹툰과 애니메이션,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의 또 다른 원형일 수도 있을 고흥의 설화를, 스포츠동아가 격주 연재한다.

전남 고흥군 두원면 풍류리 월하마을 앞바다에 물이 들면, 방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위 3개가 물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삼형제 바위’다. 흔히 삼형제 바위라면, 설악산의 흔들바위처럼, 열기구의 풍선만한 바위쯤으로 생각할 테지만, 월하마을 앞바다의 것은 품에 안을 만큼 아담한 세 개의 바윗돌이다. 넓고 평평한 갯벌에 물이 차면 바윗돌 머리부분만 물 위로 떠오른다. 마을사람들은 바다로 고기잡이 나가는 길에 출항을 신고하듯, 이 삼형제 바위 부근을 선회한다. 풍어와 뱃길 안전을 구하는 의식이다.


● 뱃사람의 수호신, 마을사람들의 ‘사랑방’

바다의 물이 빠지면, 넓은 땅이 드러난다. 모래와 자갈이 뒤섞인 돌무지 갯벌이다. 바닷물이 300m쯤 뒤로 물러나면 마을사람들은 갯벌로 나간다. 삼형제 바위 근처로 모여든 이들은 호미로 돌을 뒤집고 땅을 파고 조개를 캔다. 바지락이다.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인 마을사람들이 허리 굽혀 바지런히 몇 시간 호미질하고 나면 양동이가 얼추 찬다. 적게는 2시간, 많게는 6시간을 갯벌에 쭈그려 앉아 캐낸 바지락은, 집에서 국을 끓여 먹고 멀리 도시로 나간 자식들에게도 보낸다. 간혹 시장에 나가 팔기도 한다.

“여기서 캐낼 수 있는 바지락은 양이 많지 않지만, 맛은 ‘따봉’이지.”

어느 비 갠 오후, 삼형제 바위 갯벌에서 만난 주민 황신천(69)씨는 월하마을 바지락을 “맛이 좋기로 유명하지만, 그 양이 많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정해진 날에만 바지락을 캔다. 계절에 서너 번씩만, 날물 때면 호미 들고 갯벌로 나간다.

풍류리는 넓은 들이 펼쳐진 농촌지역이다. 사계절 풍치가 좋다는 것에서 마을명을 풍류(風流)라 칭했다. 풍류리의 월하마을 사람들은 주로 벼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는다. 돈벌이로 치자면, 바지락은 부업인 셈이다. 모두의 바다이기에 마을사람들이 갯벌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거기서 나오는 바지락도 함께 나눈다.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정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하다.


● 아버지를 기다리다 바위가 된 삼형제

뱃사람들이 무사안녕을 빌고, 바지락 캐는 사람을 불러 모으는 삼형제 바위. 크기는 작지만 그렇게 주민들을 지켜주며 바다에 누워 있다. 하지만 그 저간의 사연은 슬프다.

먼 옛날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고기잡이를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삼형제는 갯가로 마중을 나갔다. 모래와 자갈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먼 바다였다. 풍랑이 일면서 바닷물이 빠르게 차올랐지만, 비바람 속에서 고기잡이를 나간 아버지 걱정에 삼형제는 풍랑과 밀물 속에서도 서로 부둥켜안고 아버지를 기다렸다. 물이 계속 차오르자 맏형은 두 동생을 목말 태웠다. 아버지를 기다리겠다는 마음이 너무 강했던 때문인지, 삼형제는 그 상태로 바위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어떤 파도에도 휩쓸려가지 않는 바위. 진짜 슬픈 사연은 지금부터다. 고기잡이를 나갔던 아버지는 비바람이 몰아치자 인근 항구로 대피해 있었다. 이튿날 아버지가 마을로 돌아와 아들 삼형제가 바위로 변한 사실을 알게 됐고, 아버지는 크게 통곡했다.

이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월하마을 사람들은 고기잡이를 나갈 때면 풍어와 뱃길 안전을 위해 삼형제 바위에서 용왕과 삼형제에게 제를 지내게 됐다. 삼형제 바위를 향한 마을사람들의 의식이 의례가 됐고, 자연스럽게 마을의 풍습이 됐다. 지금도 풍어와 뱃길 안전을 기원하는 장소다. 고깃배가 출항하며 삼형제 바위 앞에서 머뭇거리다 떠나는 것도 무사안녕을 비는 행위다.

“예전엔 기원제도 지내고, 제사 음식도 만들어서 굿도 하고 했지. 근데 요즘엔 제를 거의 안 지내. 그래도 마을사람들에겐 수호신으로 여전히 남아 있어.”

얼마 전까지 풍류리 이장을 지낸 김원석(69)씨는 호미로 삼형제 바위 근처 돌무지를 헤치며 말했다.

삼형제 바위는 썰물이면 아래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너머 돌무지 갯벌에서 사람들은 바지락을 캔다. 고흥(전남)|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방조제 축조로 낙지에서 바지락으로

제를 지내지 않는 일처럼, 이 바다도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 예전에는 바지락을 캐지 않고, 저인망으로 낙지를 잡았다. 10여년 전 고흥만방조제가 생긴 뒤로 낙지가 종적을 감춰버린 탓에 바지락을 캔다. 갯벌 생태계가 변한 것이다.

방조제는 고흥군 도덕면 용동리에서 삼형제 바위가 있는 두원면 풍류리까지 득량만 바닷길을 막아 축조됐다. 1991년 착공해 7년이 걸렸다. 고흥읍·풍양면·도덕면·두원면 4개 지역의 바다 31km²가 매립돼 간척지로 변했다. 17.01km²의 농경지, 2.80km²의 인공습지, 7.45km²의 담수호가 생겨났다. 갯벌을 농토화하는 개답공사를 2009년 마무리하면서 이때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월하마을 앞에는 반월산이라는 야트막한 산이 있다. 반월산의 줄기가 뻗어 있는 곳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달 월(月)’자, 그 산 아랫마을이라는 뜻으로 ‘아래 하(下)’를 붙여 월하마을로 불리게 됐다.

황신천(69)씨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귀향해 5년째 월하마을에서 살고 있다. 황씨는 반월산 자락을 가리키며 “저기에 우리 집이 있다. 동생 집도 옆에 있는데, 살기가 아주 좋다. 여기서 한눈에 딱 봐도 좋아 보이지 않느냐”며 허허 웃는다.

“여기는 인심도 좋고, 무공해 청정지역이다. 집 앞에 나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가 내 것이 된다. 나는 참 행복하다.”


● TIP. 설화란?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 가는길

※ 남해고속도로 고흥 IC→고흥 방면→한천교차로에서 도양·고흥 방면→우주항공로 직진→동강교차로에서 동강·보성·대서 방면 우측방향
진입, 노동리·동강면 방면 좌회전→동강면 유둔에서 나로도·고흥 방면 우회전→연봉교차로에서 점암·과역 방면 우측방향→점암삼거리에서
자연휴양림·도화·포두 방면 우측방향→세동삼거리에서 도하·발포해수욕장 방면 우회전→도화면 당오삼거리에서 발포리·봉산리 방면
좌회전→발포역사전시체험관 문의

고흥(전남)|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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