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핏빛 무대, 톡 터지는 웃음…밝아진 ‘스위니토드’

입력 2016-07-2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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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위니토드에서 러빗 부인으로 열연을 펼치고 있는 옥주현(오른쪽)과 토드 역의 양준모가 절묘한 호흡으로 재미는 살리고 무게감은 덜어냈다.

■ 뮤지컬 ‘스위니토드’


인육파이까지…섬뜩한 복수극
양준모·옥주현, 명품 연기호흡


별 기대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간 가게에서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맛보았을 때의 기쁨과 희열이란! 계산대 앞에서 손님으로 하여금 밝은 미소와 함께 “잘 먹었습니다”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힘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결론적으로 말해 기대했던 것에 비해 상당히 재미있었다. 실은 기대라기보다는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하고 갔다. 음울한 밤안개, 자욱한 피 냄새를 떠올리게 만드는 기괴한 작품. 9년 전 한국 초연에서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겼던, 그러면서도 ‘재공연을 희망하는 작품’ 상위권 리스트에 늘 이름을 올려놓고 있던 신비의 뮤지컬.

그런데 막상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만난 스위니토드는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가 튀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잔인한 장면은 여전했지만 숨이 턱 막히기 전에 건네는 물 한 잔 같은 웃음 포인트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덕분에 스위니토드는 밝아졌고, 무게감이 덜어졌고, 무엇보다 재밌어졌다.

무대와 음악은 물론이려니와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이 쓴 대사의 맛을 얼마나 한국관객에게 충실히 전달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손드하임의 천재성은 음악과 가사의 자웅동체 같은 절묘한 조합, 캐릭터와 음악의 치밀한 연결 등에 있지만 뮤지컬 초보자들로서는 그저 총알처럼 쏟아지는(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유의 대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손드하임 뮤지컬’을 즐길 수 있다.

주인공인 토드와 러빗부인의 대사에 명대사가 많다. 원작을 번역한 김수빈 작가는 “손드하임의 음악과 가사, 언어유희, 블랙코미디를 우리나라 관객이 봤을 때 그 맛을 느낄 수 있게끔 푸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가능한 한 라임(압운)을 맞췄다.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직관적인 단어를 사용했고, 섬뜩한 느낌이 나야 하는 부분에서는 파찰음, 파열음을 다수 썼다.

그러니까 손드하임의 특성을 한국 관객에게 충실히 전하기 위해 음식의 ‘재료’를 그대로 고증해 가져다 썼다기보다는 ‘맛’을 재현하는 데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는 얘기다. 살인을 계획하며 토드와 러빗부인이 만담처럼 빠르게 주고받는 가사를 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영어식 말장난을 한국식으로 옮겨 놨다는 거다.

러빗부인 : 요건 겁나게 뜨거워요. 신혼부부라서.

토드 : 왜 이렇게 안 달달해.

러빗부인 : 꿀을 좀 쳐?

토드 : 아니, 기름을 쳐. 아이 러브 유(油)∼

이런 식이다. 원작은 ‘파이프(Pipe)’로 말장난을 했지만 우리말로 번역하면 재미를 살릴 수 없어 ‘기름’으로 대체했다.

양준모(토드)와 옥주현(러빗부인)의 연기 호흡이 절묘하다. 양준모는 전작 레미제라블(장발장 역)에서 보여주었듯 연기와 노래에 힘이 강하게 실리는 스타일인데, 옥주현 역시 어디 가서 힘으로는 꿀리지 않는 여걸인지라 더없이 잘 어울렸다. 선이 굵은 두 사람이 죽죽 밀어붙이는 게 마치 교향곡 4악장에서 오케스트라가 결말을 향해 치달리는 듯했다. 두 사람이 가진 소리의 결이 사하라 사막과 북극처럼 극을 달리는 것도 흥미로웠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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