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그레코로만형의 김현우는 14일(한국시간) 카리오카 아레나 2관에서 벌어진 로만 블라소프(러시아)와의 75kg급 16강전에서 판정 논란 속에 탈락했지만, 패자부활전에서 값진 동메달을 따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한국이 제소해도 번복 가능성 희박
김현우 4년 노력 오심에 훼손 ‘눈물’
남은 시간은 32초. 3-6으로 뒤진 김현우(28·삼성생명)에게 천금의 기회가 찾아왔다. 패시브(엎드린 자세를 유지토록 하는 벌칙) 상황. 기회를 엿보던 김현우가 로만 블라소프(26·러시아)를 번쩍 들어올려 뒤집었다. 4점짜리 ‘가로들기’ 기술. 점수가 역전됐어야 했다. 그러나 스코어보드에는 2점만 추가됐다.
레슬링대표팀 그레코로만형 안한봉(48) 감독과 박치호(44) 코치가 올림픽 마스코트 인형을 매트로 던져 영상 판독을 요청했다. 최후의 수단. 영원할 것 같은 짧은 시간이 흐른 뒤 결과가 발표됐다. 그대로 2점. 블라소프에게는 1점이 보너스로 얹어졌다. 레슬링은 영상 판독을 요청한 뒤 결과가 바뀌지 않으면 경고와 함께 상대에게 1점이 주어진다.
5-7 패배. 2012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66kg급) 김현우가 75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출전한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정상 도전은 끝내 물거품이 됐다. 우승은 결국 블라소프의 차지가 됐다.
김현우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14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리오카 아레나 2관에서 벌어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16강전에서 무너진 김현우는 패자부활전에서 보소 스타르세비치(크로아티아)를 꺾고 값진 동메달을 땄다. 매트에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깔고 큰 절을 올리는 그의 모습은 모든 이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다.
● 4년의 준비, 12분만의 아픔
런던에서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고기’의 맛을 이미 봤던 김현우는 잠시 방황했지만 곧 매트로 돌아왔다. “레슬링을 시작하고 너무 빨리 인생의 목표를 이루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제는 다이내믹한 레슬링, 아름다운 레슬링으로 보는 재미와 감동을 국민 여러분께 선물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흘린 땀과 눈물은 금메달 좌절로 끝났다. 현지시간 14일 오전 10시47분 시작된 3분·2회전의 16강전은 10시59분 종료됐다. 이 짧은 12분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오심 논란’이다. 경기 막판(9초 전) 얻은 패시브를 잘 살린 김현우가 종료 3초를 남기고 블라소프를 완전히 뒤로 넘겼을 때 한국 벤치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기뻐했다. 짜릿한 7-6 역전승이 연출된 듯했다.
판정은 달랐다. 4점 대신 2점이 나왔다. 심판은 김현우의 기술이 크지 않았다고 판정했다. 일각에서 김현우의 기술이 들어갈 때 블라소프의 손이 매트에 닿아 낮은 점수가 매겨졌다고 했지만, ‘가로들기’는 기술을 당한 상대가 하늘로 배를 보였는지 여부가 먼저다. 전해섭 스포츠동아 해설위원(한체대 교수·전 레슬링대표팀 총감독)은 “저렇게 머리가 크게 넘어갈 정도면 4점이 맞다”고 단언했다.
김현우는 억울했다. 블라소프는 완전히 배를 노출했다. 매트 터치로 기준을 바꾸더라도 김현우가 몸을 던졌을 때 블라소프의 손은 떨어져 있었다. 안 감독이 퇴장을 감수하고 매트로 뛰어들며 흥분한 이유다. 안 감독은 “숱한 판정시비로 레슬링이 퇴출될 뻔했다. 올림픽은 공정해야 한다. 완벽한 기술이 점수로 인정되지 않았다. 세계레슬링연맹(UWW) 실무 부회장이 러시아인이다. 힘의 논리에 의해 빚어진 결과다”며 분노했다.
● 악몽의 카리오카…불안한 레슬링
세계 상위 랭커들이 총출동한 한국유도가 ‘노 골드’의 치욕을 맛본 곳이 카리오카 아레나 2관이다. 올림픽 첫 주의 유도에 이어 2주째에 펼쳐지는 레슬링이 이곳을 사용한다. 김현우에 앞서 59kg급의 다크호스 이정백(30·삼성생명)도 일찌감치 탈락의 고배를 들었다. 스티그 안드레 베르그(노르웨이)에게 0-2로 졌다. 주의 3회로 1점을 내준 뒤 2회전에서 추가로 점수를 빼앗겼다.
금메달 1개 이상을 목표로 잡았던 한국레슬링은 리우올림픽에 5명을 출전시켰다. 그러나 레슬링 종목 첫날 경기가 시작된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2명이 금빛 꿈을 접었다. 가장 유력했던 금메달 후보의 좌절에 레슬링대표팀도, 대한민국 선수단도 김현우가 다시 털고 일어나 동메달을 목에 걸 때까지 온통 초상집 분위기였다.
4년 전 여자펜싱에서 ‘신아람 사태’를 경험한 대한체육회는 억울한 상황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국제변호사 제프리 존스(미국)를 동행시켰다. 김현우를 울린 오심에 선수단은 UWW에 제소하려 했다. 그러나 현실론이 발목을 잡았다. 남은 선수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포기했다. 물론 제소하더라도 결과가 번복될 가능성은 ‘제로(0)’다. 과거 한국레슬링대표팀을 이끈 뒤 2014년부터 중국대표팀을 지도한 유영태(56) 감독도 “무조건 얻을 점수를 잃었다. 명백한 4점이다. 러시아의 득세로 아시아의 입지가 많이 좁아졌다”고 설명했다.
김현우
▲생년월일=1988년 11월 6일
▲키·몸무게=174cm·80kg
▲소속=삼성생명
▲세계랭킹=4위
▲수상 내역=2012런던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6kg급 금메달, 2013부다페스트세계선수권 그레코로만형 74kg급 금메달, 2013뉴델리아시아선수권 그레코로만형 74kg급 금메달, 2014인천아시안게임 그레코로만형 75kg급 금메달, 2015도하아시아선수권 그레코로만형 75kg급 금메달
남장현 스포츠1부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