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익스트림, 1990년으로 완벽하게 돌아갔던 두 시간

입력 2016-09-28 14: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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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80년대 말 90년대 초 메탈 밴드가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치렁치렁한 긴 머리, 찢어진 청재킷, 딱 달라붙는 가죽 바지 등은 섹시함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이후 너바나로 대변되는 얼터너티브/그런지락이 음악적으로도 패션적으로도 큰 유행을 하면서 메탈의 이 모든 건 한 물 간 늙은이 취급을 받기는 했지만,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10~20대의 시기를 이런 메탈 밴드들과 함께 보낸 ‘키드’들에게는 여전히 긴 머리는 로망이고 가죽바지는 섹시함의 상징이다.

그리고 9월 27일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펼쳐진 익스트림 내한공연은 나이를 먹고, 한 가장이 됐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긴 머리를 흩날리며 멋지게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로망을 지닌 메탈키드들을 오랜만에 한데 모인 자리였다.

시작 전 공연장 주변의 풍경부터 여느 그룹들과는 달랐다.

소위 ‘요즘 핫한’ 팝/R&B/힙합 뮤지션들의 공연에는 젊고 예쁘게 차려입은 여성팬들이 공연장 주위를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모습을 손쉽게 볼 수 있지만, 이날만큼은 딴 세상 이야기였다.

한눈에도 일가를 이루고 있을법한 연배의 남성들이 여기저기서 어린아이들처럼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공연장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고, ‘어르신’이라는 칭호가 절로 나오는 흰머리 지긋한 분들도 눈에 띄었다.

실제 이날 공연장을 찾은 20대 여자 후배는 “여긴 아재 천국이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콘서트는 여성의 비율이 90%에 달하지만, 이날 익스트림 콘서트는 반대로 남성이, 그것도 30대 이상 나이대의 비율이 80%는 돼보였다.

물론 이들이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찢어진 청재킷에 가죽바지를 입고 나타난 건 아니다. 면바지에 골프티 같은 편안한 복장이나, 퇴근 후 바로 공연장으로 달려왔는지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도 볼 수 있었다.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자 복장은 무의미했다. 누노 베턴커트의 기타 리프를 신호탄으로 예스24라이브홀의 시간은 딱 1990년으로 돌아갔고, 관객들 역시 10대 청년들처럼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날 익스트림은 정말로 지금이 2016년인지 1990년인지 헛갈릴 정도로, 영상으로 보았던 전성기시절 그 모습을 그대로 무대 위에서 선보였다.

가죽인지 에나멜인지 재질까지는 모르겠으나 하반신 라인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스키니 팬츠를 입고 등장한 게리 셰론은 공연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정신없이 무대 위를 뛰어다녔고, 엉덩이 아래로 노래하기, 마이크 핥기, 발차기 등등 온갖 화려한 퍼포먼스를 곁들여 메탈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렸다.

또 곡이 절정에 도달할 즈음,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누노 베턴커트의 화려한 기타 솔로는 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그 모습에서 단 1%로 변하지 않은 그대로였다.

관객들 역시 마이크를 향해 열광적인 환호성을 내지르기도, 기타를 치는 손가락을 숨죽여 지켜보기도 하며 점점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단언컨대 이날 익스트림 콘서트는 올해 열린 모든 공연을 통틀어 30대 이상 남성들의 목소리가 가장 컸던 콘서트였다.

흔히 8~90년대 록음악을 두고 ‘아재록’이라고 부르곤 한다. 실제로 그 당시를 향유하던 젊은이들이 시간이 흘러 ‘아재’가 된 만큼 단어자체는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아재’의 의미를 ‘한물 간’으로 해석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가슴속 열정과 에너지, 로망은 계속해서 뜨겁게 불타오를 것을 이날 익스트림과 관객들이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이하 셋리스트

1. Warheads
2. Li'l Jack Horny
3. It ('s a Monster)
4. Kid Ego
5. Rest in Peace
6. Our Father
7. Play with Me
8. Midnight Express
9. More Than Words
10. Cupid's Dead
11. Suzi (Wants Her All Day What?)
12. Am I Ever Gonna Change
13. Take Us Alive
14. Flight of the Wounded Bumblebee
15. Get the Funk Out
-Encore:
16. Hole Hearted
17. Decadence Dance
18. We Are The Champions (Queen Cover)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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