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최형우, 프로스포츠 첫 100억원 시대 열다!

입력 2016-11-24 19: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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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최형우(33)가 FA(프리에이전트)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동안 깨지지 않던 ‘100억원’에 계약한 최초의 사나이가 됐다. 야구뿐만 아니라,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첫 100억원 시대가 열렸다. KIA는 24일 최형우와 계약기간 4년에 계약금 40억원, 연봉 15억원 등 총 100억원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FA 시장 개장 이후 대구로 향해 최형우와 두 차례 만나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해온 KIA는 이날 광주 모처에서 최종 협상을 갖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 KIA의 통 큰 투자, 대권도전 나선다!

최형우는 FA 자격 취득 전부터 꾸준히 KIA와 연결돼왔다. 지난해 초 ‘120억원’을 언급했다가 화제에 오른 최형우를 붙잡을 수 있는 팀은 KIA 밖에 없다는 말이 나왔다. 김기태 감독 계약 마지막 해, 그동안 진행한 리빌딩의 완성으로 ‘대권 도전’에 나서기 위해선 전력 보강이 필수였다. 최형우는 김 감독을 향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동안 FA 시장에서 관심을 가진 선수들을 번번이 놓쳐온 KIA로선 올해 물밑에서 조용히 최형우 영입전을 펼쳤고, 결국 100억원이라는 액수에 승자가 됐다.

이미 내부 FA 나지완(31)을 4년 40억원에 잡은 상황에서 2번째 투자다. 여기에 해외진출을 고민 중인 에이스 양현종(28)이 잔류를 선언할 경우, 추가적으로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KIA는 양현종의 잔류와는 별개로 최형우 영입을 고려해왔다. 최형우 계약에 거액을 투자했지만, 양현종이 국내에 잔류한다면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포지션 중복도 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1루수 브렛 필 대신 새 외국인타자로 외야수를 알아보고 있다. 필을 퇴출하면, 김주찬 등이 1루로 이동해 포지션 중복을 피할 수 있다. 김호령(24) 노수광(26) 등 세대교체의 산물인 ‘젊은 피’들과 용병 외야수, 여기에 FA 최형우로 탄탄한 외야를 구축할 수 있다. 최형우라는 확실한 4번타자로 김주찬~최형우~나지완~이범호로 이어지는 막강한 중심타선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2008 시즌 당시 최형우.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방출생에서 신인왕, 그리고 100억원 선수까지

최형우는 전주고를 졸업한 2002년 삼성에 2차 6라운드 전체 48순위로 입단했다. 당시 포지션은 포수였다. 그러나 1군에서 6경기 출장한 기록만 남긴 채 4시즌 만에 방출됐다. 2005년 말 새롭게 군팀으로 창단한 경찰야구단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방출자 신분이었지만, 경찰 입대 후 외야수로 전향하며 전역 이후 삼성에 재입단하기에 이른다.

복귀 첫 시즌인 2008년, 전경기에 출장해 타율 0.276·19홈런·71타점으로 신인왕을 수상한 최형우는 이후 삼성의 4번타자로 성장했다. 3할과 30홈런, 100타점이 가능한 선수로 최근 3년 연속 꾸준히 이 기록을 달성했다. 올해는 138경기서 타율 0.376·31홈런·144타점으로 타격왕, 타점왕, 최다안타왕(195개)으로 타격 3관왕에 올랐다.


● KBO리그, 국내 최초로 100억원 시대 열었다!

최형우의 KIA행으로 FA 100억원 시대가 활짝 열렸다. 해외진출을 고려하는 다른 FA들도 국내 잔류를 선택할 경우, 100억원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최고 자리에 오른 야구는 프로스포츠 최초로 100억원 시대를 열었다.

2000년 말 홍현우, 김기태가 4년 18억원에 계약하면서 처음 10억원대 FA 시장이 형성됐고, 2004년 말 심정수가 4년 60억원으로 5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박석민(NC)이 4년 최대 96억원으로 역대 최고액을 쓴 지 1년 만에 100억원 계약이 나왔다.

그동안 구단들은 ‘100억원’을 FA 시장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겼다. 상징성 높은 세 자릿수 금액이 깨지는데 대해 부담감을 느껴왔다. KIA 역시 마찬가지였다. KIA 고위관계자는 100억원이라는 액수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꼈다. 불안한 시국과 경기 침체 등을 고려하면,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시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KIA는 과감하게 투자를 감행했다. 대권 도전을 위해선 보다 확실한 카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2012년 말 김주찬을 당시로선 상징적이었던 50억원에 데려왔을 때와 상황은 비슷하다. ‘확실한 투자’라는 목적을 향해 결단을 내렸다.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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