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천재소년→국민배우…안성기 연기史 60년

입력 2017-04-16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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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는 “배우가 작품을 잘 선택하는 것은 연기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같은 배우여도 시나리오에 따라 빛을 보거나 혹평을 듣지 않나. 선구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60주년이라니. 참 실감이 안 나네요.”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연기하면서 살아온 배우, 안성기(65). 한국 영화사의 산 증인인 그가 올해 데뷔 60주년을 맞았다.

안성기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를 통해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해 지금까지 약 130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영화계에서 ‘천재소년’이라 불리던 그는 10대 중반까지 꾸준히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다 학업과 군 입대 등으로 10여년의 연기 공백을 가졌고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날’로 성인 연기자로 도약했다. ‘바람 불어 좋은날’은 안성기가 직접 꼽은 인생작 중 첫 번째에 이름을 올린 영화다.

“아역 때는 제 의지로 선택한 작품이 아니니 차치할게요. 먼저 ‘바람 불어 좋은날’은 저에게 의미 깊은 영화예요.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는 시대에 찍은 영화니까요. 임권택 감독과 처음 만난 작품 ‘만다라’도 예술적으로 세계에 많이 알려졌죠. 많은 관객과 만난 첫 영화는 ‘고래사냥’인데 남녀노소 구분 없이 좋아해준 작품이에요. 베트남전을 다른 시각으로 뒤집어본 ‘하얀 전쟁’도 의미 있는 영화였어요. 제가 외국어대 베트남어학과를 졸업했는데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베트남전에 참여한 병사의 모습을 연기로 그려보고 싶어서 제가 정지영 감독에게 먼저 제안한 작품이죠. 그리고 ‘투캅스’를 통해서도 연기 폭도 넓힐 수 있었어요.”

네다섯 작품만 꼽겠다던 안성기는 계속 이어서 필모그래피를 되짚었다. 함께한 영화가 130편에 달하니 그럴 만도 했다. 그가 언급하는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주옥같은 영화들이었다.

“보통 나이가 들면서 역할이 주연에서 조연으로 변하지 않습니까. 저를 연착륙 시켜준 작품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였어요. 존재감 있는 역할이었고 ‘앞으로 연기도 이렇게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영화죠. 첫 천만 영화 ‘실미도’도 의미 깊네요. 그때 후배에게 ‘이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겠다’ 했는데 두 달 만에 ‘태극기 휘날리며’에게 깨졌어요. 하하. ‘라디오스타’도 작은 영화지만 아직도 제 마음 속에 남아있어요. 저와 닮은 캐릭터라 애정이 많이 갑니다.”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은 28일까지 영상자료원 상암 본원에서 진행된다. 안성기의 영화 27편이 관객들을 만나며 모든 상영작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안성기는 ‘영화배우’다. 60년을 영화를 위한 배우로만 살아왔다. 그의 연기 인생에서 드라마나 연극 무대에 오른 경험은 전무(全無)로 알려졌다. 안성기가 영화를 고수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영화 ‘바람 불어 좋은날’을 마치고 TV 시리즈물 수사극에 출연을 부탁받은 적 있어요. 일회성 출연이었는데 범인 역할이었죠. 그런데 50분짜리 드라마를 이틀 만에 찍더라고요. 영화 현장에서는 상상도 못할 속도죠. 공중전화 박스 장면을 찍는데 영화에서는 다양한 각도와 조명으로 인물의 심리 상태를 보완하려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전혀 그런 것 없이 얼굴만 찍더라고요. ‘나와는 안 맞는 작업이구나’ 싶어서 그 후에는 드라마를 안 하게 됐죠.”

그의 말대로 드라마 현장은 쪽대본이 난무하고 밤샘 촬영은 기본이다. 사전제작 시스템이 도입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다. 안성기는 이러한 드라마 시스템을 비판하며 그 안에서 일하는 후배들을 안타까워했다.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충분해요. 그 재미 때문에 영화를 하는 거죠. 요즘 드라마를 영화처럼 찍는다고는 하지만 ‘잠잘 시간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끔찍해요. 드라마 환경도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영화는 관객이 직접 예매하고 극장을 찾아가는 귀찮은 작업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요. 어두컴컴한 극장 좌석에 앉아서 ‘나를 감동시켜 달라’고 하는 마음도 소중해요. 영화가 좋습니다.”

안성기는 “아역 배우일때는 연기가 뭔지도 몰랐다. 그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잘한다’는 말을 들은 것을 보면 끼가 있었나 보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안성기는 후배들이 닮고 싶은 롤모델로 꼽는 대표적인 배우다. 이번 특별전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에도 이경영 이한위 장동건 김의성 권율 한예리 고아라 등 후배들이 함께했다. 안성기는 후배들에게는 존경을, 관객들에게는 신뢰를 받기까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잡아왔다.

“‘영화와 영화인이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제 자신을 다그치고 자제하면서 살아왔어요. 신경 쓰면 산 건 사실이에요. 좋은 이미지로 인식되기 위해 알게 모르게 많이 노력했죠. 의도적인 것이기도 하고 제 스스로의 성격과 삶의 방식이기도 해요.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중간에 피곤해서 그만뒀겠죠. 그러고 보면 제 심성이 그런(바른) 것 아닐까요. 허허.”

묵묵히, 오롯이. 그런 안성기가 작품 외적으로 애정을 쏟는 것은 세 가지뿐이다. 유니세프 친선대사와 신영균문화예술재단 그리고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이중에서도 두 가지는 영화와 연관된 작업들이다. 영화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한 눈 팔지 않고 영화에 계속 매진해왔어요. 영화와 관련된 일은 앞장서서 한 편이죠. 7-80년대에는 영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너무 안 좋았어요. ‘영화인이 존중받고 동경할 수 있는 대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다짐했죠. 그래서 작품을 선택할 때 상당히 신중했어요. 이제는 영화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쌓인 것 같아요.”

안성기는 “선배-동료들이 현장을 떠나고 혼자 남은 느낌에 외로울 때도 있다. 나를 위해서, 후배들을 위해서 배우로 좀 더 오래 일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안성기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2015년에는 미국 영화 ‘제7기사단’을 선보였고 지난해 개봉한 영화 ‘사냥’에서는 강도 높은 액션을 소화했다. ‘화장’ ‘동행’ ‘필름시대사랑’ 등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젊은 후배들 못지않은 행보다. ‘국민배우’ 안성기의 내일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영화인으로서 꿈이 있다면 오래 하는 거죠. 제 노력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어요. 해봐야 알지 않을까요. 제가 나이가 들어도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저를 보고싶어할지, 제가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매력을 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노쇠한 느낌을 주면 관객 사이에서 ‘이제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겠죠. 하지만 나이가 많아도 힘이 있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면 좀 더 오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에게 가장 큰 숙제입니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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