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취화선’으로 55회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위쪽 사진 오른쪽에서 네 번째)을 위한 축하연. 2009년 5월 62회 영화제 심사위원상 ‘박쥐’ 팀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강호·김옥빈·박찬욱 감독·신하균(아래사진 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취재 뒷이야기로 보는 칸의 추억들
제70회 칸 국제영화제가 17일(이하 현지시간) 막을 올린다.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영화 축제답게 올해에도 세계 각국의 영화 관계자들과 언론 취재진이 대거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으로 향한다. 이미 칸 국제영화제는 “영화예술에 대한 국제적 인정의 바로미터”(전찬일 영화평론가)로 한국 관객에게도 자리 잡았다. 실제로도 2002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영화는 많은 성과를 얻어왔다. 그런 만큼 올해에도 한국 영화관계자들과 언론 취재진이 대거 칸을 찾는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홍상수 감독의 ‘그 후’가 경쟁부문에 초청했다. 또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감독 변성현)과 ‘악녀’(감독 정병길)도 비경쟁부문의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서 상영한다. 일흔번째 축제을 앞두고 그동안 칸과 한국영화가 맺어온 인연을 소개한다.
임권택·정일성 촬영 감독의 첫 쾌거
당시 스포츠신문 1·2면에 대서특필
문병곤 감독 단편 ‘세이프’황금종려상
알바하며 제작비 충당한 열정의 승리
‘박쥐’ 송강호 “칸은 올림픽이 아니다”
수상에만 초점 맞춘 취재경쟁에 일침
● ‘춘향뎐’의 칸 경쟁부문 초청, 그 막전막후
2000년 4월의 어느 날, 한 스포츠신문 1면 톱기사는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제53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음을 특종으로 알렸다. 한국영화 사상 최초였다. 앞서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등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선보인 바 있지만 경쟁부문에 한국영화가 초청되기는 ‘춘향뎐’이 처음이었다.
‘춘향뎐’의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은 제작사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과 임권택 감독 그리고 이들과 오랜 세월 함께한 정일성 촬영감독뿐 아니라 한국영화계 전체의 ‘숙원’이었다. 당시 이 신문이 1면과 2면에 걸쳐 관련 내용을 보도한 것도 그런 분위기에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판소리 ‘춘향전’을 영상화한 ‘춘향뎐’은 이미 프랑스에서 명성을 얻고 있던 임권택 감독의 역량과 이태원 사장의 오랜 집념 그리고 칸 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로 일하며 임 감독의 영화를 현지에 꾸준히 소개해온 피에르 르시앵 등이 힘을 모은 성과였다.
그리고 5월 말 이태원 사장은 칸에서 경험한 감흥을 털어놓았다. “호텔에서부터 영화제 메인 행사장인 팔레 데 페스티벌의 레드카펫까지 정중했던 의전은 오랜 세월 꿈꿔왔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한국영화에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레드카펫은 그야말로 ‘꿈의 주단’이었다.
당시 스포츠신문은 영화제 측의 공식 발표 이전에 관련 내용이 알려져서는 안되는 ‘철통 같은 보안’을 뚫고 이를 단독보도했다. 이태원 사장은 신문을 보고 아연실색했고, 기사를 쓴 기자에게 온갖 분노를 쏟아냈다. ‘물을 먹은’(낙종) 국내 많은 매체의 취재진의 이태원 사장 등을 향한 원망도 오랜 시간 이어졌다.
● “아르바이트로 번 돈, 수상의 영광까지”
2013년 66회 영화제에서는 또 하나의 낭보가 날아왔다. 문병곤 감독이 단편영화 경쟁부문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것이다. 불법 게임장 환전소에서 아르바이트 여대생이 가불금을 갚기 위해 돈을 빼돌리며 벌이는 영화 ‘세이프’(Safe)가 영광을 차지했다.
이 역시 한국영화 최초의 기록이다. 황금종려상은 칸 국제영화제 장·단편 경쟁부문 최고의 상. 아직 장편영화로는 이를 받지 못했지만 문 감독은 단편영화로 당당히 상을 받았다.
문병곤 감독은 ‘세이프’의 제작비 가운데 300만원을 “알바를 하면서 번 돈”으로 충당했다. 사무보조원과 빵 포장 등 온갖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렇기에 황금종려상 수상은 더욱 의미 깊게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단편영화는 장편영화에만 쏠리는 일반의 관심 밖에서 각국의 영화산업의 또 다른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도 한국영화계의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칸 국제영화제 수상은 영화관계자들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수상 자체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 받는 영화제에서 자신의 영화를 소개하는 것 역시 소중한 경험으로 많은 영화관계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전도연이 2007년 60회 영화제에서 영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서울 압구정CGV에서 가진 기자회견 모습. 스포츠동아DB
●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다”
2009년 영화 ‘박쥐’로 62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해외 관객을 만난 주연 배우 송강호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과 영화의 수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과는 다르다.”
이어 “영화가 수상을 하지 못하면 마치 작품에 무슨 하자가 있는 것처럼 오해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그 9년 전인 2000년 5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박쥐’의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자신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영화는 국내에서 크게 흥행한 뒤였고 영화제 현지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영화의 작품적 완성도는 물론 한국 분단상황의 아픔을 그린 영화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영화에 호감을 보인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지향과도 맞기도 했다.
덕분에(?) 영화는 수상 가능성이 점쳐졌다. 하지만 당시 현지 취재를 간 국내 취재진들의 다소 흥분도 이를 부추긴 게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가 보도를 타고 국내에까지 이어지면서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로부터 수상 가능성 여부를 묻는 전화까지 받았다.
당시 수상의 성과는 없었지만 송강호를 비롯한 관계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다. 칸에서 한 송강호의 발언은 이런 경험을 바탕에 깐 것이었다. 송강호는 칸에서 “세계적인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 자체가 상이다”고 말했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도 한국영화가 다수 상영된다. 물론 국내 취재진도 여럿 현지에서 취재경쟁을 펼친다. 다만 ‘진출’ ‘수상 실패’ ‘수상 좌절’ 등 표현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