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KBL
이처럼 몸싸움이 심한 스포츠에선 양 팀 선수가 동시에 또는 차례로 파울을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양쪽 선수가 자리다툼을 위해 허용되지 않을 정도의 몸싸움을 하거나, 상대방의 반칙에 대해 보복적 행동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때는 통상적으로 두 선수 모두에게 파울이 선언된다. 어느 한 쪽이 더하고 덜하고를 따지지 않는다. 다만 그 정도에 따라 덜한 선수에게는 조금 약한 파울이, 더한 선수에게는 강한 파울이 선언된다. 또 사후 징계의 정도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두 선수 모두에게 파울이 선언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처럼 더블 파울이 선언된 경우 선수들은 억울하다는 몸짓을 자주 보인다. ‘내 잘못은 상대방만큼은 아닌데, 왜 나한테도 파울을 부느냐? 상대방의 잘못이 더 크니 상대방에게만 파울을 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미다. 과연 그럴까?
● 상대방에 맞서 싸우면 내 죄는 덜어질까?
국가의 질서유지를 위해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A는 밤늦게 술을 마시다가 옆 테이블에 있던 B와 시비가 붙었다. B와 그 일행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 좀 조용히 해달라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A는 나름 정중하게 요청했지만, 술에 취한 B가 자꾸 시비를 걸어왔다. A가 응대하지 않자 화가 난 B가 주먹으로 A를 때리기 시작했다. A는 처음에는 방어만 했다. 그러나 B의 폭행이 계속되자 주먹으로 B를 몇 대 쥐어박았다. 이 경우 A의 행위는 정당할까?
판례는 ‘A의 행위가 B의 부당한 공격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서로 공격할 의사로 싸우다가 먼저 공격을 받고 이에 대항하여 가해하게 된 것이다. 싸움의 경우 가해행위는 방어행위인 동시에 공격행위의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싸움에서 누가 더 많이 때리고 누가 더 조금 때렸는지는 죄의 성립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처벌 수위를 정하는 데 참고가 될 뿐이다. 이처럼 스포츠에서의 경기장질서유지를 위한 징계나, 국가에서의 사회질서유지를 위한 형벌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잘못과 나의 잘못이 상쇄되지 않는다.
● 손해배상은 어떨까?
상대방의 잘못이 내 잘못을 정하는 데 참작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민법상 ‘과실상계(過失相計)’라고 한다. 상대방의 행위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손해배상액을 정할 때 손해를 입은 사람의 과실도 있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그 과실의 정도를 고려해 배상액을 정한다.
교통사고를 예로 들어보자. B의 과실로 A가 100만원의 손해를 입었다. 그런데 B도 A의 과실로 20만원의 손해를 입었다. 이 경우 절차를 따지자면 A가 20만원을 준비하고, B가 100만원을 준비해 동시에 서로에게 주어야 한다. 그런데 A가 주어야 할 20만원을 B의 배상금에서 깎아주면 불필요한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이처럼 과실상계는 절차의 편의를 위해 실제로 주어야 할 돈만 계산해 건네도록 한 것일 뿐이다. 질서유지의 관점이 아닌 개인간의 손해를 돈으로 계산해 보전해주는 경우에 가능한 것이다.
● 파울 콜(Call)은 상계의 대상이 아니다!
국가의 형벌권 행사인 형사책임의 영역에선 이런 상계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징계는 단순히 돈으로 손해를 배상해주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형사책임이나 징계책임의 영역에선 손해배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국가를 국가답게, 스포츠를 스포츠답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형벌권, 징계권의 영역이다. 내 허물이 남의 허물로 덮어지지 않는 것이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