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 “난 부족한 지도자…그래서 배우고 후회하고 또 성장한다”

입력 2017-06-0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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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이 성남 분당의 자택에서 스포츠동아와 만났다. 신 감독은 U-20 월드컵 8강 진출에 실패한 뒤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남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U-20 월드컵 그 후… 신태용 감독

포르투갈전 패배, 너무 성급했던 내 잘못
선수들에게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당부
믿고 쓰는 소방수? 급할 때 불러줘 행복
선수들과 눈높이 맞추는 감독 되고싶다


파릇파릇한 청춘들의 월드컵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코리아 2017’에서 높이 비상하려던 한국축구의 도전은 5월을 넘기지 못했다. 신태용(47) 감독이 지휘한 U-20 대표팀은 지난달 30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포르투갈과의 16강전에서 1-3으로 져 1차 목표로 삼았던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아쉽지만, 소득이 없진 않았다. ‘신나는 축구’를 모토로 나름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다. 스스로의 처지를 되돌아봤고, 문제점을 정확히 발견했다. 아직은 어린 태극전사들도, 갑자기 중책을 맡았던 신 감독도 한 수 배울 수 있었다. 촉촉한 비가 메마른 대지를 적시던 7일 성남 분당의 신 감독 자택에서 안타까웠던 어제와 희망에 찬 내일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신태용 감독. 성남|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U-20 월드컵&세계 속의 한국축구

-포르투갈전이 끝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렇게 끝났구나’ 싶어 허탈했다. ‘우리 친구들이 가진 능력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부터 했다. ‘너무 높은 목표를 잡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고, ‘이보다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또 확신이 있었는데’라며 아쉬움을 삼켰다. 아마 심적 부담이 컸을 것이다. 우리 선수들의 다음 단계를 고민하게 됐다.”


-대회를 빨리 마친 뒤 선수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했나?

“당부를 했다. ‘기죽지 말고, 이제 시작이다’라고. ‘오늘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라고 했다. ‘졌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아픔을 통해 더 좋은 선수가 되자’고 했다. ‘우리는 큰 경험을 했다. 세계적 강호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느꼈다. 순간순간, 상황 하나하나를 되새기며 더 채우자’고 당부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신 감독은 다양한 세트피스 전략으로 ‘죽음의 조’를 통과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긍정 반, 아쉬움 반이 뒤섞였다. 고질인 세트피스 실점은 없었지만, 득점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묻겠다. 세트피스 준비는 정말 잘 됐나? 전술변화가 과도했다는 평가도 있다.

“정말 열심히 대비했다. 다만 여유를 찾지 못했다. 일반인도 공부를 하다보면 아는 답조차 잊을 때가 있지 않나. 이번 대회가 그랬다. 전술변화? 외부에서 볼 때는 어린 친구들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고 비쳐지겠지만,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주지 않았다. 기본적인 틀을 조금씩 상황에 맞게 바꿨을 뿐이다. 우리가 포르투갈을 깨기 위해 4-4-2 포메이션을 가동했는데, 우루과이도 8강에서 같은 전략으로 임했다.”

스포츠동아DB



-후회는 없나?

“선택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좀더 냉정해야 했다. 나는 전반 45분에 승부를 보려고 했고, 포르투갈은 90분을 길게 썼다. 상대는 우리를 이기기 위해 라인을 내렸고, 카운트어택에 나섰다. 내가 너무 성급했다. 이기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 방법을 풀어가지 못했다.”


-강호들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는 1차전부터 100% 힘을 쏟았다. 매 경기를 결승전처럼 치렀다. 반면 강호들은 여유롭다. 경기를 치를수록 더 강한 전력이 된다. 상대들은 좋은 환경에서 질 높은 축구를 꾸준히 경험한다. 반면 우리 선수들은 대학에서조차 제대로 뛰지 못하고 있다. 자꾸 부딪혀야 자신만의 루틴을 찾고 해법을 얻을 수 있는데…. 그래도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최대한의 재미를 찾아주려고 했다. 공격과 수비축구는 첫 터치에서 갈린다. 볼을 앞에서 잡아줄지, 안전하게 뒤로 방향을 틀 것인지의 차이다. 우리는 대개 ‘전진모드’였다.”


-이런 격차를 어떻게 좁혀야 하나?

“결국 뛰고 부딪히고 싸워야 한다. 실전이 곧 성장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크다. 밑바닥부터 꾸준히 키우고 육성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축구인 모두가 머리를 함께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정말 열심히 하는 우리 선수들을 단순한 유망주로 머물게 하고 싶지 않다. 물론 축구계만 노력할 일은 아니다. 대학축구만 봐도 학점제 도입으로 인해 한계가 드러났다. 최대한 좋은 방법을 찾고 해결하는 과정에 돌입해야 한다. 축구는 계속되니까.”

신태용 감독. 성남|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소방수&이상적 지도자

신 감독은 지도자 경력의 대부분을 ‘구원투수’로 보냈다. K리그 성남일화(현 성남FC)에서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그랬고, 그 뒤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과 이번 U-20 월드컵을 치렀다.


-외부에선 ‘믿고 쓰는’ 1순위 소방수라고 본다.

“감독 경력의 8할이 그랬다. 그래도 좋게 본다. 급할 때 찾아준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을 인정해주고 좋게 봐준다는 의미 아닌가. 나는 학연, 지연도 없다.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다. 팬들의 인정도 너무 행복하지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믿고 기용한다는 것도 정말 좋다.”


-자신만의 지도철학은 무엇인가?

“프로와 대표팀, 성인과 연령별 선수에 대한 접근은 달리해야 한다. 다만 내가 선수시절 가장 싫어했던 부분을 피하려고 나름 애를 쓴다. 나 역시 19세 대표, 올림픽 대표로 뛰었다. 내가 싫어했으면 지금 선수들도 싫다. 최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미리 체크하려고 한다. 한 예로 전체 스케줄을 공개하는 것이다. 선수들이 남은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일정을 알렸다. 직접 뛰는 선수가 휴식과 훈련을 병행하며 자신의 패턴을 찾도록 해줬다.”


-이번 대회에서 지켜본 상대국 지도자들과 본인의 교수법은 어떤 차이가 있나?

“상세히 알 순 없어도 연령별 대표팀은 특성상 선수들을 철저히 믿어줘야 한다. 어린 친구들은 순간적으로 흥분하고, 오버액션을 취하기도 하는데, 이를 과도하게 잡기보다는 다독여야 한다. 직접 싸우고 TV를 통해 지켜본 결과, 감독들 대부분이 묵묵히 선수들을 격려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감독 초창기를 돌아볼 때 지금 자신은 어디에 와 있나?

“성남 감독대행을 맡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확실하게 이어가는 부분이 하나 있다. 선수가 아니라, 지도자가 먼저 희생해야 한다는 점이다. 독불장군이 돼선 안 된다. 좋은 회사가 그렇듯이, 선수들은 동반자이지 부하가 아니다. 최대한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높은 점수를 주진 못하지만, 충분히 열심히 한다고 자부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는 누구인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당시 우리를 이끌어주신 크라머 감독님이다.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닌, 눈높이를 제자들에 맞추신 그 분의 모습을 보면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현재 롤 모델은 딱히 없지만,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최대한 현장을 찾아 많은 경기를 본다. 감독들의 제스처 하나하나에, 전술 선택 모두에 의미가 있다. 나는 계속 배우고, 깨우치고, 후회하고 성장한다. 아마 죽을 때까지 ‘완전한 감독’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故 크라머 감독.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성남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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