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봉준호 “논란 안고 시작한 ‘옥자’ 10년 뒤 본다면”

입력 2017-07-07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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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과의 한 시간은 너무 빨랐다. 뛰어난 이야기꾼이자 달변가이기도 한 봉 감독은 질문 하나에도 여러 이야기를 꺼내며 답을 했다. “무슨 이야기 하다 이 이야기까지 하게 됐죠?”라고 하다가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찾더니 마케도니아에서 탄생한 ‘옥자’ 음악 연주 영상을 보여주며 또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긴 이야기를 해도 지루하지 않고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을 보면 그는 참 이야기꾼이다.

그런 그가 분홍색 돼지 ‘옥자’를 데리고 왔다. 덩치는 크지만 소심한 돼지. 여린 돼지 한 마리로 봉 감독은 관객들에게 동물 보호나 자본주의 그리고 미자와 옥자의 사랑 이야기 등을 풀어놨다. 비록 이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나올 때까지는 참 어려운 여정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관객들에게 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봉 감독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영화를 완성시켜 세상으로 내놓는 것이 그가 할 일이었으니까.

- 개봉까지 험난한 길을 걸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별로 안타까운 것은 없다. 개봉을 앞두고 즐거운 상태다. 사실 재개봉하는 기분이다. 칸 국제영화제를 포함해서 기자회견을 7번 정도를 했고 인터뷰도 100번 이상을 했기 때문에. (웃음) 새로운 출발이야. ‘설국열차’ 후에 4년 만에 이 카페에 온 것 같아. 여기서 일주일을 보냈는데.

- 흥행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없나.

모든 감독들이 예술영화·상업영화로 부담감이 있을 거다. 영화를 만드는 것도 일이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그런데 ‘넷플릭스’는 손익분기점이 따로 나오진 않으니까. 투자 등에서 해방돼있는 상태니까 영화를 완성시키는 만든다는 것에 대해 기분이 좋았다. 대신 큰 화면에서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에 애를 많이 썼다. 지금 10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을 준비 중이지 않나. 넷플릭스 사상 가장 많은 스크린을 확보한 영화가 되기도 했다. 북미와 영국 쪽에서 스크린 개봉을 준비 중이다. 가늘고 길게 버텨볼까 생각 중이다. 매 주말마다 GV를 해야 하나 싶다. (웃음)

- 대한극장에서 언론시사회를 했는데 봉 감독 역시 오랜만에 방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예전에는 대한극장에서 ‘슈퍼맨’도 보고 그랬는데. 사라진 극장도 참 많은 것 같다. 지금 서울에는 대한극장이나 서울극장이 살아남았고 대구나 전주, 인천에도 오래된 극장들도 있지 않나. 다시금 가볼 기회가 생겨 좋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오래된 극장 살리기’ 같은 운동 차원에서 한 것이 아닌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됐다. 명분이나 근사한 ‘운동’과 같은 코스프레를 하는 건 절대 아니다.


- 이 이야기가 ‘이수교차로’에서 시작이 됐다고 들었다.

운전을 하다가 이수교차로에 있는 고가도로에서 거대한 돼지가 있는 모습을 봤다. 본 게 아니라 상상을 했다고 말하는 게 더 맞다. 고가도로를 꽉 채운 엄청난 크기의 돼지. 덩치는 큰데 불쌍하고 소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돼지였다. ‘옥자’는 거기서부터 시작이 된 것 같다. 그러다 영화 작업을 거치면서 점점 현실적인 사이즈가 된 거지. 미자가 만지고 이야기도 해야 하니까. 거기서 시작을 했다. ‘미자’ 캐릭터는 2001년 정도에 쓰던 시나리오에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때 쓴 시나리오는 산골 소녀가 우연히 발견한 시가 1억원 상당의 산삼을 캐서 도시로 팔러 가는 이야기였다. 산삼을 들고 도시로 가는 소녀 주변에 나쁜 놈들이 우글대는 거다. 과연 이 광활한 도시에 소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누가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랫동안 묵혀있었던 두 이야기가 합쳐진 것 같다.

- 봉준호 감독의 작품은 여성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

굳이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려고 한 것은 아니다. 단지 ‘개봉’시기가 남자 배우들이 주를 이루는 영화가 많을 때 나와서 그럴 것이다. 성별을 따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미자’ 캐릭터는 2001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벌써 16년 전이다. 마치 ‘와인’과 같지 않나. 어딘가 한참을 두고서 지금 꺼내게 된 게 ‘미자’다. 저돌적인 여자 캐릭터가 필요했고 그와 반대로 ‘옥자’는 내성적이어야 했다. ‘미란도’ 자매 같은 경우는 이미 틸다 스윈튼을 생각해두고 쓴 것이다. ‘비밀 동물 보호 단체’(ALF)같은 경우도 릴리 콜린즈(레드 역)만 빼고는 똑부러진 성격이다. 남자애들은 나사 하나씩 빠져있는 기분이다. 지질하고 허세가 넘친다. ‘설국열차’에서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도 허당이 좀 있지 않나.(웃음)

- ‘미자’ 역을 맡은 안서현에겐 어떤 매력이 있었나.

안서현은 계속 ‘미자’ 역 후보 톱 리스트에 있었다. 예전에 이용주 감독이 황인호 감독의 ‘몬스터’(2014)를 보곤 “‘몬스터’에서 안서현을 꼭 봐라”고 하더라. 괴이한 연기를 해서 떼굴떼굴 구르며 영화를 봤다나. 그래서 저도 안서현을 유심히 봤는데 특이했다.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했나 싶고. 이후 황인호 감독을 한 감독 모임에서 만났는데 “안서현은 똘똘하고 무게중심이 잡혀있는 배우”라고 하더라. 그런데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옥자’를 촬영하며 내가 따로 디렉팅을 할 게 없었다. 거의 잡담이 위주였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웃음) 강단이 있는 배우다. 마치 코뿔소 같이 저돌적인 느낌이 나는 배우라고 해야 되나. 틸다 스윈튼과 제이크 질렌할과 촬영할 때도 들뜬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 세계적인 배우랑 연기를 하면 흥분할 수도 있을 텐데 안서현은 늘 평온했다.(웃음). 정말 ‘미자’처럼 담담하게 있었다.

- 이번 ‘옥자’에서도 ‘자본주의’를 느끼게 됐다. 마지막에 ‘옥자’를 금덩이와 맞바꾸는 장면에서 그걸 느낄 수 있는데 ‘미자’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우리 스태프들끼리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산 속에서 살던 순수한 미자가 결국 자본주의적 거래를 하는 결말이었으니까. 생애 최초의 거래를 하게 되는 순간이 아닌가. 씁쓸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런데 미자가 낸시(틸다 스윈튼)이게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옜다’하는 뉘앙스로 금덩이를 확 굴려서 주지 않나.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이거나 먹고 떨어져’다. ‘옥자’를 단순히 상품이라 생각하는 낸시는 미자에게 딱 그 정도의 사람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며 미자는 과연 확 변했을까. 그의 순수함은 모두 파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독한 경험을 했지만 결코 그 순수함은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보시는 분에 따라 ‘동화 같은 결말’이라고 보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다.


- 영화를 보면 ‘분홍색’과 ‘녹색’이 눈에 띈다.

처음부터 ‘핑크빛 돼지’를 생각했다. 미술감독과 ‘분홍색’과 ‘녹색’을 주로 이야기 했다. ‘녹색’은 미란도 그룹의 거짓됨을 표현하고자 했다. 실제로 국내에 ‘미란도’ 그룹과 같이 친환경을 앞장세워 유전자 변형 식품(GMO)을 만들어내는 다국적 기업이 있다. 취재를 위해 거기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영화 속 ‘미란도’처럼 본사에 들어가면 큰 유리창에 안내 데스크 직원 한 사람이 있다. 문은 안 열리고 바깥 전화로 입장이 가능했다. 그런데 광고는 “우리는 친환경이다”라고 하니까 너무 웃기지 않나. ‘미란도 그룹’이 그런 곳이다. 녹색이지만 그 속을 들추면 ‘가짜 녹색’인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강원도에서 촬영한 숲은 진짜 녹색이다. 자연의 녹색. 다리우스 콘지 감독과 촬영을 하면서 내용은 어두워도 화면은 밝게 가자고 했다. 미자가 사는 곳은 자연의 햇살을 담아내고 싶었다.

- ‘괴물’, ‘설국열차’ 등을 보면 꼭 후세를 암시하는 인물이 있었다. ‘옥자’에서는 ‘새끼돼지’가 살아남았다.

‘설국열차’도 두 아이가 살아남지 않나. 이번엔 새끼돼지였는데, 몰래 빼오기 쉽기 때문에?(웃음) 그냥 속편을 누군가 찍어주길 바라는 마음인 것 같다. ‘옥자’ 같은 경우 쿠키 영상도 약간 속편의 도입부처럼 찍었다. 폴 다노가 감옥에서 나오면 그 새끼돼지도 많이 커졌을 거고 거기서부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웃음) 정윤철 감독에게 ‘괴물2’에 관심 없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설국열차’ 같은 경우는 미국 드라마로 제작 결정이 났을 때 파일럿 제안을 받았는데 다시 그 기차로 돌아가기가 싫더라. 하하. ‘옥자’도 누군가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준다면 좋을 것 같다.


- 다음 차기작은 ‘기생충’이다. 어떤 작품인가.

2013년에 누군가 붙잡고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아마도 ‘옥자’를 준비할 때 20페이지 정도의 스토리라인을 썼다. 이후에 ‘철원기행’의 김대환 감독이 초고를 썼고 또 다른 젊은 작가가 재고를 쓴 상태다. ‘기생충’은 상태가 안 좋은 가족의 이야기다. ‘옥자’를 보내고 여름이나 가을에 시나리오를 쓰려고 준비 중이다. 내년 초에 촬영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송강호 씨가 출연을 한다는 기사를 봤다. 출연 여부를 의논하던 때였다. 하지만 아직 시나리오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출연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시나리오가 배우에게 안 맞으면 선택을 안 할 수도 있으니까. 송강호 씨가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웃음) 촬영이 시작되면 조용히 찍고 싶다. 하하.

- 이제 ‘옥자’를 떠나보낸다. 기분이 어떤가.

아까도 말했듯이 재개봉하는 기분이다. 누군가는 단순하게 보인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마지막에 예기치 못한 장면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까지 총 여섯 편의 작품을 했는데 언제나 내 작품은 엇갈리는 평이 있었던 것 같다. 2013년에 ‘살인의 추억’이 10주년이었다. 그 때는 마치 장롱에 감춰뒀던 물건을 다시 본 기분이 들었다. 아마 ‘옥자’도 10년 뒤에 보면 그런 기분이 들 것 같다. ‘옥자’는 의도치 않게 화제와 논란을 껴안고 출발을 했잖아요. 사실 저는 큰 예산이 필요해서 넷플릭스를 선택한 거지, 영화의 미래나 스트리밍 사업에 큰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 소란들이 좀 거둬지고 시간이 지나고 재상영이 됐을 때 ‘옥자’를 보면 기분이 남다르지 않을까.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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