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롯데 조정훈, “늦었을 뿐, 나의 길로 돌아왔다”

입력 2017-07-1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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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조정훈. 스포츠동아DB

롯데 조정훈(32)의 왼 팔목에는 긴 상흔이 있었다. 공을 던지는 오른팔의 복원을 위해 인대를 빌려준 흔적일 터다. 7년이라는 침묵의 시간을 거쳐 사직야구장으로 돌아온 조정훈에게 들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믿을 수 없음을 믿어야했던 세월을 견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진중함이었다. 조정훈의 어투는 느렸고, 같은 말을 자주 반복했다. 꼭 해야 할 말만 전달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래서 더욱 진정성이 묻어났다.

롯데 조정훈. 스포츠동아DB



● “늦었을 뿐, 나의 길로 돌아왔다.”

7년 만에 돌아온 조정훈의 심경을 어찌 타인이 헤아릴 수 있을까. 수술과 재활의 반복, 보는 이들도 지쳐갈 무렵 조정훈은 기적처럼 돌아왔다. 복귀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인간승리’로 비쳐진다. 그러나 당사자의 생각은 달랐다. 조정훈은 하나의 ‘미담’이 아니라 롯데의 전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싶어 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돌아왔다는) 나 자신에 대한 칭찬보다는 (복귀가 너무 늦어서) 내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2군 경기 조금 많이 던지고 (1군에) 왔다고 다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정훈의 가장 큰, 그리고 유일한 목표는 “롯데에 민폐가 되지 않는 것”이다. “1군 마운드에 오르는 압박감 자체는 없다. 다만 팀이 중요한 상황이니까 잘해야 된다는 긴장감은 있다.” 그를 1군으로 부른 롯데 조원우 감독은 “몸 상태에 맞춰 기회를 주겠다”고 배려를 했다. 조정훈도 2009년 다승왕(14승) 모드로 던질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지금의 내 형편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을 팀에 주고 싶다”고 소박한 목표를 말했다.

조정훈의 카카오톡 메시지는 ‘반드시 다시 일어선다’였다. 7년이라면 한 인간의 신념이 흔들리기 충분한 시간일 터다. 그러나 조정훈은 “나의 복귀가 어렵겠다는 비관은 해본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별히 의지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이 길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안되더라도 갈 데까지 가보자고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끝까지 갈 길은 이 길이었다.”

롯데 조정훈. 스포츠동아DB



●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돌아온 조정훈은 표현을 잘 못할 뿐,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롯데 야구단에 감사하다. 기약이 없는 선수의 수술과 재활을 돕고, 꼬박꼬박 연봉 재계약까지 해준 ‘의리’를 잊지 못한다. 효율성이 미덕인 프로의 세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처음 몇 년은 롯데 에이스의 복귀를 기대했겠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선수 1명의 인생을 위한 선의가 더 작용했을 것이다. 조정훈은 팀을 향한 고마움을 짧지만 묵직한 한마디로 말했다. “지금부터 보답할 시간이다.” 김해 상동에서 재활을 지켜보고, 도운 손상대 2군 감독과 옥스프링 2군 투수코치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손 감독님은 캠프 때부터 철저하게 다 맞춰주셨다.” 이런 배려가 쉽지 않은 일임을 산전수전 다 거친 조정훈은 잘 안다.

25살에 사라진 에이스가 32살에 돌아왔다. 팔이 아팠던 만큼, 가슴은 단단해졌다. “힘들었던 시간이 좋았던 시간보다 많았다. 그 과정을 거치며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다. (다치기 전까지는) 앞만 보고 가는 시간의 계속이었는데 (재활 기간) 나를 되돌아보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놓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가치들도 놓게 됐다. 그렇게 힘들고 갈 데까지 가봐야 사람은 (당장이 가장 힘들어보여도) 더 힘든 것이 있음을 아는 것 같다.” 한편 조정훈은 9일 사직 SK전에 8회 구원등판해 1이닝 무실점 투구를 기록했다. 2583일 만에 돌아온 1군 마운드였다.

9일 SK전에서 복귀전을 치른 조정훈.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사직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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