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원님 재판식 징계, 이게 최선입니까?

입력 2017-08-1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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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상벌규정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각 종목 연맹과 협회가 징계규정을 공개적으로 게시하면 선수들이 쉽게 인지하고, 좀 더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 사진은 NC시절이었던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어 물의를 일으킨 프로야구선수 에릭 테임즈(왼쪽).스포츠동아DB

허술한 징계규정…잣대도 들쭉날쭉
먼저 징계대상부터 명확히 규정하고
‘같은 잘못에 같은 처벌’ 원칙 지켜야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역사 드라마에서 죄인을 심문하면서 단골로 등장하는 멘트다. 보통 이런 재판을 ‘원님 재판’이라고 부른다. 죄가 되는지 여부와 어떤 벌을 줄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원님’이 마음대로 결정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사실 백성의 입장에서는 자기 죄가 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제법 있다. 어떤 게 죄가 되는지, 처벌은 어떻게 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물건을 훔치는 것이야 누구나 잘못된 일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구역은 왕실의 사냥터이니 들어가선 안 된다거나 나라님이 소를 잡아선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은 백성 입장에서는 쉽사리 알기 어렵다.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해선 안 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 명확한 상벌규정이 필요해

백성들이 법을 알기 어려웠고, 때문에 지키기도 어려웠던 문제는 현대에 와서는 많이 없어졌다. 쉽게 법전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행정관청에서 설명과 계도를 하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중요한 법률이 새로 나오면 사례를 분석하고 해설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알기 어려운 분야가 있다. 스포츠가 바로 그렇다.

어느 협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징계규정을 찾아보았다. 2013년 제정되어 4차에 걸쳐 개정된 징계규정이 있었다. 징계위원회의 구성, 위원의 임기, 징계의 종류 등에 대해 규정되어 있었다. 다만, 구체적인 위반행위와 징계의 정도는 본문이 아닌 별표 형태로 따로 있었다. 표로 되어 있다 보니 법률전문가조차도 쉽게 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다른 협회의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았다. 상벌위원회의 설치와 관련한 부분은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구체적인 징계규정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징계규정이나 상벌규정은 갖고 있지만 일반에 따로 공표하진 않는 것 같았다. 공표뿐이 아니었다. 실제로 협회 관계자에게 물어보아도 따로 상벌규정을 교육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징계에 대한 불만도 상당했다. 같은 음주운전에 대해 어느 선수는 14게임 출장 정지의 징계를 한 반면, 다른 선수는 72게임 출장 정지의 징계를 했기 때문이다. 고무줄 징계라고 해도 할 말이 없어 보였다. 징계규정이 잘못을 사전에 막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 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형벌 없다.

법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중요한 법의 원칙으로 인정되는 격언이다. 법률에 범죄와 형벌에 대해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고, 형벌을 가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 헌법과 형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대원칙이다. 이렇게 법률에 어떤 게 범죄고, 어떤 범죄를 저지르면 어떤 형벌을 준다고 규정하는 이유는 뭘까?

보통은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원님 재판’처럼 형벌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도 있다. 바로 잘못된 행위를 사전에 예방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징계규정도 마찬가지다. 선수나 코치, 협회 관계자 등 상벌규정의 잠정적 적용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이런 행위가 징계의 대상이 되고, 징계는 어느 정도가 된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행위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즉 미리 징계의 대상과 징계 정도를 알려줌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알려주는 것이다.


● 지킬 수 있게 하려면 알게 해야

‘축구팀도 일반 회사와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합니다. 속박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모두가 자유롭기 위한 규칙 말입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아스날의 감독 아르센 벵거의 말이다. 세계적인 명장은 축구 철학에 있어 자유를 중요시하는 감독으로 평가된다. 그런 그마저도 모두가 자유롭기 위해 최소한의 규칙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그 말의 전제는 최소한의 규칙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벌규정이 협회의 홈페이지에 공표되어 있는 협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킬 수 있게 하려면 알게 해야 한다.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Sports & Law Story’는 이번 회로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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