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이원식.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벤치 쪽으로 힐끔 쳐다보면 어김없이 몸을 풀고 있었다.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투입과 동시에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원식은 2006년 대전에서 은퇴할 때까지 11시즌 동안 270경기 중 197경기를 교체 출전했을 정도로 교체 전문이었다. 득점도 73골 중 46골을 교체 투입된 뒤 넣었는데, 통산 교체출전 득점 1위에 올라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후반전의 사나이’, ‘후반전의 해결사’로 불렀다. 키는 크지 않지만(172cm) 폭발적인 돌파와 슈팅 능력이 탁월해 상대 수비가 막기 버거운 공격수로 각인되어 있다.
또 기억나는 선수는 한양대 출신으로 2002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한 노병준이다. 스피드 하나는 죽여줬다. 후반에 투입되면 상대 수비가 지친 틈을 타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순발력과 과감성이 장점인 훌륭한 조커로 평가받았다. 전남에 이어 포항과 울산, 대구에서 뛰며 2016년 은퇴한 그는 331경기에 출전해 59득점을 기록했는데, 교체로 나서 26골을 넣었다.
선수 시절 노병준. 사진제공|포항 스틸러스
이처럼 축구에서는 선발 못지않게 조커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강팀이 되기 위해서는, 또는 우승을 위해서는 3~4명 정도의 뛰어난 조커가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조커로 이름 석자를 알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특화된 기량이 필요하다.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조커의 선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오버페이스를 해 지쳤다고 판단될 때는 스피드가 좋은 선수를 부른다.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 수비진을 허물겠다는 계산이다.
반드시 이겨야하는데 상대 수비가 완전히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을 때는 키가 큰 선수나 힘이 좋은 카드를 고른다. 장신을 이용한 세트피스나 고공 플레이로 한방에 제압할 수 있는 카드다.
이기고 있을 때의 교체 투입도 머리를 잘 써야한다. 대개는 발재간이 좋은 선수가 투입된다. 볼을 다루고 소유할 수 있다는 건 시간을 조절하며 추격하는 상대를 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교체 시점은 후반 15분 정도로 잡는다. 이 때가 선발들의 체력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저하되는 시점이다.
교체 타이밍을 잘 잡는 건 감독의 능력이다,
그렇다면 올 시즌 최고의 조커는 누구일까.
올 시즌 클래식(1부) 총 득점(10월19일 현재)은 560골인데, 교체 투입 후 득점은 17.3%인 97골이다. 97골 중 결승골은 25회다. 강원 디에고가 4골로 가장 많고, 강원 문창진과 서울 데얀이 각각 2회씩을 기록했다.
강원 디에고.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디에고는 올 시즌 12골 중 11골을 교체투입 이후 기록했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광주 완델손도 5골을 기록했는데, 특히 10월 15일 열린 전남전에서 교체 투입된 뒤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시우타임’으로 유명한 인천 송시우도 올 시즌 5골 중 4골을 교체로 들어가 넣었다. 그 중 2골은 1골 차로 지고 있다가 무승부로 이끈 골이고, 1골은 0-0에서 기록한 결승골이다. 포항 이광혁은 5도움 중 4도움을 교체투입 후 기록해 해결사를 돕는 도우미로 각광받고 있다.
축구는 팀 스포츠다.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가 무엇보다 중요한 종목이다. 선발과 조커의 조화도 강팀으로 가기 위한 요소다. 선수라면 누구나 선발로 나서고 싶어 한다. 풀타임을 뛰어야 자신의 존재가치를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고집하거나 불평불만을 가질 경우 팀 밸런스는 무너진다. 결국 조커를 고르고, 그 조커를 관리하는 것 또한 감독의 능력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