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올슉업’ 제이민, “눈물의 연습이 나를 발효시켰다”②

입력 2017-10-29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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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인터뷰(1편)에서는 주로 헤드윅의 이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2편에서는 제이민의 헤드윅 이후 차기작인 올슉업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조금은 그의 개인적인 부분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제이민은 11월 24일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올슉업에서 주인공 엘비스와 사랑에 빠지는 여인 나탈리를 맡는다. 지난 시즌에 이어 두 번째 나탈리이다.

-지난 시즌에 올슉업을 봤습니다. 지난 시즌이라고 하면 대단히 오래된 일인 것 같지만, 사실은 작년이죠? 아주 사랑스러운 나탈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그러고 보면 헤드윅도 그렇고 나탈리도 그렇고. 어쩐지 남장여인 캐릭터 전문이 되어 가는 것 같군요.

“정말 그러네요(웃음). 지난 시즌을 돌아보면, 헤드윅을 준비하고 있는데 올슉업 콜을 받았어요. 아마 이츠학 때문에 중성스럽게 사진을 찍고, 이런 걸 보셨던 게 아닌가 싶은데요.”

-남장 역할에 매력을 느끼는 건가요?

“제가 사람 낯을 가리면서도 털털한 데가 있거든요. 남자 역할을 해보니까 뭐랄까, 어딘가가 뻥 뚫리는 느낌? 헤드윅을 한번 하고 인더하이츠 재연에 합류하니까 ‘초연 때하고 다르게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고들 하시더라고요.”



-또 슬그머니 헤드윅 이야기로 돌아가고 있군요. 그런데 올슉업도 홍익대학 대학로 아트센터죠? 일명 ‘홍아센’으로 불리는. 공교롭게도 헤드윅과 같은 공연장입니다.


“하하! (홍아센에서 연달아 공연하니까) 제가 극장장님 친척이라는 소문도 있어요.”

-올슉업은 남장도 남장이지만, 마지막에 자유를 찾아 떠나는 부분도…헤드윅과 또 비슷하군요.

“이번에 보시면 약간 다른 결말을 보실 듯해요. 지금까지와의 올슉업과 다른. 저한테는 의미가 굉장히 크더라고요.”

-호오~ 어떻게 달라지는 거죠?

“지금은 알려드릴 수 없죠(웃음). 공연장에 오셔서 확인해주세요. 어떻게 보면 미세한 차이인데 제게는 어마어마한 희열로 다가오더라고요. 부산 내려가는 길에 바뀐 대본을 받았는데, 읽으면서 눈물이 났어요.”

-개인적으로 ‘헤드윅을 한 배우는 어떤 작품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어요. 지난 시즌에도 헤드윅을 하고 곧바로 올슉업을 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 코스로군요. 두 작품이 패키지로 묶이기라고 한 걸까요?

“그러게요, 정말. 전 참 좋은 에너지를 헤드윅에서 받아서 올슉업으로 연결해 갈 수 있게 되는 거죠. 운이 좋은 건지. 다행이에요.”

-2012년 잭더리퍼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삼총사, 인더하이츠, 헤드윅, 올슉업, 꽃보다 남자와 같은 작품에 출연했어요. 다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뮤지컬 배우로 팬들에게 각인되기에는 의미있는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뮤지컬을 하는 이유에 대한 건데요. 연기를 하고 싶어서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음악을 좀 더 잘 하고 싶어서?

“아 … 이거는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사실 뮤지컬을 처음 하게 될 즈음에 저는 좀 슬럼프였어요. 공백기도 있었고. 그러던 차에 잭더리퍼의 오디션을 제안 받은 거죠. 오디션을 치렀는데 그 자리에서 연출님(왕용범)께서 ‘잘 해 봅시다’ 해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뮤지컬계에 발을 디디게 된 거군요.

“연습을 하면서 너무 어려웠어요. 태어나서 연기란 걸 해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하죠.”

-일본에서 영화를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영화학과를 졸업하긴 했는데 학교에서 연기를 가르쳐주지는 않았어요. 원래는 연출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당시 커리어(가수)를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겠더라고요. ‘그렇다면 연기를 전공하면 노래와 나를 표현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죠. 그런데 막상 학교에 들어가 보니 커리큘럼을 짜서 연기를 가르친다든가 하는 게 없었어요. 주로 학생들이 모여서 제작을 하는 쪽이었죠.”

-첫 뮤지컬이 쉽지 않았겠군요.

“남산연습실에서 매일 울면서 연습했어요. 그런데 글로리아 넘버를 노래할 때가 되면, 또 그 순간은 너무 행복한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모두에게 죄송한 일 투성이지만, 그래도 저는 모든 게 새로웠고, 즐거웠고, 뮤지컬의 매력이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배운 시간들이었죠. ‘잘 하고 싶다’, ‘계속하고 싶다’ …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데뷔 전에 뮤지컬 작품을 본 적은 없는 건가요?

“많이 보지는 못했죠. 중학생 때는 대학로에서 소극장 작품들을 봤고, 대극장 작품은 일본에서 처음 봤어요. 맨오브라만차였는데 한국팀이 일본을 방문해 공연했죠. (조)승우 오빠가 나왔어요. 공연이 끝나고 암전이 되자마자 막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어요. 눈물이 나더라고요. 무대에서 저렇게 뛰어다니고, 노래하고. 지금 저 무대 위에 있는 배우들은 얼마나 큰 자유와 희열을 느낄까 싶었죠.”

-직접 배우가 되어보니 어떻던가요?

“직접 해보니까 자유로울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더라고요(웃음).”

-‘희열’이란 단어가 목에 탁 걸리는군요.

“이츠학을 하면서 가장 큰 희열을 느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이츠학이 다시 무대로 돌아오잖아요. 헤드윅은 퇴장을 하고. 그때 정말 많은 생각을 해요. 헤드윅이 살고 간 삶을 바통터치 받은 거죠. 이 삶이 헤드윅처럼 아플 수도 있어요. 하지만 행복할 수도 있죠. 앞날은 누구도 모르는 거니까요. 그 삶을 선택하면서 ‘나는 강해져야겠다’ 다짐하며 관객을 향해 ‘손을 들어라’고 외치는 겁니다. 그리고 암전이 되죠. 그 암전 속에서 저는 사실 엉엉 울고 있거든요.”

-‘좋은 배우’가 ‘좋은 음악인’이 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그건 논할 필요도 없죠. 당연한 거니까.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삶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걸 바탕으로 연기를 했을 때에, 거기서 느끼는 여러 갈래의 감정들. 그리고 그 감정을 되돌려 와서 녹음실에서 다시 음악으로 풀어내는 거죠. 그 표현력은 다른 거 같아요.”

-표현력이 달라졌군요.

“예전에도 녹음실에서 저의 감성을 갖고 노래했지만, 뮤지컬을 한 뒤에는 좀 더 스스로가 풍성해진 느낌이랄까요. 제 노래는 서늘한 편이거든요. 노래에 감정을 과잉해서 넣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담백하게 부르는 거죠. 듣는 사람이 해석할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

-그런데 지금은 변화했다는?

“톤은 지금도 서늘하고 변함이 없지만, 그 안에서 성장한 거겠죠? 좀 더 발효된 반죽?(웃음)”




-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죠. 작가와 마찬가지로 작곡가들도 곡을 쓰는 스타일들이 제각각인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라 … 사실 요즘은 곡 쓰는 친구들이 많아서(웃음).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제가 쓴 곡이 앨범에 많이 나오지 않았거든요. 전 곡을 쓰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아무도 없는 시간이죠. 일본에 있을 때 버스를 타고 가는데(맨 뒷자리였어요) 갑자기 모든 게 다 떠오르는 거예요. 가사며 멜로디며 노래 전체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잊어버릴까봐 막 부르면서 달려갔죠. 집에 가서 곧바로 소형 녹음기에 녹음 했어요.”

-그 곡을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건가요?

“아쉽게도 앨범으로 나오진 않았어요. 콘서트 같은 데에서만 부르죠. 제 오래된 팬들께서는 다 아시는 곡이에요. 언젠가는 자작곡들로만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죠.”

-제이민의 ‘최고의 곡’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는?

“그렇게 되는 건가요? 하하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니 연습생 기간이 짧지 않았습니다. 댄스가수라든지, 걸그룹의 멤버가 되는 것은 고려해본 적이 없었나요?

“처음에 들어갔을 때에는 당연히 춤 연습을 했어요. (연습생이라면) 모두가 하는 거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난 노래하러 왔는데 왜 춤을 추고 있는 거지’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중학교 1학년 때 회사에 선언을 했죠. ‘춤 연습을 그만 하고 대신 기타를 배우고 싶습니다’라고요. 다행히 존중해 주셨고, 암묵적으로 저는 당연하게 솔로로 데뷔하는 걸로 정해진 거죠.”



-그때 해놓은 안무연습이 지금에 와서 이렇게 쓸모있을 줄은 몰랐군요?

“(짝! 박수를 치며) 저도 그 생각 정말 많이 했어요. 인더하이츠할 때 특히 그랬죠. 춤 연습을 그때 계속할 걸 하고. 후회했어요(웃음).”



-인더하이츠 때에는 바네사 역할이었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처음엔 모범생 니나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었죠. 스탠포드 대학에 들어간, 개천에서 용이 난 캐릭터라고나 할까. 저도 나름 성실한 편이라(웃음) 괴리감이 크게 없을 거라 생각하고 ‘해볼게요’했거든요. 그런데 상견례하기 며칠 전날 바네사로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바네사는 마을 댄싱퀸이거든요?”

-황당했을 것 같습니다.

“이지나 연출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이지나 연출 특유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얘! 바네사 춤 잘 춰야 돼. 너 통기타 가수라매?’하셨죠. 전 완전 멘붕. ‘못 하겠다’고 했는데 ‘한 번 해보자’고 하셨어요. 그날부터 텐 투 투엘브(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연습)를 혼자서 했어요. 그래도 매일 집에 울면서 갔죠.”

-또 울면서 연습인가요.

“안무를 외우는 것도 힘들고, 무엇보다 매력을 발산해야 하는 역할이라. 결국 연습을 하다 못 참고 연출님을 찾아갔죠. 그리고 말씀 드렸어요. ‘이 작품은 초연이고, 초연을 망칠 수는 없다. 난 이 작품의 구멍이 되고 싶지 않다. 짐이 되고 싶지 않으니 하차하고 싶다’라고요.”

-이지나 연출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이러셨죠. (또 이지나 연출 성대모사) ‘얘! 너 몇 작품 했어? 열 작품이나 하고 얘기해. 할 수 있어’. 그래서 다시 이를 악물고 하기로 한 거죠.”



이렇게 풀어놓으면 하염없이 긴, 그러나 현실에서는 14분 50초처럼 지나가 버린 제이민과의 인터뷰를 마칠 때가 되었다. 제이민은 헤어지기 전 또 헤드윅 이야기를 꺼냈다.
“헤드윅 인터뷰는 늘 아쉬워요. 기사 나온 걸 보면서 ‘왜 난 이렇게 밖에 얘기를 못했을까’ 후회하죠.”
“이번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제이민이 이 기사를 보게 된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또 한 번 후회할 것이다.

헤어지기 전 이렇게 물었던 것 같다. “앞으로 또 하라면 이츠학을 할 거냐”고. 제이민은 그냥 미소만 지어 보였다. “하하”도 아니고, “크크”도 아니고, “푸흣”도 아닌, 이날 인터뷰에서 제이민이 유일하게 입술을 닫고 보여준 순수한 미소였다.

‘제츠학’은 가고, 이제 ‘나탈리’가 온다. 또 한 번 발효되어 숙성된 제이민을 만날 시간이 되었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고, 거짓없는 사람의 열정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겠다”라는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홍아센의 불빛이 건너다보이는, 대책 없이 창문이 커다란 카페에 제이민을 남겨두고 먼저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니 그녀가 남긴 이야기의 파편들이 한 모금 남기고 나온 커피의 잔향처럼 어느새 어둑어둑 번져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서늘하지만 담백하고, 무엇보다 깊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킹앤아이컴퍼니·제이민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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