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병희 “단역배우로 10년…생계 위해 안 해본 알바 없죠”

입력 2017-10-30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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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다양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해오다 ‘범죄도시’를 만나 제대로 활약한 배우 윤병희. 눈도장 확실히 찍은 덕분에 그를 찾는 곳도 늘었다. 영화 ‘곰탱이’ 촬영을 마쳤고 11월 방송하는 MBC 드라마 ‘투깝스’로 시청자를 찾아간다. 사진제공|카라반이앤엠

‘범죄도시’ 中 공안 위장 정보원
‘남한산성’ 총알 쏘는 병사 중책


‘범죄도시’ ‘남한산성’ 짧지만 강한 인상
‘곰탱이’ ‘투깝스’ 출연…이어진 겹경사

“유창한 중국어? ‘황해’ 때 조선족 경험
미남은 아니지만 순정멜로 찍고 싶어요”

‘신스틸러’는 영화에 짧게 등장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를 뜻한다. 주연을 뛰어넘는 카리스마로 해당 장면을 ‘훔치는’ 배우다. 58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범죄도시’, 같은 날 개봉한 사극 ‘남한산성’에 나란히 출연해 장면을 훔친 배우가 있다. 윤병희(37)다. 이름도, 얼굴도 낯설지만, 짧은 출연 장면을 관객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기는 ‘진짜 신스틸러’다.

윤병희를 이야기하려면 설명이 좀 필요하다. ‘범죄도시’에서 그는 형사 마동석의 정보원으로 활약하는 나이트클럽 웨이터 ‘휘발유’ 역할. 가리봉동에서 벌어지는 조선족 간 싸움의 정보를 ‘빠삭하게’ 취합해 마동석에 전달하는 재치 넘치는 인물이다. 형사들과 짜고 중국 공안인 척 범죄자들을 유인하기도 한다. 이제 ‘범죄도시’를 본 관객이라면 윤병희의 얼굴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영화가 500만 관객을 앞두고 있을 무렵 윤병희를 만났다. 그는 “영화가 인기는 인기인 모양”이라며 “길에서 20대 여성 두 명이 나를 알아보더라”며 어리둥절해 했다. 2007년 영화 ‘7급 공무원’으로 데뷔하고 처음 겪는 “신기한 일”이다.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청년 휘발유(왼쪽 사진)와 가짜 중국 공안(오른쪽 사진)으로 활약한 윤병희의 모습. 사진제공|카라반이앤엠



● 1인 2역으로 오해하는 관객 있을 만큼 ‘완벽 싱크로율’

윤병희는 오디션을 통해 ‘범죄도시’에 합류했다. 영화는 마동석, 윤계상 등 주연을 제외하고 비중 있는 조연을 모두 노련한 단역 배우들에게 맡겼다. 물론 까다로운 오디션을 통과한 실력자들이다. 윤병희도 그 중 한 명이다.

“처음 오디션을 보고 한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더라. 또 안됐구나, 인연이 아닌가 싶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감독님이 휘발유 역할을 해보라고 연락을 해왔다. 촬영 전 고사를 지내러 갔더니 그동안 촬영 현장에서 크지 않은 역할을 나눠 맡으면서 자주 만난 배우들이 많이 모여 있더라. 뭉클했다.”

윤병희는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범죄도시’에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시점은 윤병희가 공안 복장을 하고 나타났을 때부터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윤병희에게 “1인2역을 한 거냐”고 묻기도 한다. 그만큼 다른 매력을 한 편의 영화에서 보였다는 의미다.

조선족 특유의 방언은 물론 중국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한 것도 눈에 띈다.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언어 감각이 없으면 어려운 일. “언어 코치가 옆에서 지도해줘 어렵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실 윤병희는 그동안 단역으로 참여한 영화들에서 조선족 역할도, 중국인 역할도 이미 소화했던 경험자다.

“나홍진 감독의 ‘황해’에서 조선족 웨이터 역할을 처음 해봤다. 그 때 조선족 말을 익혔다. ‘서부전선’에서는 중공군 역할이어서 중국어 대사를 배웠다. 그 경험 때문인지 ‘범죄도시’ 때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남한산성’에서도 윤병희는 신스틸러로서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조선군과 청나라 군대의 긴박한 대립 상황에서 한 명의 병사가 잘못 쏘아올린 총탄이 치열한 전투를 일으킨다. 어리바리하게 총을 쏘는 병사가 윤병희다.

처음엔 병사 중 한 명으로 카메라에 스쳐 지나가는, 그야말로 단역에 불과했다. 하지만 촬영 당일 윤병희의 표정 연기를 인상 깊게 본 ‘남한산성’ 황동혁 감독이 ‘총알 쏘는 병사’의 중책을 그에게 맡겼다.

영화 ‘범죄도시’ 윤병희(오른쪽). 사진제공|메가박스 플러스엠



● “가장의 책임 다하려,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 없을 정도”

윤병희는 대학(호서대 연극영화과)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대학로 연극무대부터 경험했다. 그야말로 무명배우 시절, 자연스럽게 영화의 문을 두드렸다. ‘7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윤병희는 10년간 ‘악마를 보았다’ ‘역린’ ‘해적:바다로 간 산적’ ‘프리즌’ ‘대립군’ 등 영화에 참여했다. 출연영화만 20여 편에 이르지만 대부분 단역. 때문에 ‘범죄도시’는 그에게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영화나 다름없다.

“중학교 3학년 때 막내 누나가 연극 티켓을 줬다. ‘교실 이데아’라는 작품인데 그 연극이 나를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누나가 셋이고 둘째 누나와 나이차는 열 살이나 된다. 부모님도 교직에 몸담으셔서 내가 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 다들 의아해 했다. ‘네 얼굴에 무슨 배우냐’는 말도 들었고. 하하!”

그래도 부모는 아들의 꿈을 지지했다. 젊은 시절 작가를 꿈꿨지만 부모의 뜻을 이루기 위해 교사가 된 아버지가 누구보다 아들 윤병희의 마음을 잘 이해해줬다고 한다.

그런 윤병희는 서른 살에 결혼해 6살·4살 두 자녀를 두고 있다. 단역배우로 생계를 이어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생활비 벌려고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중·고등학교 급식 잔반을 큰 통에 담아 치우는 일이 있다. 일할 때는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끝나고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더니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나를 쳐다보더라. 냄새가 심하게 나서 슬금슬금 피하는 게 느껴졌다. 좀 울컥했다.”

가끔 공연 관련 아르바이트를 할 때면 배우 지망생 혹은 단역 배우들도 만난다. 윤병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일하는 눈빛을 보면 배우란 걸 알 수 있다. 뭔가 안으로 다짐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가장의 책임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배우를 관둬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윤병희는 마동석과 최근 영화 ‘곰탱이’를 찍었다. ‘범죄도시’에 이어 두 번째 만남. 동시에 11월 방송 예정인 MBC 드라마 ‘투깝스’에도 출연한다. 연기력은 검증받았고 개성 강한 외모까지 매력으로 통하면서 차츰 그를 찾는 제작진의 ‘콜’도 늘어나고 있다.

“아직 안 해본 게 많다. 남들은 웃을지 몰라도 순정멜로도 찍어보고 싶다. 하하! 외모 때문인지 감독님들을 만나면 꼭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나는 서울 토박이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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