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글러스’로 처음 로맨틱 코미디물을 해봤어요.”
깜짝 놀랄 만한 대답이었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귀여운 배우였기에 백진희는 로코 장르 경험이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출연작을 살펴보니 ‘기황후’(2013) ‘트라이앵글’(2014) ‘오만과 편견’(2014) ‘미씽나인’(2017)처럼 가볍지 않은 장르물이 대부분이었다.
이어진 대답은 더 의아했다. 백진희가 “일부러 로코를 하고 싶어서 찾아갔는데도 탈락했었다”고 덧붙였기 때문.
“너무 하고 싶어서 로코물을 찾아갔었는데 결국 저 말고 다른 배우들이 캐스팅되더라고요. 탈락한 이유는 듣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해 왔던 작품 자체가 밝은 것보다는 어두운 게 더 많아서 제 이미지가 자연스레 그렇게 잡혔나봐요. 제가 숨겨놓은 매력이 많거든요. ‘저글러스’를 시작으로 하나씩 꺼내보려합니다. (웃음) ‘저글러스’로 ‘백진희표 로코는 달라’라는 걸 보여드리기보다는 제가 지닌 사랑스러운 면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시청자들에게 그런 느낌만 주더라도 저에게는 큰 터닝 포인트가 될 거라 생각해요. 배우로서의 능력치를 조금 더 보여주고자 하는 욕심만 있었죠.”
반대로 ‘저글러스’는 백진희에게 먼저 손을 내민 ‘로맨틱 코미디 작품’이었다. 촬영을 시작하기 2주 전에 캐스팅이 됐고, 백진희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다. 2주 후에 촬영을 시작해야했지만 무턱대고 한다 했다"고 좌윤이와의 첫만남을 추억했다.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만화 같은 설정이 있어서 처음에는 걱정을 했어요. 허구적인 인물로 보일까봐요. 비서에 국한하지 않고 직장인들이 겪는 감정을 진정성 있게 그려내려고 노력했죠. 좋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꿈을 꾸는 거 같아요.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 들었습니다. 저는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는데 매번 아쉬움이 남았었거든요. 이번만큼은 제 캐릭터를 지키면서 끝까지 해내고 싶었고, 잘 지켜낸 것 같아 뿌듯했어요.”
올해 데뷔한지 10년 된 스물아홉 살 배우가 됐다. 백진희는 “아홉수라는 걸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 20대라는 것이 시원섭섭하다. 나의 20대를 떠나보낼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하면서도 “되돌아보면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열심히 연기했기에 저의 20대가 헛되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글러스’를 만나게 된 것도 이전 작품들 덕분이니까요. 지금처럼 퇴보하지 않고 차곡차곡 만들어가고 싶어요. 30대라... 좀 더 편안한 여배우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연기적으로도 시청자들이 연기가 아닌 진짜로 느낄 수 있도록, 인물 자체가 되고 싶죠.”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는 분위기가 배우에게는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선 “이렇게 태어나서 어쩔 수 없지만 다른 강점을 극대화하겠다”며 친숙함을 무기로 언급, “빼어나게 예쁘지도, 날씬하게 예쁘지도 않아서.. 로코를 하더라도 현실감을 줄 수 있잖아요”라고 꾸준한 활동을 다짐했다.
“제가 비교적 빨리 인지도를 얻었거든요. 당시에는 빠르다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그 이후로 ‘빵빵’ 터지는 건 없었지만 ‘하이킥’ ‘기황후’ ‘저글러스’까지 20대 초중후반에 터닝 포인트들이 있었죠. 항상 성실하려고 했고 나와 타협하지 않으려고도 했어요. 지금까지 지켜왔던 건 아무리 쪽대본이라도 대본을 익히려고 하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죠. ‘저글러스’처럼 따뜻한 드라마를 하니까 저 자체가 힐링되더라고요. 사실 장르물을 하면 장르의 무게를 견뎌내야했고, ‘오만과 편견’ 때 ‘나는 아직 버틸 능력이 없구나’를 느꼈었죠.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밝은 캐릭터를 또 하고 싶어요.”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동아닷컴 전효진 기자 jhj@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