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안산 그리너스 FC의 위대한 도전

입력 2018-05-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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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구단 2년째 지역밀착형 사회공헌 활동으로 관중동원 1위
선수단 모두가 참여하는 다양한 사회공헌을 통해 안산 시민을 우리 편으로
J리그 반포레 고후의 성공 사례를 K리그에도 정착 시킨다
시민구단이 연고지의 가족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속성과 진심이 필요

요즘 K리그2에서 안산 그리너스 FC(이하 안산)가 화제다.

9경기를 치른 현재 4승3무2패 승점 15로 3위다. 본격적인 출범 2년째를 맞는 신생구단. 개막전 미디어데이에서 잘해야 중위권이고 지난 시즌 9위보다 한 계단 순위를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던 팀으로서는 상상 이상의 결과다.

기자는 경기결과보다는 3월 11일 홈 개막전에 7500명의 관중(유료관중은 5532명)이 안산 와~스타디움을 찾았다는 사실과 현재 K리그2 구단 가운데 관중동원 1위(평균관중 2573명), 팀 운영비용에 더 눈길을 둔다.

안산은 K리그 1,2부 22개 팀 가운데 군 팀을 제외하면 가장 적은 돈을 쓰지만 프로축구가 이전까지 감히 생각도 못했던 발상의 전환으로 팀을 운영한다. 키워드는 지역밀착형 사회공헌 사업과 시장규모에 맞는 팀 운영이다.

안산 박공원 단장. 사진제공|안산



● 2년 안에 새 구두가 다 닳도록 열심히 다녀라

안산은 지난 시즌 K리그 시상식에서 관중증가와 사회공헌을 잘 했던 덕분에 상을 받았다. 안산은 2017시즌 230차례 사회공헌 활동을 했다. 이번 시즌 목표는 300회 이상이다. 사회공헌 행사를 담당하는 사람은 이제영 홍보마케팅 직원이다. 내셔널리그 김해시청축구단의 선수 출신이다. 현역 유니폼을 벗고 지도자로 변신해 김해시청축구단에서 필드코치 겸 피지컬코치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박공원 단장의 조언으로 다른 인생을 걷고 있다.

지난해 시민구단으로 재출범한 안산은 팀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으로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선택했다. 이를 위해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어온 일본 J리그 반포레 고후(甲府)를 이제영 사원에게 경험하게 했다. 그 곳에서 반포레의 임직원 및 선수들과 한 달여 동안 지내면서 몸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느끼고 배우라고 한 것이다.

반포레 고호는 한 때 자치단체의 지원이 끊겨 팀 해체가 눈앞이었지만 우미노 가즈유키 회장의 노력 덕분에 극적인 반전을 이룬 팀이다. 연고지를 돌아다니며 지역 주민들과 스킨십을 강화한 반포레의 성공사례는 이후 J리그 모든 팀들이 벤치마킹하는 아이템이 됐다.

우미노 회장은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구두를 사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새 구두가 2년 안에 닳아지도록 열심히 지역사회를 돌아다니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당부다. 이제영 사원도 그들과 함께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다. 때로는 구단의 마스코트 인형도 써봤고 때로는 시민의 편에 서서 반포레의 다양한 행사를 소비자의 입장에서 경험했다.

풍부한 아이디어를 얻고 실행방법을 익힌 그는 안산 지역사회의 실정에 맞게 수정해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지난해 230회의 지역밀착 사회활동이었다.



● 꾸준히 두드리면 닫혔던 사람들의 마음이 열린다

이번 시즌 안산의 지역밀착 사회공헌 사업의 목표는 300회다. 사업도 다양해졌다. 안산의 모든 선수들은 의무적으로 1년에 15번 이상의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물론 봉사활동이 단숨에 안산 시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지 않는다. 이제영 사원은 “최소한 다섯 번 이상 가야 사람들이 경계감을 없앤다. 지난해보다 올해가, 올해보다 내년에 더욱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안산 선수들은 배당된 일정에 따라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 참가한다. 지역의 경로당을 찾아 풀을 뽑는 선수도 있고 오전 오후 등하교 시간에 학생들의 안전 등하교 지킴이로 활동하는 선수도 있다.

요즘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봉사활동은 이제영 사원이 트레이닝 강사로 참여해 시민들에게 다양한 트레이닝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지역의 많은 주민센터에서 이제영 사원의 특별지도를 요청해올 만큼 반응이 좋다.

안산이 특히 열정을 쏟는 곳은 미래의 팬인 어린 아이들이다. 유치원을 돌아다니며 축구의 즐거움을 알리고 다양한 스킨십을 한다. 안산의 홈구장을 돌아보는 체험형 이벤트도 있다. ‘풋볼탐험대’로 이름 붙여진 행사다.

이제영 사원은 요즘 아이들에게 체조를 하나 전파하고 있다. 꼬꼬마 체조로 이름 붙여진 율동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안산 지역의 모든 유치원과 어린이 집을 대상으로 이 율동을 전파시키는 것이 목표다. 언젠가는 안산시의 어린이 수만 명이 참가하는 꼬꼬마 체조를 안산 와~ 스타디움에서 동시에 하는 이벤트까지 꿈꾸고 있다. 선수들은 미래의 팬인 어린이들을 위해 축구교실도 연다. 이를 통해 축구의 즐거움을 가르친다. 행사를 마치면 아이들에게 티켓을 주며 꼭 경기장에 오라고 당부한다.

이제는 봉사의 즐거움을 안 선수들이 먼저 구단에 아이디어도 내놓는다. 선수들과 팬이 만나 함께 식사를 하는 프로그램은 그렇게 탄생했다. 선수와 팬이 함께 밥을 먹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팬이 경기장에서 그 선수를 응원하는 아이디어는 참으로 신선하다.

선수뿐만이 아니다. 감독도 참여한다. 이흥실 감독은 지역의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며 시민들에게 인사한다. 음식점은 안산의 스폰서 가운데 하나다. 이런 다양한 행사를 통해 안산은 차츰 지역 주민들에게 존재를 각인시켰다.

처음 봉사활동을 제안했을 때 “보도자료용 이라면 그냥 사진만 찍고 가라”고 했던 사람들의 반응도 차츰 달라졌다. 이제영 사원은 “요즘 우리가 행사를 위해 움직이면 알아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과 아이들이 늘었다. 결국 진심은 통한다. 열정을 가지고 반복하면 닫혀 있던 사람의 마음이 열린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 우리 프로축구단은 왜 존재 하는가

많은 구단들이 항상 팬을 외치고 관중을 모아야한다고 하지만 공허한 구호만 외칠 뿐 딱히 뚜렷한 대책을 내놓은 적은 없다. 그런 가운데 프로축구단의 규모와 지출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해마다 300억원 이상 쓰는 빅마켓 구단부터 80~100억원을 쓰는 시도민 구단까지 어느 누구도 모기업이나 지방 자치단체의 지원 없이는 자생하기 힘든 위험천만한 경영상태다.

앞으로 나아질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선수의 몸값은 높고 재정상태가 허약한 구단은 선수들의 월급을 제 때에 주지 못해 문제가 되는 일이 반복된다. 엄청나게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는 것도 아니다. 인기의 지표인 TV시청률이 높지도 않다. 스폰서 기업도 줄어들고 있다. 이런 위기상황을 알면서도 해법 없이 프로축구를 운영해온지 여러 해다.

안산은 프로축구판의 이런 패러다임을 바꿔보고자 한다. 무모하지만 위대한 도전이다. 운영을 책임지는 박공원 단장은 기업팀 전남 드래곤즈에서 시작해 경남 FC를 거친 축구행정 전문가다. 축구단운영 경험 13년째다. 그가 오랫동안 축구단에 근무하면서 품었던 근본적인 문제는 ‘왜 우리가 축구를 하는가’였다. “해마다 엄청난 돈을 쓰는데 과연 이 돈이 지역 주민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었다.

사라진 험멜 축구단.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 진짜 프로축구를 하는 이유를 누구도 모른다

연고지역 팬에게 사랑받지 못한 채 기업이나 자치단체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서커스식 구단운영의 위험은 팀의 퇴출로 이어졌다. 충주 험멜FC과 고양 FC 등 시민구단이 2016시즌을 끝으로 K리그에서 사라졌다. 지역 팬들의 사랑을 받는 구단이었다면 이 같은 결정에 시민들이 반발하고 팀을 살리려는 노력을 했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팀은 사라졌고 프로축구계에서는 아무런 반성도 없었다. 지역사회에서 사랑받지 못한 축구팀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절박감이 안산에게 확실한 목표설정을 해줬다.

박공원 단장이 해법으로 선택한 반포레 고후(甲府)는 J리그에서도 가장 지역밀착 사업을 잘하는 팀이다. 그는 일본 여행 도중 찾았던 J리그 경기에서 수만명의 팬들이 선수에게 열광적인 응원을 하고, 경기장을 뒤덮은 수많은 스폰서 기업들의 광고판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경기 뒤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선수들이 만원 관중에게 감사하는 교감의 뜨거운 열기는 외국인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이런 모델을 만드는데 성공한 팀 반포레 고호를 찾았다. 용감하게 면담을 요청했다. 우미노 가즈유키 회장을 찾아 성공비결을 물었다. 그가 생판 모르는 외국인에게 2시간 동안 강의하듯 들려준 것이 지역밀착 사회공헌활동이었다.

반포레 고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반포레 고후의 지역밀착 사회공헌 사업

반포레 고후는 한때 경영난으로 퇴출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사람이 우미노 회장이다. 기존 방식으로는 답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자 시민들에게 뛰어들었다. 모든 선수들을 이끌고 사회공헌 활동에 나섰다. 선수들은 반발했다. 축구만 전문적으로 해온 이들은 “내가 공만 잘 차면 될 일인데 왜 이런 것을 하느냐”는 생각이었다.

반포레는 모든 선수들이 입단하면 가장 먼저 1박2일 동안 봉사활동을 내보낸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모인 시설에서 환자와 노인들의 몸을 씻어주고 대소변을 받아주는 일부터 시킨다. 우미노 회장은 선수들에게 “이 분들이 너희들의 진정한 팬이고 월급을 주는 사람이다”는 것부터 인식시킨다.

반발하던 선수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차츰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본다. 자신들이 얼마나 혜택을 받은 사람이고 축구선수가 된 것이 감사해야 할 일인지를 스스로 알게 된다. 이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스스로 기쁨을 느끼기 시작한다.

반포레는 이런 과정을 통해 해마다 600차례 이상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영 사원은 연수 도중에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임종이 가까운 노인이 있었다. 죽기 전에 반포레 선수들을 한 번 보고 싶어 한다는 연락이 가족을 통해서 왔다. 구단은 즉시 우미노 회장을 비롯한 선수단과 직원들이 병실을 찾았다. 그를 위해 팀의 응원가를 불러주며 마지막을 함께 해줬다. 가족들은 그 모습에 감동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진정으로 지역사회와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반포레의 시스템을 안산도 정착시키려고 한다.

사실 지역밀착 사회공헌 사업은 색다른 것이 아니다. 시민구단들이 해야 하는 기본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안산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정착시키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다. 지속적으로 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제영 사원은 “이런 봉사활동은 겉으로만 보고 흉내 내서는 성공 못한다. 그 행동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가슴으로 느껴야하고 지속적으로 활동이 이어져야 반응이 나온다. 최소한 3년은 넘어야 사람들의 머리 속에 그 팀의 이름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했다.


● 화재로 부도가 날 뻔한 기업을 축구단과 지역 팬이 살려내다

물론 갈 길은 멀다. 반포레는 17년 동안 이런 활동을 통해 아름다운 전설(하쿠바쿠의 기적)을 만들었다. 반포레 고호를 10년간 후원하던 메인스폰서는 하쿠바쿠라는 식품회사다. 큰 화재로 한 때 부도위기까지 몰린 적이 있다. 하쿠바쿠의 어려운 상황은 축구단에도 전해졌다. 선수들이 나섰다. 이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을 후원해온 회사를 위해 지역민들에게 호소했다. 시민들이 화답했다. 우리 축구단을 위해서라도 기업을 도와주자며 너도나도 그 회사의 제품을 샀다. 하쿠바쿠는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안산도 축구를 통해 지역주민과 수많은 지역 중소기업의 상생을 꿈꾼다.



● 안산의 미래예측이 가능한 구단운영

안산은 경영상태도 홈페이지에 공시한다. 지난해 45억원의 연간운영비 가운데 20억원은 안산시에서 지원을 받았다. 이 가운데 선수단의 인건비는 팀 전체예산에서 고작 40% 정도 차지한다. 대부분의 구단은 50%를 훌쩍 넘는다.

안산은 다른 구단과 달리 수입에 맞춰 지출규모를 정한다. 다른 구단들은 지출을 먼저 생각하고 돈이 모자라도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시즌에 들어간다. 그래서 9월쯤 되면 선수단에 월급을 주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안산은 선수단의 인건비를 100% 확정해두고 예산을 짠다. 긴축재정은 불가피하다. 고액선수도 데려오지 않는다. 선수단 합숙소도 운영하지도 않는다. 해외전지훈련도 없다. 최대한 지출을 줄이고 스몰마켓 구단의 길을 간다. 현장 지도자들의 협조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지금까지 안산 FC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서로가 협력한다는 뜻이다. 물론 반발도 많다. 그래서 박공원 단장은 책상에 사표를 두고 일을 한다.

과연 한국프로축구의 패러다임은 안산을 통해 바뀔 수 있을까? 안산 그리너스 FC의 위대한 도전이 성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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