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신인 골키퍼 송범근이 특별한 이유

입력 2018-05-1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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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의 루키 송범근은 신인답지 않게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하면서 K리그 0점대 실점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 덕분에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주전 자리를 굳혔다. 스포츠동아DB

한 팀에 주전이 단 한 명뿐인 축구의 골키퍼는 특수 포지션이다. 일단 주전되기가 어렵다. 반면에 주전이 되고 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즉, ‘한번 주전은 영원한 주전’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곳이 바로 골키퍼다. 이는 전술적인 영향도 크다. 골키퍼는 개인 방어능력과 함께 수비수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한 경기 흔들렸다고 해서 곧장 교체해버리면 수비조직력에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프로에 갓 입문한 신인이 주전을 꿰차는 경우는 드물다. 산전수전에다가 공중전까지 충분한 경험을 쌓은 뒤에야 골키퍼 장갑을 낄 수 있다.

전북 현대 송범근(21)은 이런 상식을 깼다. 입단하자마자 최강 구단의 주전 GK로 발탁된 데다 기록에서도 경이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슈퍼 루키’라 부른다.

송범근이 처음 이름 석자를 알린 건 지난해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다. 큰 키(196cm)와 함께 스피드와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능성을 확인한 전북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고려대에 재학 중인 송범근을 낚아챘다.

청소년대표 시절 송범근. 스포츠동아DB


뚜껑을 열자 기대 이상의 대박이었다. 2월20일 열린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킷치SC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가진 그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전북은 지난 시즌 골문 불안을 지적 받았지만 송범근의 등장으로 그런 얘기는 쏙 들어갔다.

전북은 최근 수비수들 부상 때문에 고민이 깊다. 김진수와 홍정호가 일찌감치 엔트리에서 제외된 가운데 김민재마저 오른쪽 비골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다. 오죽했으면 공격수 김신욱을 수비수로 세웠을까. 또 8일 열린 ACL 16강전 부리람(태국)과의 원정경기(2-3 패)에는 겨우 14명으로 팀을 꾸리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상황이 어렵다보니 송범근의 어깨는 더 무거워진다. 송범근은 전북의 올 시즌 K리그 12경기 중 11경기에 나서 단 2골만 허용했다. 경기당 실점률이 겨우 0.18이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나이나 경험보다는 컨디션 좋고, 실전에 강한 선수를 기용한다. 어리다고 배제하지는 않는다. 송범근이 거기에 딱 들어맞았다. 초보지만 안정적인 경기를 펼친 게 최 감독의 믿음을 샀다. 최 감독은 “순발력이 뛰어난데다 골키퍼에게 꼭 필요한 배짱도 두둑하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뛰어난 선수들은 지도자가 믿음을 주면 능력을 보여주는데, 송범근도 그런 케이스”라며 흐뭇해했다. 최 감독은 송범근이 결코 어리지 않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저 나이면 자기 인생을 책임질 줄 알아야한다. 게다가 우린 모두 프로다”며 송범근을 마냥 어린 선수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U-20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큰 무대 경험을 쌓았다. 그게 프로에 와서도 두려움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팀 내 탁월한 공격수를 둔 것도 큰 도움이다. 그런 공격수의 슈팅을 막아낸 경험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감독의 전술도 기회를 만들어줬다. 올 시즌 전북은 수비라인을 조금 내리고, 조직력을 극대화했는데, 그런 전술 덕분에 선방의 횟수가 늘었을 것이다.

역대 기록을 살펴보면 데뷔 첫해의 송범근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매년 단 한명에게만 영광이 돌아가는 베스트 11 GK상을 수상한 골키퍼는 K리그 35년간 모두 18명이다. 신의손(사리체프)이 6회로 가장 많고, 국가대표선수를 지낸 김병지 이운재(이상 4회) 권순태(3회) 등이 뒤를 이었다. 러시아출신의 귀화선수 신의손은 성남에 입단한 1992년 40경기에 출전해 31실점했다. 특히 무교체무실점이 17경기나 되면서 첫 시즌부터 이름 그대로 신의손 돌풍을 일으켰다. 같은 해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은 김병지는 10경기에 나서 11실점을 했고, 이운재 또한 데뷔 시즌(1996년)에 13경기 14실점했으며, 권순태도 2006년 30경기 33실점했다. 모두 1점대가 넘는 실점률이다. 역대 데뷔 시즌에 10경기 이상 뛰면서 실점률 1점대 미만을 기록한 베스트 11 골키퍼는 신의손(0.77)과 유대순(0.95) 2명뿐이다. 송범근의 실점률(0.18)이 돋보이는 이유다. 아울러 무교체무실점 경기도 10경기 이상 기록한 선수는 신의손(17)과 권순태(11) 2명이다. 송범근은 현재 무교체무실점이 9경기인데, 올 시즌 꾸준함을 보여준다면 신의손 기록도 충분히 넘볼 수 있다.

이제 잠재력은 확인했다. 구단은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고, 대표팀도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렇게 스타는 만들어진다. 자만하지만 않는다면 또 한명의 걸출한 골키퍼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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