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의 러시아 리포트] 파란장막에 가려진 전차군단의 요람을 찾아

입력 2018-06-2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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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선수단이 탑승한 버스가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베이스캠프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모스크바 근교의 CSKA모스크바 스포츠베이스 입구로 향하고 있다. 파란색 장막으로 모든 훈련장 주변이 가려져 있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24일(현지시간) 오후 5시 35분. ‘ZUSAMMEN. GESCHICHTE SCHREIBEN(다 함께 역사를 써보자)’의 슬로건과 독일 국기가 선명히 새겨진 버스가 러시아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모스크바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35㎞ 떨어진 CSKA모스크바 스포츠베이스로 들어섰다. 2018러시아월드컵 F조 한국의 조별리그 최종 3차전 상대인 독일 선수단을 태운 버스였다.


17일 멕시코와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충격의 0-1 패배를 당한 독일은 18일 회복훈련을 마치자마자 19일부터 스웨덴과 2차전이 열린 러시아 남부도시 소치로 향했다. 최대한 일찍 현지 환경에 적응하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과거의 좋은 추억을 되새기겠다는 바람이 강했다.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독일은 소치에 훈련캠프를 차렸고,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으며 월드컵 2연패의 꿈을 키웠다.


그렇다고 계속 소치에 머물 수는 없었다. 대회 규정상 한 경기를 마치면 반드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훈련을 하고 다음 경기가 열리는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돼 있다.


‘안방’으로 돌아왔지만, 버스 창가 너머로 보이는 독일 선수단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했다. 전날 스웨덴을 2-1로 꺾었음에도 16강을 확정하지 못한 탓이다. 독일은 2전패의 한국과 27일 카잔 아레나에서 조별리그 3차전을 펼친다. 양국 모두에 기회가 있다. 동시간대 펼쳐질 경기에서 멕시코가 스웨덴을 잡는다는 가정 하에 우리가 독일을 꺾으면 토너먼트에 오를 수 있다. 반대로 독일도 승점 3을 쌓으면 크게 확률을 높인다.


독일 축구대표팀 요아힘 뢰브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가장 주목하지 않았고, 어쩌면 가장 쉽게 여겼던 경기가 운명을 결정짓는 무대가 됐으니 독일 입장에서는 지금의 상황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전 대회 우승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징크스처럼 반복 돼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 2연패에 대한 꿈을 안고 선수 개인 유니폼만 26세트를 준비한 이들이기에 예선 탈락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정이 그래서인지, CSKA모스크바 스포츠베이스는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쓴 모습이었다. 3m 이상 높이의 파란색 장막이 훈련장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작은 틈새도 보이지 않아 훈련 장면을 전혀 엿볼 수 없었다.


선수단 버스와 훈련 장비를 실은 미니트럭 등 각종 차량이 드나드는 출입구는 많은 숫자의 경찰들이 지키고 있었다. 훈련장 출입을 요청하니 경비원들로부터 곧 “노(No)“라는 답이 돌아왔다.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 속한 CSKA모스크바는 러시아 육군이 운영하는 팀으로 독일은 이곳을 클럽하우스로 삼고 있다.


훈련장에서 5분 정도, 약 4㎞ 떨어진 숙소도 외부인의 방문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고급 리조트로 꾸며진 바투틴키 호텔은 모두 2곳의 출입구가 있었는데, 작은 문은 막혀있고 정문에는 역시 AD카드를 목에 건 경비원들과 경찰들이 있었다. 심지어 경찰차까지 배치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모습이었다.


독일대표팀의 요아힘 뢰브 감독은 독일 주요 매체들을 통해 “전력분석관을 파견한 조별리그 1~2차전에서 한국에 대한 분석은 이미 끝났다. 지금은 어떻게 경기를 풀어갈지 고민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파란장막 건너편에서 전차군단은 망신의 녹을 조금씩 벗겨내며 우리와 마지막 조별리그 승부를 대비하고 있다.


모스크바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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