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대표팀 박주호가 부상으로 들 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길게 날아든 공중 볼을 잡으려다 전반전 킥오프 휘슬이 울린 지 26분 만에 허벅지를 움켜쥐고 쓰러진 박주호는 잠시 고통을 호소하다 의무진의 응급처치를 받고 교체됐다. 당시 경기장을 나서며 스위스 출신 부인과 손을 꼭 잡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점프를 한 순간, (월드컵은)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줄기차게 고민을 안겨준 왼쪽 측면에서 발생한 새로운 변수에 신태용(48)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깊어진 근심을 보며 본인은 더 괴로웠다. 몸보다 마음이 훨씬 아팠다. 정말 사력을 다해 이번 월드컵만 바라보고 달려왔기에 26분에 그친 출전은 몹시도 고통스러웠다. 유럽 리거,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이란 타이틀과 명예를 버리고 올해 초 K리그 클래식(1부리그)으로 향한 이유는 딱 하나 월드컵이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진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박주호. 스포츠동아DB
4년 전 브라질대회에도 참여했으나 최종엔트리에 극적으로 이름을 올렸을 뿐 출전 기회는 얻지 못했던 박주호에게 특히 27일 카잔에서 펼쳐진 독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3차전)이 간절했다.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거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채 외면했던 옛 소속 팀(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실력으로 복수하고 싶었다.
이날 독일전에서 그의 자리는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였다. 비록 몸은 함께 할 수 없었어도 동료들과 마음으로 뛰었다. 앞선 멕시코전(24일·로스토프나도누)과 독일전을 대비하기 위해 베이스캠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든 스케줄을 동료들과 소화했다. 대개 부상을 당하면 숙소에 남아 치료 및 회복에 전념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박주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종아리를 다친 ‘캡틴’ 기성용(29·스완지시티)과 모든 여정에 동참했다. 훈련장에 늘 모습을 드러내며 동료들을 격려했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로를 감쌌다. “숙소에 있으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늘 팀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 박주호의 생각이었다. 부상으로 이어진 롱 볼을 연결한 장현수(27·FC도쿄)에게 일부 여론이 과도한 비난을 퍼붓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말자. 내가 운이 없어 다쳤을 뿐”이라며 잔잔한 위로를 건넨 그였다. 박주호, 그를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먹먹한 느낌이 드는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카잔(러시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