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엄마의 레시피 ‘적당히 달콤했고, 무섭게 뜨거웠다’

입력 2018-10-08 19: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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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엄마의 레시피 ‘적당히 달콤했고, 무섭게 뜨거웠다’

식탁이 있는 부엌과 소파가 놓인 거실. 양쪽에 배치된 두 개의 작은 방.
이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아프고 따뜻했다.

할머니 원미원은 몸도 마음도 분주하다. 미국에 유학간 손녀와 연기자 생활(한때는 꽤 잘 나갔던)을 하는 딸이 오는 날이다. 추석인 것이다.

원미원은 딸과 손녀, 그리고 사고로 먼저 간 남편을 생각하며 무슨 음식을 만들까 고민한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음식을 만든다. 매운 돼지갈비찜을 만든다(남편이 좋아했던 음식이다). 그리고 족발을 삶으려다 또 매운 돼지갈비찜을 만든다. 아까 넣었건만 다시 매운 고춧가루를 갈비찜에 들이붓는다. 원미원은 치매에 걸려 있다.

미국에서 온 손녀 주연은 열두살 위인 재미교포 존슨을 데려와 성질 급한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엄마 화란은 치매에 걸려 실수연발인 엄마와 “이 남자와 결혼하게 해달라”는 딸 사이에서 속앓이를 하다 폭발하고 만다.


연극 ‘엄마의 레시피’는 스튜디오 블루(대표 하형주)의 작품으로 원래는 대만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는 세시행사인 ‘수세(守歲)’가 원작이다. 존슨 역으로 출연 중인 정경호가 번역해 국내 처음 소개했고, 연출가 임대일이 국내 관객을 위해 등장인물, 배경 등을 완전히 새롭게 수정해 무대에 올렸다.

흩어진 퍼즐 같던 자잘한 이야기의 파편들이 하나씩 붙어가며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구성이 교묘하다. 중요한 연결고리가 등장할 때마다 관객이 쉽게 눈치 채지 못하도록 적절한 대사와 웃음으로 시선을 분산시키는 연출도 흥미롭다.

배우들 연기의 합이 ‘헉’ 소리나게 잘 들러붙는다. 아귀를 기계적으로 찍어낸 톱니바퀴라기보다는 오랜 기간 삶은 파스타를 나눠 먹어가며 들숨 날숨을 맞춰온 현악4중주단 같은 느낌이다.
원미원의 농숙한 노인 연기도 좋지만 엄마 화란 역의 혁주, 딸 주연 역의 이진설이 밑바닥부터 극한까지 몰아치는 연기는 적당히 달콤했고, 무섭게 뜨거웠다.

10월14일까지 서울 대학로 후암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한다. 들어가는 입구 찾기가 쉽지 않은 아담한 공연장이다.

‘엄마의 레시피’는 시험을 망치고 돌아온 날 저녁에 먹었던 엄마의 두부찌개와 제육볶음 같은 연극이었다. 다음엔 좀 더 많은 관객들과, 좀 더 오래 만났으면 좋겠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ㅣ스튜디오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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