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만의 메모와 믿음의 시프트

입력 2018-11-0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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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 감독(오른쪽)은 정규시즌에 이어 포스트시즌에서도 과감한 수비 시프트를 사용하고 있다.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한 그의 수비 작전에는 항상 ‘메모’가 동반된다. 스포츠동아DB

야구의 수비 시프트는 생각보다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프트는 눈에 훤히 보이는 덫이다. 은밀히 숨어있는 사냥터의 덫과는 다르다. 투수와 포수 그리고 모든 야수가 약속된 위치에 서서 타자를 압박한다. ‘우린 너에 대해 이만큼 잘 알고 있고, 만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다른 방향으로 칠 수 있음 쳐 봐라’는 당당함이 담겨있다.

타자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수 없이 반복된 훈련을 통해 완성한 타격 스타일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시속 150㎞의 빠른 공을 받아쳐 자유자재로 원하는 곳으로 날릴 수 있는 타자는 전 세계에 단 한명도 없다. 시프트를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홈런이다.

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 감독은 단기전에서 시즌 때와 똑 같이 과감하고 현란한 수비 시프트 카트를 망설임 없이 꺼내고 있다.

7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2018 KBO리그 한국시리즈(KS) 3차전. SK는 4-0으로 앞선 5회초 무사 1루 상대 6번 좌타자 오재일이 타석에 서자 극단적인 시프트를 펼쳤다. 3루수 최정이 유격수 위치로 이동했고 유격수와 2루수가 1~2루 사이에서 촘촘하게 그물망을 폈다. 오재일은 올 시즌 전체 타구 중 34.8%의 공이 3루~유격수 방면으로 향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결과는 최정 앞에 떨어진 땅볼 아웃이었다.

힐만 감독은 KS 1차전에서 3루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도 2사 후 좌타자가 등장하면 베이스를 비워 놓는 시프트를 하기도 했다. 홈 스틸에는 대응하기 어렵지만 수비로 타자를 잡아낼 확률을 더 높이겠다는 계산이었다.

과감한 시프트에 대해 힐만 감독은 “믿음”이라고 답했다. 시프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자신의 기억과 전력분석 팀의 정보를 신뢰 해야 한다. 투수의 커맨드는 시프트의 핵심이다. 사인과 정반대로 향한 투구는 스스로 시프트를 파괴할 수 있다. 야수들의 위치 선정도 중요하다. 평범한 내야 땅볼이 안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코칭스태프부터 투수와 포수 야수 모두가 하나의 믿음으로 연결되어야 시프트가 완성된다는 것이 실만 감독의 철학이다.

상대 팀 입장에서는 단기전의 과감한 시프트가 더 큰 벽으로 느껴진다. 약이 잔뜩 오르지만 쉽게 깰 수 없다.

힐만 감독은 경기 중 수시로 메모를 한다. 전력분석 팀이 방대한 자료를 제공하지만 자신이 상황마다 느낀 점, 상대 팀에 대한 생각 등을 꼼꼼히 적는다. 자신의 결정에 대해 확신을 갖기 위한 출발이다. 무명의 선수에서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를 거쳐 KBO리그까지 한·미·일 3개 리그의 감독이 된 전략가의 깊이다.

인천|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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