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과 설경구, ‘왜’ 세월호로 향했나

입력 2019-03-25 16:22: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전도연·설경구 주연의 영화 ‘생일’의 한 장면. 사진제공|NEW

배우 전도연과 설경구는 왜, 세월호 이야기로 향했을까. 아물지 않은 참사의 상처를 영화로 만드는 작업은 단순히 부담과 책임을 넘어 그 이상의 마음이 필요한 일이다.

때문에 전도연은 “슬픔이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처음엔 출연을 거절했다”고 했다. 설경구도 비슷하다. 미리 정해둔 또 다른 영화 촬영 계획으로 ‘생일’을 소화할 수 없는 일정. 하지만 시나리오를 받아 읽고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4월3일 개봉하는 영화 ‘생일’(제작 나우필름·영화사 레드피터)은 2014년 4월16일 이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다. 전도연과 설경구는 참사로 아들 수호를 잃은 부모 순남과 정일을 각각 연기한다. 떨어져 지낸 부부는 아들이 없는 아들의 생일에 모여 아들을 기억한다.

영화는 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정일의 시선으로 시작해 세월호 유가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으로 향한 뒤, 이내 아들을 가슴에 묻은 엄마 순남의 시선으로 돌아간다.

동시에 한 도시가 비극적인 참사에 직면했을 때 유가족의 이웃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친구를 떠나보내고 남은 친구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담담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도,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접근도 없이 오직 유가족과 그 주변 이들의 이야기를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린다. 만들어진 극영화라기보다 참사 뒤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귀담아 듣고 만든 ‘재연극’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감독의 자원봉사로 출발, 영화화되기까지


‘생일’은 꼭 세월호 유가족뿐 아니라 소중한 누군가를 하루아침에 잃은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애도로도 읽힌다. ‘그들’의 상처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이는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이종언 감독으로부터 출발한 세계다.

영화 ‘시’ 연출부 등을 거치고 이번 작품으로 데뷔한 이종언 감독은 2015년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치유공간 이웃’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떠난 이들을 기억하자는 취지의 생일 모임 준비도 봉사자의 주요 일 중 하나였다고 한다.

4월3일 개봉하는 영화 ‘생일’의 이종언 감독. 사진제공|NEW


이종언 감독은 “생일 모임 하려면 보통 3주 전 부모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통해 많은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봉사했던 당시는 (참사가 일어나고)오래되지 않은 때인데도 많은 곳에서 ‘세월호 피로도’를 꺼냈다”며 “그땐 지금 (유가족의)이 상황을 보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돌이켰다.

그 과정에서 이종언 감독은 “작든, 크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며 “처음엔 작은 영화로 시나리오를 써서 내놨는데 제작하겠다고 나선 제작자들, 상업영화 시스템으로 가자고 하는 투자자들, 그리고 배우들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고 밝혔다.

시나리오를 쓴 감독조차 두 주인공을 배우 전도연, 설경구가 맡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종언 감독이 ‘밀양’ ‘여행자’ ‘시’ 등 영화 작업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은 이창동 감독 등이 제작자로 참여하게 되면서 시나리오가 이들 두 배우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도연이 맡은 순남은 아들의 빈자리를 인정할 수 없는 엄마다. 계절이 바뀌면 아들의 새 옷을 사고, 유가족 모임에도 나가지 않은 채 슬픔을 혼자 감당한다. 순남의 남편인 정일은 어떤 이유로 5년간 가족 곁을 떠난 탓에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부채감을 가진 인물. 아내의 상처를 바라보면서 비로소 그 자신의 상처를 마주 보는 인물이다.

전도연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진정성 있고, 무엇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설경구도 “고민이 없을 순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설경구는 “참사 이후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시인은 시를 쓰고, 노래하는 이들은 노래를 만들었다”며 “우리는 영화하는 사람이니, 영화로 해야 했다”고 밝혔다.

과연 전도연과 설경구가 아니고서야 순남과 정일을 누가 표현할 수 있을까. 탄탄한 내공을 더해, 어떤 인물 어떤 상황을 연기하더라도 진짜에 다가서려는 배우들의 진심어린 표현이 ‘생일’에 담겼다. 그 과정을 거친 전도연은 “내 감정이 앞서 나갈까봐, 내 슬픔에 젖는 건 아닌지, 늘 의심하면서 연기했다”고 돌이켰다.

물론 ‘생일’은 기존 극영화와는 출발, 지향이 다르다. 아무래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주인공 삼은 작품이란 사실은 이 영화를 좀 더 특별한 위치에 올려놓는다. 그만큼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는, 다양한 시선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생일’에 참여한 제작진 누구도 이런 우려를 모르지 않는다.

이종언 감독은 “시기적으로 이르고, 영화로 보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관객이 있을 수 있지만 ‘보기 어렵다’ ‘마주하기 힘들다’고 하는 말하는 건 그만큼 우리가 같이 많이 힘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도연·설경구 주연의 영화 ‘생일’의 한 장면. 사진제공|NEW


● 영화 엔딩 30분 장식하는 생일 장면…시대의 ‘위로’

영화 말미 런닝타임 30분을 차지하는 생일 장면은 ‘생일’의 지향을 그대로 드러낸다. 수호의 생일에 모인 가족과 친구들, 이웃이 각자의 방식으로 떠난 이를 추억하는 이 장면은 영화의 소재나 메시지를 떠나 우리가 사람이기에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게 바로 ‘위로’와 ‘애도’라고 이야기한다. 손수건 혹은 티슈를 준비하지 않으면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제작진은 생일 장면을 카메라 3대를 이용해 ‘원 테이크’ 방식으로 촬영했다. 카메라를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생일에 모인 수십 명의 모습, 이들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해 담았다.

이종언 감독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라며 “촬영 전날 50여 명의 스태프가 한자리에 모여 리허설을 한 뒤에야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20년 넘도록 연기하면서도 “30분 넘는 원 테이크 촬영은 처음”이라는 설경구는 “50여 명의 사람이 한곳에 모여 가능할까 싶었지만 마치 하나의 호흡처럼 느껴졌다”며 “앞으로 이런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싶다”고 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