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해피존] 좋은 포수가 주는 뜻밖의 선물

입력 2019-04-1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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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양의지(왼쪽)-키움 이지영. 스포츠동아DB

표현 그대로 ‘빗맞아도 홈런’이었던 스테로이드 시대를 지배했던 그렉 매덕스는 현역시절 대단히 인터벌이 빠른 투수였다. ‘도대체 언제 포수에게 사인을 받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빨리 빨리 공을 던졌다.

투구 후 뒷걸음치면서 포수에게 미리 약속한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자신이 던지고 싶은 구종과 코스를 알려줬다. 타자의 시야를 피할 수 없어 매우 짧은 순간 이뤄졌는데 이를 잡아내지 못하는 포수는 혼쭐이 났다. 때론 라인업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이어지는 포수의 사인은 이를 확인하는 용도가 더 많았다. 그만큼 인터벌은 더 빨라졌고 타자는 정신없이 매덕스의 공을 상대해야 했다. 매덕스에게 포수는 중요한 파트너였지만, 타자와 수 싸움은 철저히 자신이 통제했고 큰 성과를 봤다.

누구나 매덕스처럼 던질 수 없고 그와 같은 위상을 갖지 못하지만 메이저리그는 KBO리그, 일본프로야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포수의 경기 주도권이 낮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 코치로 활약했던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은 “미국에서 포수의 투수리드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미국에서 단 한번도 ‘내 리드 때문에 경기에서 졌다’고 말하는 포수를 본적이 없다. 볼 배합 패턴은 경기 전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가 함께 의논하고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포수에 대한 시각이 미국과 다르다. KBO리그보다 더 그 비중을 높이 본다. 노무라 가쓰야 전 감독은 투수의 역량을 몇 단계 더 끌어올리는 최고의 포수로 인정받았다. 노무라 감독의 수제자 후루타 아쓰야는 ‘컴퓨터 포수’로 불렸고, 은퇴 직전 선수 겸 감독으로 뛰기도 했다. 일본의 인기 야구 만화 ‘크게 휘두르며’에는 이 같은 일본인들의 포수 신뢰가 깊이 담겨져 있다. 중학교 때까지 최악의 투수였던 주인공은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포수를 만나 진정한 에이스 투수가 된다. “네 이름을 널리 알려줄 거야. 내 사인에 고개만 흔들지 않으면…”이라는 말은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KBO리그 팬들 사이에서 포수의 역할과 비중은 종종 흥미로운 논쟁거리가 된다.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극찬을 받는 포수가 존재하지만 “포수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것은 아니다”는 반론은 그 역할의 한계를 표현한다.

그러나 좋은 포수는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야구장에서 TV로 경기를 보는 관중들에게 굉장한 신뢰와 함께 편안함을 주는 포수들이 있다. 키움 히어로즈 이지영은 올 시즌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절묘한 프레이밍, 안정적인 포구와 블로킹은 마운드 위 투수와 야수, 덕아웃에 이어 관중에게까지 편안함을 준다. 삼성 라이온즈 때부터 이지영은 투수들에게 깊은 신뢰를 받는 포수였다.

NC 다이노스 양의지도 같은 색깔을 갖고 있다.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지만 마스크를 쓰면 언제나 투수의 의견을 존중한다. “포수의 역할은 투수가 가장 편안하게 공을 던지게 하는 것”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투수는 더 큰 믿음을 갖게 된다.

특급 포수의 역할과 비중은 숫자로 표현하기 어렵다. 메이저리그는 포수의 프레이밍 능력을 계량화하고 있지만 투수와 신뢰, 순간적인 타자에 대한 판단 등은 세이버 메트릭스가 다가가기 어려운 영역이다. 좋은 포수는 젊은 투수에게는 자신감, 그리고 투수와 포수의 호흡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꽤 가치 있는 선물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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