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리포트] 마드리드를 점령한 리버풀, 식지 않은 UCL의 여운

입력 2019-06-03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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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토트넘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파이널에서 승리한 리버풀 선수들과 원정 응원단이 합동 세리머니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마드리드(스페인)|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2016년 3월, 스포츠동아 창간특집호 제작을 위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빡빡한 일정이 끝나고 출국 전날이 됐다. 마지막 하루를 대충 보내기 싫어 발걸음을 옮긴 곳은 리버풀. 마침 리버풀FC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경기가 안필드(리버풀 홈구장)에서 열렸다.

킥오프까지 꽤 시간이 남아 경기장 근처 펍(PUB)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당시 나이 일흔 아홉의 노신사를 만났다. 자신을 ‘조니’라고 소개한 그분은 평생을 리버풀에서 보냈다.

조니는 할아버지로부터 가업인 뱃사람의 덕목 이외에 세 가지를 더 배웠다. 리버풀을 영원히 사랑할 것, 에버턴(연고 라이벌)을 미워할 것, 맨유를 증오할 것.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나름 충실히 지켜왔는데, 첫 번째는 간간이 포기의 유혹에 빠진다고 했다. 너무 오랫동안 우승을 보지 못하다보니 팀이 미워질 때가 있단다.

대부분의 해외 원정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다녀왔는데, 아내의 갑작스런 복통으로 불참한 경기가 있었다. 2005년 여름, 터키 이스탄불에서 펼쳐진 AC밀란(이탈리아)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UCL) 파이널. 어렵게 구한 티켓을 구단에 양도했는데, 하필 그날 리버풀은 ‘빅 이어(UCL 우승 트로피 애칭)’를 들어올렸다. 전반 0-3으로 끌려가다가 후반 동점을 만들고 승부차기로 시상대 꼭대기에 선 기적의 경기. 슬픔은 누르고 지냈는데, 문득 무서워질 때가 있단다. 살아 있는 동안 리버풀이 우승하지 못할까봐.

2일(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에스타디오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손흥민 홀로 빛난 토트넘 홋스퍼를 2-0으로 꺾고 리버풀이 통산 6번째 UCL 정상에 섰다. 14년 만의 챔피언 등극. 웅장한 주제곡과 함께 리버풀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을 들으니 조니가 생각났다. 마드리드에 왔을까? 경기는 봤을까? 모하메드 살라의 페널티킥 골에 놀라 기절하진 않았을까? 또 뭔가 이유로 방문하지 못했다면?

마드리드는 경기 다음 날(3일)까지도 온통 축제였다. 달라진 풍경을 꼽자면 거리에 토트넘 유니폼이 자취를 감췄다는 정도? UCL 파이널 이벤트가 이뤄진 솔 광장, 마요르 광장 등은 물론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의 안방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까지 리버풀 팬들은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축구 사랑과 둘째가라면 서러울 스페인 사람, 그것도 자존심 센 마드리드 시민들은 대낮부터 취해 노래 부르는 리버풀 팬들을 반겼고 축하했다.

리버풀은 이날 성대한 카 퍼레이드를 하며 유럽 정상을 자축했다. 75만 명(추산)이 함께한 연고 행사는 불참하게 됐지만 마드리드에서 직접 역사를 본 이들은 조니와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인내를 감내한 승자라 즐길 자격이 충분하다. 잠들지 않은 밤, 열기가 식지 않은 마드리드의 또 다른 하루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마드리드(스페인)|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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