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호출’ U-20 이규혁 “그 기다림, 평생 간직해야죠”

입력 2019-06-23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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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월드컵에서 필드 플레이어로는 마지막 호출을 받았던 이규혁(오른쪽)이 소속팀 복귀를 앞두고 아버지 이선종 씨의 배웅을 받으며 밝게 웃고 있다. 이 씨는 “아들의 출전을 기다리며 최근 한 달을 눈물로 보냈다”며 간절함을 표했다. 김포공항 | 고봉준 기자

이규혁(20·제주 유나이티드)은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월드컵을 ‘기다림’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그라운드를 밟는 감격을 나누는 사이, 자신은 기약 없는 호출을 기다리면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마지막 경기. 기다림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번 대회 필드 플레이어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출전 호출을 받은 수비수 이규혁을 소속팀 복귀를 앞두고 21일 김포공항에서 만났다. 조별리그와 16강, 8강, 4강에서 모두 벤치를 지켰던 이규혁은 최종전이었던 결승전 후반 35분 최준(20·연세대)과 교체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추가시간을 포함해 주어진 말미는 15분 남짓뿐이었지만 이규혁에게는 생애 가장 짜릿했던 시간이었다. 이날 소속팀 복귀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자리한 아버지 이선종 씨(51)는 “아들의 출전을 기다리며 최근 한 달을 눈물로 보냈다. 나 역시 그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며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들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특공대 응원단장 이규혁입니다”

-귀국 후 어떻게 지냈나.

“정말 바빴다. 인사드릴 곳도 몇 군데 찾았고, 인터뷰도 소화했다. 또 19일에는 청와대도 방문했다. 동료들이 K리그 미디어데이에서 ‘청와대 밥이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하하.”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로서는 정말 행운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정우영(20·바이에른 뷘헨)의 대체선수로 발탁돼 폴란드로 함께 떠났다. 17세 이하(U-17) 축구대표팀에서부터 3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던 친구들과 떨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결승전까지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외부에서 ‘원팀’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소집 때부터 호흡이 워낙 잘 맞았다. 그래서 ‘우승도 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FC서울과 수원 삼성을 상대로 연습경기를 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부분이 컸다. 그렇게 원팀이 되기 시작했고, 조별리그 통과와 한일전 승리 그리고 세네갈전 극적인 승부를 통해 모두 하나가 됐다.”

-본인은 이번 대회에서 ‘응원단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하, 경기를 많이 못 뛰면서 자연스럽게 벤치 분위기를 달구는 신세가 됐다. 소리를 지르면서 동료들이 집중력을 놓지 않도록 도왔다. 사실 응원단장보다 앞선 뒷이야기가 있다.”

-무엇인가.

“U-17 대회를 뛰면서 공오균 코치님이 벤치를 지키는 선수들에게 ‘특공대’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 목소리가 큰 내가 응원단장이 됐고, 공 코치님이 특공대장을 자처하셨다. 기회가 다소 없는 선수들이 주눅 들지 않도록 한 코치님의 배려였다.”

U-20월드컵에서 필드 플레이어로는 마지막 호출을 받았던 이규혁이 소속팀 복귀를 앞두고 스포츠동아와 만나 밝게 웃고 있다. 김포공항 | 고봉준 기자


●“날 위해 뛴다는 동료들 정말 고마웠죠”

-결승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벤치에서 경기를 보면서 ‘언젠가는 출전 기회가 오리라’고 믿었다. 다만 쉽지는 않았다. (최)준이가 워낙 잘하기도 했고. 그래도 정정용 감독님께선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라’고 힘을 주셨다. 출전 여부를 떠나 정말 감사할 따름이었다.”

-출전 상황을 회상한다면.

“사실 경기 전 최종연습을 통해 선발 출전 여부를 예상할 수 있다. 결승전 연습 때도 나는 주전으로 속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못 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선발 투입은 되지 않았고, 후반 막판까지 교체 명령이 없었다. 그런데 후반 30분을 앞두고 교체 사인이 내려졌다.”
-여러 생각이 들었을 듯한데.

“사실 4강전 생각이 많이 났다. 동료들이 ‘널 위해서 뛰겠다’고 말해준 순간이다. 내가 결승전에서 꼭 뛸 수 있도록 반드시 에콰도르를 잡겠다는 뜻이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평생 못 잊을 기다림이었겠다.

“어떻게 잊겠는가. 평생 안고 가야지(웃음). 동료들이 하나둘 그라운드를 밟을 때마다 느꼈던 초조함과 첫 출전을 기다리면서 가진 간절함 그리고 결승전을 뛰었던 그 순간을 모두 잊을 수 없지 않을까.”

-이제 K리그로 다시 돌아왔다. 올해 입단 후 아직 출전이 없다.

“제주 유니폼을 입고 아직 팬들께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U-20 축구대표팀 생활을 하느라 소속팀에서 시간도 많이 보내지 못했다. 이제 큰 숙제를 마치고 온 만큼 K리그에서 수비수 이규혁의 진가를 보여드리고 싶다.”

김포공항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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