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해피존] 이범호의 인덕과 이승엽·박찬호

입력 2019-06-2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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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솔선수범하며 바른 모습으로 선수생활을 한 이범호는 은퇴 발표 후 팬들과 선후배들의 진심 어린 응원 속에 두 번째 야구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선수가 아닌 한 명의 성인 남자로 이범호(38·KIA 타이거즈)는 대단히 사려 깊고 정중한 성격이다. 2009년 한화 이글스에서 뛸 때 경기를 마치고 퇴근을 준비하던 이범호와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함께 출입구로 걸어가는 짧은 시간, 하위권으로 추락한 팀 성적에 대한 걱정을 솔직히 털어놓는 모습이 담백했다.

당시 대전구장 선수 출입구는 철문이었는데 많은 팬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범호는 문 앞에서 잠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문을 연 뒤에는 먼저 고개 숙여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 모습도 참 의젓했다.

2011년 KIA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을 해지한 이범호를 영입했다. 코칭스태프는 빠른 팀 적응을 돕기 위해 초등학교, 중학교 동기동창인 이영수를 스프링캠프 룸메이트로 정했다. 이범호는 친구의 도움 없이도 금세 클럽하우스에서 동료들과 하나가 됐다. 2년 선배 최희섭과도 절친했고, 3루 포지션을 놓고 경쟁해 자칫 어색해질 수도 있었던 동기 김상현과도 잘 지냈다.

KIA 팬들이 이범호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는 팀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클럽하우스 리더역할을 맡아 고군분투하며 타선을 지켰던 늠름한 모습 때문이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주장을 맡았는데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1994~1997년)과 함께 타이거즈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연속해서 캡틴 역할을 했다.

팀 개성이 강한 KIA는 해태 시절부터 외부영입 선수가 주장을 맡은 적이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먼저 프로선수가 된 최희섭이 2010년 잠시 캡틴을 맡았지만 1998년 해태 1차 지명 선수였고 KIA가 KBO리그 첫 팀이었다. 사실상 이범호가 첫 주인공이었다.

그만큼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2017년 시즌 25개 홈런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을 때 이미 이범호는 “물러나야 할 때가 오면 깨끗하게 은퇴할 생각이다”고 했었는데, 올해 그 약속을 지켰다.

은퇴 후 두 번째 야구인생에 대해서도 확실한 계획을 갖고 있다. 이범호는 “일본에서 짧게 선수생활을 해봤지만 좀 더 깊이 배우고 싶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줬다. 이승엽 선배도 큰 힘이 되어줬다”고 말했다. 자신이 뛰었던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치면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 시스템을 익힐 계획이다. 이미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은 박찬호가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다. 추천이 가장 중요한 미국사회에서 박찬호의 존재는 든든하다. 서부구단에서 연수 프로그램이 이뤄질 전망이다. 베푼 만큼 돌아온다고 했다. 은퇴를 발표하자 팬들은 작별을 깊이 아쉬워하고 있다. 선배들은 먼저 나서서 돕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미래 감독감’이라는 평가가 따랐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더 기대된다. 언젠가 1980년대생 첫 감독이 리그에 등장할 것이다. 이범호는 이미 선두주자다. 그리고 잘해낼 것이다.

#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스트라이크존을 77개의 공으로 나눠 공략했다. 그중 자신이 4할 이상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코스의 공 3.5개를 ‘해피존’이라고 이름 지었다. 타자는 놓쳐서는 안 되는, 반대로 투수는 절대로 피해야 할 해피존은 인생의 축소판인 야구의 철학이 요약된 곳이다.

이경호 스포츠부 차장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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