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박철우… 당신은 어떤 선수 인가요

입력 2019-11-11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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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박철우. 스포츠동아DB

스포츠현장에 30년 넘게 있으면서 많은 선수를 만났다. 정말 다양했다. 생김새만큼이나 성격도, 자신이 선택한 운동을 대하는 태도도 각양각색이었다.

찬사를 받던 스타들은 남보다 뭐가 달라도 달랐다. 우선 부지런한 좋은 습관을 가졌다. 또 현명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운동도 잘한다는 말이 이해됐다. 흔히 사회성이라고 부르는 능력도 좋았다.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과 세상도 잘 알았다. 의지도 강했고 목표의식도 뚜렷했다. 눈썰미도 좋았다.

반면 기억 속으로 사라진 대부분은 내가 왜 이 운동을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냥 내 눈앞에 닥쳤으니까 생각 없이 관성으로 한다는 느낌이었다.

● 성공하는 선수들과 절박함

좋아서 스포츠를 선택하지만 기초를 배우는 과정인 학생선수 시절에는 힘들다. 부모나 주변의 강요에 억지로 운동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부터 스포츠로 인생을 개척하겠다는 굳센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선수는 드물다.

최근 도로공사 문정원은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절박함’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도 고교시절에는 절박함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했다. “프로배구선수가 됐지만 어느 날 더 이상 배구를 못할 수 있다는 현실이 눈앞에 보이자 리시브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고 정말 열심히 했다”고 털어놓았다.

어느 팀의 단장은 절박함이 선수들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우리 팀에 FA선수가 많다. 한 명은 올해 FA계약이 끝나고 또 한 명은 2시즌 째다. 계약 마지막시즌의 선수는 허리가 아픈데도 열심히 뛴다. 걱정할 일이 없다. 다른 FA선수는 쉬어가면서 할 것이고 다음 시즌에 엄청 잘할 것이다. 절박감의 차이”라고 했다. FA계약을 눈앞에 둔 선수가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 것은 상식이다. 인간인 이상 그 욕심을 탓할 수도 없다.


삼성화재 박철우. 스포츠동아DB


● 목표도 욕심도 없는 선수들의 끝은

구단이 답답해하는 것은 세속적인 욕심도 거창한 인생목표도 없는 선수들이다. 왜 직업 스포츠선수가 됐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미래계획도 없이 방황하는 선수들이 많다. 이들은 운동능력이 좋아 시작은 했지만 모든 일을 수동적으로 대한다. 나보다는 남의 탓을 하고 심지가 약해 주변 분위기에 자주 휩쓸린다. 그러다보니 내일도 없다. 호주머니에 돈이 생기고 인기가 조금 있으면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 결국 타고난 재질을 살리지도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진다.

어느 구단은 단장은 “선수들에게 운동에 해로운 담배를 끊으면 연봉을 1000만원 더 올려주겠다고 해도 그 것을 해내는 선수가 없다”며 한탄했다. 목표와 절박감, 절제능력은 선수들을 천당과 지옥으로 이끈다.

선수들마다 추구하는 인생도 목표도 제각각이다. 구단은 선수의 인성과 사회성보다는 능력을 더 원한다. 성적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격이 더러워도, 돌XX라도 운동만 잘 하면 매일 업어주겠다”고 말한다. 물론 운동능력만큼 인성이 따라가지 못하는 선수는 운동능력이 있을 때만 대접받는다.

삼성화재 박철우. 스포츠동아DB


● 팀의 명예와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뛰는 선수

정말 구단이 아끼는 선수는 자신보다는 팀의 명예를 위해 뛰는 선수다. 요즘 삼성화재 박철우의 플레이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도 “존중받아야 할 선수”라고 대놓고 칭찬했다. 한국전력과 함께 시즌 초반 힘든 시기를 보낼 것이라고 예견됐던 삼성화재가 예상외의 성적으로 잘 버티는 것은 오직 박철우로만 설명이 된다.

대체 외국인선수 산탄젤로는 다쳤고 능력도 기대치를 밑돈다. FA선수 송희채는 폐렴으로 한동안 출전이 불가능했다. 젊은 선수들을 많이 트레이드하다보니 자원도 모자랐다. 순천 KOVO컵 때는 12명만으로 힘들게 경기를 했다.

당연히 예선 탈락이었다. 쉽게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삼성화재가 1라운드 3연승을 거둔 것은 내가 몸담은 팀의 빛나는 전통을 훼손시킬 수 없다는 박철우의 의지가 코트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무릎과 다리가 아파서 절룩거리는 선배가 코트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격려를 하자 아프다면서 쉬고 싶었던 다른 선수들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를 마치면 아파서 힘들어하지만 경기 때는 가장 많이 점프하고 몸을 날리는 그를 보면서 누구도 대충 할 수는 없었다. 10일 대한항공과의 경기도 그랬다. 1~2세트를 내주고 허물어질 뻔했던 삼성화재는 박철우가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5세트까지 끌고 갔다. 막판 힘이 떨어지고 대한항공의 블로킹이 집중되면서 뒤집지는 못했지만 29득점 67%의 높은 공격성공률은 모두의 감탄을 이끌어냈다.

“솔직히 박철우가 우리 선수들의 멱살을 끌다시피 해서 여기까지 왔다. 자신의 이름과 팀의 명예를 위해 뛰는 것이 보인다. 꼭 팀의 레전드로 남겨두고 싶다”고 삼성화재의 프런트는 박철우에게 고마워했다. V리그 15시즌 동안 402경기에서 쌓아올린 5430득점, 564블로킹, 301서브에이스의 화려한 기록도 놀랍지만 선배들과 동료들이 쌓아놓은 팀의 명예를 알고 자기 이름의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선수이기에 더 대단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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