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김희애 “늘 마지막 작품이란 자세로 촬영…‘롱런’ 비결이죠”

입력 2019-11-13 06:5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배우 김희애.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연기 37년차…배우는 내 인생의 전부
요즘은 동네 걷고 사람 만나며 힐링
다시 태어나면? 배우말고 다른 인생


“오랫동안 배우로 살아왔는데 도전이 망설여진다면 그건 대중에 대한 배신 아닌가요. 망설여질 때도 있죠. 그래도 제 인생에 배우를 빼면 아무 것도 없어요.”

김희애(52)는 실제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꾸준히 드라마에 출연해 왔지만 웬만해선 겹치는 역할이 없다. 최근 스크린에서도 더욱 과감한 변화를 모색한다. 14일 개봉하는 영화 ‘윤희에게’(감독 임대형·제작 영화사 달리기)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윤희에게’는 20년간 첫사랑의 비밀을 간직하다 딸과 떠난 여행에서 지난날의 자신과 마주하는 윤희의 이야기다. 김희애는 타이틀롤을 맡아 오랫동안 비밀을 품은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비밀스러운 러브스토리이자 엄마와 딸의 여정을 통해 한 여성의 삶을 그리는 로드무비를 완성한 김희애를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작품을 내놓은 덕분일까. 김희애는 배우로 살아온 30여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달라진 마음가짐을 풀어냈다. 고등학생 때인 1983년 데뷔해 인생의 3분의2의 시간을 연기자로 살아왔으니 “배우를 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고 말하는 것도 수긍이 간다. 이런 말을 꺼낸 뒤엔 으레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하겠다’는 부연이 붙어야 할 것 같지만 김희애는 “다시 태어나면 왜 배우를 하겠느냐”며 “다른 인생도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면서 웃었다.

영화 ‘윤희에게’ 한 장면.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 “사랑이 어떻게 영원한가요”

김희애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사랑 이야기를 꾸준히 그려왔다. ‘내 남자의 여자’에선 친구의 남편과 사랑에 빠졌고, ‘밀회’에선 스무 살 어린 제자와 운명적인 사랑에 휩싸였다. 이번 ‘윤희에게’에서는 남녀관계로만 규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사랑을 그린다. 줄곧 사랑을 표현해 왔지만 요즘 그는 “영원한 사랑이 과연 있을까” 싶다고 했다.

“영화를 내놓는 입장에서 이런 말이 부정적으로 들리겠지만(웃음), 사랑은 변한다고 생각해요. 백년해로는 하늘이 내린 운명이죠.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니 영화나 책으로 로망을 채우는 거죠. 젊을 땐 저도 사랑에 환상을 가졌죠. 살다보니 사랑이든, 뭐든 영원한 건 없지 싶어요.”

김희애는 2014년 ‘우아한 거짓말’을 통해 20여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이후 멜로영화 ‘쎄시봉’, 스릴러 ‘사라진 밤’에 이어 지난해 ‘허스토리’까지 다양한 이야기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영화 촬영현장에서 열정 넘치는 젊은 스태프와 일하는 작업이 정말 행복해요. 예전엔 저도 철이 없었어요. 경치 좋은 곳에서 촬영하면 ‘여긴 어디? 내가 왜 여기 있나’ 싶고, 빨리 친구들과 놀고만 싶었어요. 요즘은 경치 좋은 곳에 가면 ‘와! 촬영하면 좋겠는데?’ 그래요. 사람이 바뀌더라고요.”

김희애가 변화를 거치면서도 꾸준히 연기할 수 있는 비결은 “언제나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그 마음이 더욱 굳어졌다. 연기가 풀리지 않을 때, 자신감이 떨어질 때면 “에잇! 그동안 실컷 했잖아? 이젠 그만해도 되잖아?”라고 내심 ‘쿨’하게 넘긴다. 그러다가도 다시 카메라 앞에 서면 “본능에 따라 연기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릴 땐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결혼하면 남들처럼 연기를 그만하는 줄로 알았고, 실제로 아이들 낳고 7년 동안 쉬기도 했어요. 연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가급적 이전에 했던 역할과 비슷한 배역은 하지 않으려 했어요. 피하다보니 본의 아닌 강제 휴식도 가졌죠.”

배우 김희애.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 새벽에 시작하는 일상 “동네 걸으며 힐링”

김희애는 보통 새벽 4∼5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얻은 습관이지만 이젠 몸에 뱄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상 안에서 더불어 살아야지, 배우라고 해서 연기만 하면 안 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동네를 걸으면서 작은 가게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어스름한 오후가 되면 막 흥분돼요. 오늘 할 일을 잘 해냈다는 거죠. 5시 즈음 고기를 굽고 채소도 씻어 와인 한 잔 곁들여 넷플릭스 영화를 찾아보는 게 행복이에요. 하하!”

김희애는 “청소하면서, 동네 슈퍼에서 장 보면서, 힐링한다”고도 말했다. “배우가 아닌 누구라도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고 여기는 그는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다보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렇게 돌아다닐 땐 화장은 물론 선글라스나 모자도 쓰지 않는다.

“여자들은 다 비슷해요. 꾸미기에 달렸으니까. 지금 예뻐 보이는 이유요? 오늘 아침에 숍에 다녀왔기 때문일 걸요, 하하! 집에선 제 얼굴도 심해요. 변장이 필요하죠.”

말은 이렇지만 배우에게 외모를 가꾸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준비가 돼 있어야 다양한 작품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오기 마련이다. 특히 중년의 배우들에게는 이래저래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기회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김희애의 고민도 이어진다.

“시나리오를 받다보면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조차 모를 이야기들이 많아요. 그런 와중에 만난 ‘윤희에게’는 흙에서 발견한 진주 같아요. 이런 작품이 저한테 오고, 개봉까지 하게 된 지금, 그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믿어요.”

김희애는 ‘윤희에게’에 만족한다. 개봉을 앞두고 나오는 호평은 그를 설레게 하는 힘이다.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 행복하죠. 어떤 감독, 어떤 배우와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 제가 함께 하는 감독과 배우들이 세계 최고라고 믿어요. 남의 화려한 밥그릇보다 내 밥상에 놓인 따뜻한 밥이 최고니까요.”

● 김희애

▲1967년 4월23일생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 날’ 데뷔 ▲1986년 KBS 1TV 드라마 ‘여심’ 주연·백상예술대상 신인상 ▲1989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1993년 MBC 주말극 ‘아들과 딸’·연기대상 ▲1996년 IT사업가 이찬진 씨와 결혼 ▲2007년 SBS ‘내 남자의 여자’·연기대상 ▲2018년 영화 ‘허스토리’ 등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