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잠잠하던 2020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 충격적인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프로 데뷔 이래 10년 동안 한 팀에서만 주축 선수로 활약한 안치홍(30)이 원 소속팀 KIA 타이거즈를 떠나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다는 이야기였다.
안치홍은 2009 신인드래프트 KIA 2차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프로무대에 입성했다. 2루수로 골든글러브만 3회 수상(2011, 2017, 2018). 전체 1순위 신인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 할 만큼 성적, 스타성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자원이었다. 구단도 “반드시 잡는다”는 입장을 사전에 내세웠기 때문에 그의 FA 잔류는 거의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안치홍은 장고 끝에 이적을 결심했다. 2년 26억 원(계약금 14억2000만원, 연봉 5억8000만원, 옵션 6억 원)에 ‘옵트아웃’ 조항이 포함된 최대 4년 56억 원 계약에 거인 군단의 일원이 됐다.
순수 보장액 20억 원, 보장계약기간 역시 2년뿐인 이 ‘모험수’ 계약을 안치홍은 왜 받아들였을까. 또 10년간 정든 팀을 떠나는 그의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스포츠동아는 당사자로부터 이번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계약을 축하한다.
“감사하다. 아직 크게 실감은 나지 않는데, 조금씩 익숙해지려 한다.”
-야구팬들이 깜짝 놀랄 이적 소식을 전해줬다.
“나조차도 팀을 옮긴다는 생각은 협상 전부터 없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KIA 선수들이랑 같이 야구를 하지 못한다는 게 아쉽고 그렇다.”
-특이한 계약을 했고, 그 때문에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솔직히 선수들에게는 보장기간이 정말 중요하다. 마음의 안정이라는 게 있지 않나. 가족도 있어 안정성이란 걸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꼭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었다. 지난해 내가 못한 걸 인정하고, 다시 내 야구를 하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 부분에서 롯데와 마음이 맞아 떨어졌다. 이 팀에 내가 정말 필요한 선수라는 것을 강조해주셨다. 그게 정말 감사하다. 그래서 모험 있는 계약을 택할 수 있었다.”
-신인시절부터 줄곧 몸담은 KIA를 떠났다.
“고등학교까지 서울에서 다녔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부터는 계속 광주에 살았다. 학생 때는 ‘집·학교’만 보통 다니지 않나. 서울 지리는 잘 몰라도 광주 지리는 잘 안다. 고향 같은 기분이 있었는데, 떠나게 되니 개인적으로도 많이 아쉽다.
-SNS에 올린 ‘자필편지’가 KIA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다.
“팀을 옮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 동안 감사했던 것을 모두 담기에는 한 없이 부족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마지막 예의를 정중하게 차린 것이라 보면 되나.
“나는 KIA에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였다. 그래서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만약에 그런 걸 몰랐다면, 지금처럼 생각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KIA팬들은 내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만큼 과분한 사랑을 보내주셨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올리고 싶다.”
-본인이 말한 ‘내 야구’에는 2루수 자리가 들어가 있나.
“물론이다. 그 때문에 이번 계약을 한 거다. 내가 지난 시즌 부진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장타력을 키우기 위해 시도한 ‘벌크업’이 민첩성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야구가 변하고, 나도 그에 맞게 다시 예전 몸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체중을 줄이는 데 집중하는 건가.
“단순히 ‘몸무게’를 빼는 게 아니다. 내야수는 민감한 자리라 몸을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벌크업으로 바깥 근육이 커져 있는 상태인데, 먼저 바깥 근육을 줄이고 나서 그 안에 있는 ‘속근육’도 줄여야 한다. 시즌 전체를 생각해 급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해 나가려 한다.
-이제는 ‘롯데 안치홍’이다. 새 유니폼을 입고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나.
“이런 상황 속에 왔으니 다시 꼭 ‘내 야구’를 보여주려 한다. 내가 야구를 잘 해야 팀 성적도 좋아지고, 계약도 더 좋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골든글러브를 다시 받고 싶다. 포지션은 물론 2루수다.”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