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가 감독을 이끄는 한국여자농구대표팀의 현실

입력 2020-02-09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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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농구대표팀 감독 이문규. 사진제공|대한농구협회

‘○○○ 감독이 이끄는 ◇◇팀.’

스포츠 기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말이다. 말 그대로 감독은 한 팀을 이끄는 수장이다. 특히 농구는 감독의 영향이 타 종목에 비해 훨씬 크다. 경기 중 발생하는 선수교체, 전술 변화 등에 감독이 곧바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 권위가 높은 국내 여자농구는 그 영향이 거의 절대적이다.

그러나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진행 중인 ‘2020 도쿄올림픽 여자농구 최종예선’에 출전 중인 한국여자농구대표팀은 예외다. 선수들이 감독을 이끌어가는 모양새다.

한국은 8일(한국시간) 펼쳐진 영국과의 경기에서 82-79로 힘겹게 승리했다. 영국은 한국이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잡아야 하는 팀이었다.

한국 이문규 감독(64)은 이 경기에서 6명의 선수만 출전시켰는데 이중 김한별(삼성생명)은 5분59초만을 뛰었다. 박혜진(우리은행), 김단비(신한은행), 강이슬(하나은행)은 40분 풀타임, 박지수(KB스타즈)가 37분19초, 배혜윤(삼성생명)이 36분42초를 뛰었다. 사실상 5명만으로 경기를 치렀다. 팀의 사활이 걸린 경기에서 감독이 정예 멤버만을 기용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 역시 감독의 권한이자 선택이다. 어쨌든 한국은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이 감독의 전략에 승인이 있었다고 보는 이는 없다. 한국은 4쿼터 초반 16점차 리드를 잡았는데, 이 감독이 선수들에게 공격시간을 늦출 것을 지시했다. 이는 독이 됐다. 흐름을 상대에게 내줬고 경기 막바지에는 역전패를 당할 위기에 놓였다. 게다가 상대 공격에 대한 수비 대응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경기 후 이 감독은 “준비한 대로 수비가 잘됐다”고 자신의 전술에 대해 만족을 표시한 반면, 추격당한 상황에서는 “선수들이 크게 이기다 보니 나태해진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상은 이 감독의 전략 미스를 선수들이 온 힘을 짜내 지켜낸 승리였다. 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뉴질랜드에서 벌어진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예선에서 한국은 중국에 81-80의 극적인 승리를 거둔 바 있다.

당초 이 감독은 중국을 승리 상대로 계획하지 않았다. 뉴질랜드를 잡겠다는 계획이었다. 선수들의 생각은 달랐다. 홈인 뉴질랜드에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해 중국전에 온힘을 쏟아 부었다. 선수들의 예상대로 뉴질랜드에게는 홈 텃세에 고전해 65-69로 패했다. 중국전 승리가 없었다면 한국은 최종예선에 오를 기회조차 없었다.

선수가 감독을 이끌어 가는 팀,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의 냉정한 현실이다.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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