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게임’의 이영미 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드라마에 경제관료들의 생생한 리얼리티를 담아낼 수 있었던 비결을 밝혔다.
tvN 수목드라마 ‘머니게임’의 이영미 작가는 “MBC 라디오 다큐드라마 ‘격동 50년’, KBS 라디오 다큐드라마 ‘대한민국 경제실록’에서 각각 97년 외환위기를 집필했었다. 그때 가졌던 의문이 ‘97년과 지금은 달라졌나?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관료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안전한가?’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특히 ‘대한민국 경제실록’을 쓰면서 우리나라 경제를 지배했던 이론들이 권력의 이해관계에 의해 굴절되었다는 생각을 했고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는 쓰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또한 요즘 영화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인간 소외에 시선을 두고 싶었다”면서 ‘머니게임’ 탄생의 첫 단추를 공개했다.
‘머니게임’은 관료사회를 현실감 넘치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깊은 공감을 자아내는 동시에 경제에 대한 깊은 식견으로 호평을 얻고 있다. 이영미 작가는 이에 대해 “MBC 라디오 ‘시선집중’을 비롯한 시사 작가 출신인데 이런 이력이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취재에 도움을 준 수많은 전문가들을 언급했다.
이어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은 직접 취재를 갔고 이후 몇몇 분들로부터 지속적인 도움을 받았다. 전문 금융 분야는 완성된 대사를 전문가들에게 보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고, 특히 금융경제학 박사이신 곽수종 전 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 교수님께 대본 감수를 받았다”고 말해 남다른 리얼리티가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또한 그는 ‘머니게임’을 연기맛집으로 만들어준 배우진에 연신 감사를 표했다. 먼저 이성민(허재 역)을 향해서는 “1회에 절벽에서 채병학(정동황 분)을 미는 씬이 있다. 과연 표현이 가능할까 생각했는데 이성민 배우님께서 캐스팅 됐다는 말을 듣고 단 한 번도 불가능을 생각하지 않았다. 매번 감탄과 감사의 마음으로 보고 있다”며 무한 신뢰를 드러냈다.
그리고 고수(채이헌 역)에 대해서는 “고수 배우님한테 두 번 놀랐다. 처음 뵈었을 때 너무 잘생기고 비율이 좋아서 깜짝 놀랐고 그보다 더 놀란 것은 연기에 대한 열정이었다.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잘생긴 얼굴이 가려지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 저게 프로 연기자지!’ 하는 생각을 했다”며 감동을 드러냈다.
심은경(이혜준 역)과 유태오(유진한 역)에 대해서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심은경 배우님과는 이메일을 통해 캐릭터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정말 진지하고 연구를 많이 하고 철학이 있는 배우라고 느꼈다. 드라마에서 표현된 이혜준도 그랬다. 특히 4회에서 채이헌이 해준 밥을 먹으며 우는 씬이 있는데,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같이 울었는지 모른다. 유태오 배우님도 마찬가지다. 유진한 역할을 이 이상 해낼 분이 과연 있을까 싶다. 에너지가 강하고 냉혹하며 굉장히 섹시하다. 그 이면에 고독함과 쓸쓸함까지 보인다. 제가 그려왔던 이상의 유진한이었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거 같다”고 말했다.
‘머니게임’은 주요캐릭터의 연령을 50대(허재)-40대(채이헌)-30대(유진한)-20대(이혜준)으로 구분, 세대간의 갈등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이 같은 설정에 이유를 묻자 이영미 작가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각자가 소속된 집단에 따라 다르다는 경험을 종종 했다. 이들은 각각 자기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들이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 또한 세대가 세대를 이해하는 과정이었으면 한다. 다만 유진한은 좀 다른 의미로 썼다. 그를 통해 돈을 좇고 물질에 집착하는 전 세대들에게 과연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과연 허재는 악인인가 아닌가’하는 점. 이영미 작가는 “처음 대본을 썼을 때도 몇몇 분들이 같은 질문을 주셨다”면서 “허재는 한마디로 괴물이며 파시스트다. 그러나 스스로의 욕망에 사로잡힌 괴물은 아니고, 경제관료로서 최선을 다하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답했다.
반면 이영미 작가는 극중 이만옥(방은희 분)의 스토리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 이만옥은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 한탕주의에 빠진 남편 진수호(김정팔 분)의 빚으로 인해 팍팍한 삶을 사는 인물. 이영미 작가는 “대본을 쓸 때 한 나절을 울면서 쓴 씬이 있다. 빚에 몰린 이만옥이 결국 아파트를 헐값에 넘기는 부분(10회)이었다. 바로 내 경험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면 집 하나 장만하고 먹고 사는 걱정 안 해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국가경제를 책임지는 관료가 그런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다양한 형태의 진수호가 지속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그는 특별히 애착이 가는 캐릭터로 ‘이혜준’을 꼽았다. 그 이유에 대해 “혜준이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것들을 보장받지 못한 젊은 세대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음에도 최악의 취업률에 시달리는 세대.
그 세대를 표현하기 위해 혜준이한테 걸어놓았던 장치들이 여성, 지방대, 흙수저였다. 혜준이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이런 허들들에 상처받지만 결국은 이겨낸다. 하지만 이겨내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 애초에 그런 것들로 인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혜준이 같은 젊은이들이 잘 되어야 우리나라가 잘 되고 희망이 있다고 본다. 혜준이를 통해 한국 경제의 희망을 보고 싶다”고 밝혔다.
나아가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다. 시간이 아깝지 않은 드라마. 드라마를 본 다음 가슴이 가득 차는 드라마. 최선을 다해 썼다는 말에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다. 다만 모자람이 있다면 저의 역량일 것이다. 김상호 감독님께서 연출하신 드라마를 보면서 작가의 모자라는 역량을, 많은 부분 연출로 매우신 것을 봤다. 감사하는 마음이 많다. 그리고 ‘머니게임’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많은 분들께 은혜를 입었다. 바람이 있다면 언젠가 은혜를 갚을 날도 왔으면 좋겠다”고 인사를 남겼다.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