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하리조나’에서 벼랑 끝으로…KT 하준호, 하이라이트 엔딩 꿈꾼다

입력 2020-03-19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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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하준호. 스포츠동아DB

시작은 2016년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였다. 2015 시즌 중 롯데 자이언츠에서 KT 위즈로 트레이드된 하준호(31)는 이듬해인 2016년 스프링캠프에서 펄펄 날았다. 조범현 당시 KT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 프런트 모두 주목했다. ‘하리조나(하준호+애리조나)’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그 해 94경기에 출장해 타율 0.219에 그쳤다. 적잖은 기회에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악순환은 이어졌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에 갈 때마다 캠프 최우수선수(MVP)에 준하는 활약을 했다. ‘하리조나’, ‘하야자키(하준호+미야자키)’라는 별명은 기대감의 상징이었지만, 막상 시즌에 들어가면 알을 깨지 못했다.

나이는 한 살씩 먹어가지만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주는 건 점차 적어졌다. 하준호는 지난 시즌을 앞두고 문득 방출에 대한 걱정을 했다. ‘팀에서 잘려도 이상할 게 없다’고 자책했다. 자신의 위치가 벼랑 끝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차가운 현실이 염려됐을 터. 하준호는 그토록 미웠던 마운드에 다시 오르기로 결심했다.

경남고 에이스였던 하준호는 2009년 1군 20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ERA) 7.30을 기록했다. 2010년에도 5경기 ERA 24.00을 기록한 뒤 군 복무를 수행했고 결국 글러브 대신 배트를 쥐었다. 투수가 싫어 한 차례 포지션을 바꿨음에에도 다시 마운드에 오른 건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경쟁력은 충분했다. 여전히 140㎞ 후반대의 빠른 공이 싱싱하게 꽂혔다. 이강철 KT 감독도 경쟁력을 인정했고, 지난해 8경기에 등판했다. 표본이 많지는 않았지만 ERA도 1.13으로 준수했다. 이보다 더 큰 성과는 트라우마 극복이었다. 그의 프로 첫 선발등판이었던 2010년 8월 4일 잠실 롯데-두산 베어스전. 결과는 2이닝 6안타 3볼넷 7실점(6자책)으로 처참했다. 포수를 훌쩍 넘어 백네트 뒤로 날아간 공만 여러 개였다. 처음이자 아직까진 마지막 선발등판이다. 9년 전에는 프로 1군 구장마다 짙은 아쉬움을 새겼지만, 지난해 8경기에서 어느 정도 공포를 지웠다. 하준호의 올해를 구단에서도 기대하는 이유다.

하준호에게는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승리, 홀드, 세이브가 아니다. 은퇴하기 전 한 번이라도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의 엔딩 영상을 장식해보는 것이다. 방송사에서 다섯 개 구장에서 가장 빛난 선수, 혹은 장면을 편집해 만드는 영상이다. 5경기가 열리는 그 하루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다. 올해 하준호는 하이라이트 필름을 장식할 수 있을까. KT 불펜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질문 중 하나다.

수원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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