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유벤져스’ ①] 가수 ‘유산슬’ 만든 ‘유벤져스’…“2집도 콜? 시청률 따블로 줄게”

입력 2020-03-26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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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우 작곡가와 이건우 작사가, 정경천 작곡가(왼쪽부터)가 예능 전성기를 맞으며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트로트가수 유산슬을 탄생시킨 세 사람은 변함없는 열정으로 새로운 창작에도 나서고 있다. 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 가수 ‘유산슬’ 만든 ‘유벤져스’ 박현우-정경천-이건우

최근 ‘유벤져스’(가수 ‘유산슬’을 탄생시킨 주역들을 영화 ‘어벤져스’에 빗댄 표현)라는 별명으로 방송가를 종횡무진 누비는 황혼의 예능 새내기들이 있다. 바로 ‘박토벤’ 박현우(78)·‘정차르트’ 정경천(72) 작곡가와 ‘작신’(작사의 신) 이건우(60) 작사가다. 작년 9월 MBC ‘놀면 뭐하니?’에 혜성처럼 나타나 각 방송사를 넘나들며 맹활약 중이다. 겉보기엔 그저 입담 좋은 아저씨들 같지만, 사실 이들은 한국 대중음악의 ‘산실’로 통하는 실력자들이다. 각자 경력을 모두 합한 138년에 작업 곡만 5000여곡. 제목만 쭉 늘어놓으면 1970년대 이후 대중가요사가 될 정도다. 각기 40여년 동안 음악이란 한 우물만 파다 뒤늦게 예능프로그램에 뛰어든 세 사람의 ‘롤러코스터’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박토벤’ 박현우
김태호PD, 사람 보는 눈 있어 하하!
트로트 열풍 기뻐…다양성 존중해야

‘정차르트’ 정경천
예능 종횡무진…남은 건 ‘런닝맨’뿐
잘려도 그만, 할 말 다했더니 인기

‘작신’ 이건우
음악짬밥, 합해서 ‘138년+5000여곡’
최고의 곡? 우리가 함께 만드는 그 곡!


박현우·정경천 작곡가와 이건우 작사가를 만나기 위해 19일 찾아간 서울 동대문구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앞. 여러 대의 카메라 삼각대와 각종 촬영 장비가 늘어서있었다. 이날 한 예능프로그램 촬영이 있을 것이라 귀띔했던 이 작사가는 “막 끝났다. ‘나이스 타이밍’”이라며 웃었다. 소파에서 쉬던 박 작곡가와 정 작곡가도 지친 기색 없이 “사진은 어디서 찍을까?”라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포즈를 취하면서는 즉석 상황극도 펼친다. 그야말로 ‘프로 방송인’이다.

“이 사람아. 우리 이래봬도 예능인 2년차야. 하하하!”

정경천 작곡가, 이건우 작사가, 그리고 박현우 작곡가(왼쪽부터). 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 “인기 비결? 눈치 안 보기!”


- 요즘 많은 예능프로그램에 함께 출연 중이다. 방송 활동을 해보니 어떤가.


정경천(이하 정) : “‘놀면 뭐하니?’에 유산슬(유재석의 트로트가수 활동명)과 출연한 후 러브콜이 엄청 쏟아졌다. MBC ‘라디오스타’ ‘복면가왕’, KBS 1TV ‘아침마당’ 등에 나갔고, 라디오 방송도 했다. 웬만한 건 다 했네. 안 나간 건 SBS ‘런닝맨’ 뿐이다. 나가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박현우(이하 박) :
“신기하게 우리가 나가면 시청률이 ‘따블’(2배)로 뛴다. 트로트신동 특집으로 출연한 MBC ‘편애중계’(2월28일·3월6일)가 그랬다.”


이건우(이하 이) : “나는 종종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어 처음엔 두 형님을 걱정했다. 하지만 웬걸! 형님들이 훨씬 잘 하시는 거다. 타고 나신 것 같다. 어떻게 참고 사셨지?”


정 : “우린 작곡 안 했으면 예능 했을 거야.”


- 젊은 시청자들도 열광한다. ‘예능 잘하는 법’을 알려 달라.


이 : “최근의 트로트 열풍과 시기가 잘 맞았다. 무엇보다 두 형님은 눈치를 안 보신다. 베테랑인 유재석이나 김구라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 다 한다. 그게 통하지 않았나 싶다.”


정 : “우리는 작곡가와 작사가라는 본업이 있다. 방송에선 잘려도 그만이지.(웃음) 그런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하니 저절로 매력이 나오는 것 같다. 즐겁게 촬영하는 것도 비결이다. 방송이 생각보다 재밌다. 계속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박 : “자고로 다이아몬드는 늦게 발견되는 법이다. 우리를 캐낸 ‘놀면 뭐하니?’의 김태호 PD, 그 양반이 사람 볼 줄 안 거다.”

세 사람은 ‘놀면 뭐하니?’를 통해 얻은 ‘박토벤’, ‘정차르트’, ‘작신’의 별칭으로 불린다. 음식점에 가면 밥값을 안 받으려는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흔하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일등공신은 단연 유산슬이다. 박 작곡가가 10여분 만에 작곡하고 정 작곡가가 편곡, 이 작사가가 노랫말을 쓴 ‘합정역 5번 출구’는 이들의 새로운 효자곡이 됐다.


- 마침 유산슬이 컴백을 준비 중이다.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정 : “겪어보니 정말 좋은 점이 많은 사람이다. 단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2집도 함께 했으면 하는 거다. ‘시청률 따블’ 원하면 불러 달라.”


박 : “‘합정역 5번 출구’ 때에는 연습 시간이 부족했다. 못내 아쉽다. 이번엔 시간을 더 투자하라. 분명 훌륭한 가수가 될 것이다.”


이 : “타고난 재능은 있는데 바쁘다보니 여러 장르에 도전하지 않는 것 같다. 랩, 발라드에도 도전했으면 좋겠다. 유산슬! 할 수 있어!”

이건우 작사가, 박현우 작곡가, 그리고 정경천 작곡가(왼쪽부터). 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 “우리의 히트곡, 아직 안 나왔다”

- 많은 노래들을 작업했다.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정 : “고등학생 무렵 시작했다. 공부는 싫고, 음악은 하고 싶고. 음악 책만 보면 잠이 안 오는 거라. 천직이다 싶어 외길만 팠다.”


박 : “중학교 때부터 음악을 했다. 평생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27세부터는 바이올린 연주자로도 활동하면서 돈을 벌었다.”


이 : “중학생 시절 무렵 작사가의 꿈을 가졌다. 21세에 같은 동네에 사는 전영록을 만나 ‘종이학’을 썼다. 이후로 ‘꽃길’만 걸은 행운의 사나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위기도 많았다. “옛날엔 저작권 개념이 없어 작곡·작사비를 못 받기 일쑤”였다. 트로트를 경시하는 대중문화계 분위기와 ‘트로트는 어른들만 부르지’라는 젊은이들의 편견과 외면에 위축될 때도 있었다. 그런 순간에도 이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음악을 향한 자부심” 덕분이었다.


- 요즘 후배 가수들의 기세가 무섭다. 어떻게 보나.


정 : “우린 ‘천재’가 아니라 노력파다. 반면에 젊은 친구들은 천재들이 많다. 리듬감도 훨씬 좋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우리도 우리대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박 : “후배들에게 배울 점도 많지만 음악이란 연륜이 필요한 장르다. 그 점에서는 우리를 못 따라오는 부분이 있을 거다. 우리는 어떤 경지에 올랐다. 길 가다가도 악상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작곡한다. 우리가 보낸 세월의 힘이라 믿는다.”


- 트로트 장르에서도 인기를 모으는 후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트로트가 인기를 이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 “가수는 많지만 곡을 공급할 작곡가와 작사가는 거의 없다. 젊은 친구들의 귀가 팝과 대중음악에 편중된 탓에 옛 노래처럼 주옥같은, 완성도 높은 트로트를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다. 이제 막 이름을 알린 가수들의 신곡이 기대에 못 미치면 대중은 돌아설 것이다. 양질의 작곡가와 작사가를 발굴하는 데 힘 쓸 때라고 본다.”


박 : “비슷한 노래들이 자꾸 나오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달라.”


- 즐거운 인생의 변화를 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 혹시 또 다른 꿈이 있다면.


박 :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니 당연히 좋은 곡을 남기는 게 마지막 꿈이다.”


- 그렇다면 ‘내 인생 최고의 곡’은?


박·정·이 : “오늘 밤 우리가 함께 쓰는 그 곡이 최고의 히트작이 될 거다. 아직 보여줄 게 많다는 뜻이다. 하하하!”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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