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에도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1기 허은회, 대상경륜 첫 3연승 ‘금자탑’

입력 2020-04-0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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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경륜을 이끈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1기 허은회, 2기의 ‘빅3’로 불리며 경륜 전성기를 주도한 김보현, 2기 ‘빅3’의 맏형으로 추입 젖히기형 스타일을 보여준 정성기(왼쪽부터). 사진제공|국민체육진흥공단

초기 경륜을 이끈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1기 허은회, 2기의 ‘빅3’로 불리며 경륜 전성기를 주도한 김보현, 2기 ‘빅3’의 맏형으로 추입 젖히기형 스타일을 보여준 정성기(왼쪽부터). 사진제공|국민체육진흥공단

■ 1994∼2002년 최고의 스타들

2기의 ‘빅3’ 김보현·원창용·정성기
각 다른 스타일로 경륜 전성기 주도
엄인영, 1999년 연대율 100% 신화

경륜에 다른 스포츠 종목처럼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누가 입성할까. 1994년 경륜 원년부터 함께 한 박창현 최강경륜 발행인이 연도별로 은륜스타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시리즈 첫 번째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최고의 스타들이 누구인지 알아본다.


● 경륜의 선구자 은종진·허은회

초창기 경륜을 이끌던 일등 공신으로 은종진(2007년 은퇴)과 허은회가 있다. 아마 시절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은종진은 경륜이 개막하자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쟁쟁한 국가대표 선배들을 제치며 ‘달리는 보증수표’라는 칭호를 얻었다. 거친 몸싸움도 마다않는 투지나 두뇌 플레이는 당시 선수들 중에 소위 ‘넘사벽’ 수준이었다. 성실성과 경륜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입상에 실패를 해도 심지어 낙차 경주에서도 객장의 갈채를 받았다.

1기 중 가장 화려한 아마경력을 가진 허은회(1983∼90년 국가대표)는 데뷔 직전까지 실업팀 지도자로 있었던 3, 4년간의 실전 공백과 서른이란 적지 않은 나이로 인해 1994년에는 은종진의 그늘에 가려졌다. 하지만 매일 새벽훈련에 야간훈련까지 하면서 전성기 기량을 빠르게 회복했다. 그 결과 최초로 대상 경륜 3개 대회를 연속우승하는 금자탑도 쌓았다. 힘으로 윽박지르는 젊은 선수를 역이용하는 노련한 경기 운영과 특유의 순발력이 최고였다. 특히 반 바퀴를 남겨두고 순간적으로 후위에서 선두권으로 올라와 막판 직선에서 승부를 보는 2단 젖히기나 추입전법은 거의 예술의 경지라는 평가를 듣는다.


● 경륜 전성기 태동 김보현·원창용·정성기

2기의 ‘빅3’로 불리는 김보현, 원창용, 정성기는 경륜 전성기의 개막을 주도한 선수들이다. 아마추어 선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경륜 무대로 직행한 이들은 젊음과 파워를 무기로 순식간에 경륜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전반적인 시속도 빨라졌지만 단순했던 반바퀴 이후의 승부를 한 바퀴까지 늘렸고 지역연대 대결까지 레이스 양상을 확대시켰다. 그만큼 경기는 더 스피디해졌고 전개가 변화무쌍해졌다.

세 선수는 스타일이 각각 달랐다. 맏형 격인 정성기가 은종진, 허은회와 유사한 추입 젖히기형이라면, 원창용은 호쾌한 선행이 주무기였고, 김보현은 상대나 상황에 따라 선행과 추입을 적절히 섞는 자유형의 모습을 나타냈다. 선행 전문 원창용은 리더십도 남달라 김보현과 함께 지역의 대표선수로 부상하며 창원·경남을 전국 최강팀 반열에 올려놓았다. 지금은 정성기만 현역에 남아있고, 원창용과 김보현은 각각 2001년과 2016 년에 은퇴했다.




● ‘연대율 100%’ 신화 엄인영

1999년 사상 초유의 연대율 100%를 기록한 엄인영은 주광일과 연대를 이루며 그해 그랑프리까지 움켜쥐었다. 그는 김보현, 원창용, 정성기와는 다른 경기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당시 3.50 이상의 고 기어를 사용함에도 순간파워나 스타트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주광일은 데뷔 초에는 엄인영보다 화려함은 다소 떨어지는 듯 보였지만 어느 위치에서 나서도 막판까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점이 최대 장점으로 꼽혔다.

엄인영은 1999년 이후 올림픽까지 출전하는 등 사이클 인생 최고 황금기를 맞이했지만 귀국 후 원인 모를 슬럼프와 두 차례 큰 부상이 겹치면서 고전한 끝에 2006년 은퇴했다. 온화하면서도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후배 관계도 돈독했으며, 독보적인 성적과 인품을 바탕으로 수도권을 규합하며 지역 최강으로 우뚝 서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지도자 생활도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정용운 기자 sadzo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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