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공백의 하루와 80일, 그리고 래리 버드 룰

입력 2020-04-22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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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KGC인삼공사

일본프로야구에는 ‘공백의 하루’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원조 괴물투수가 드래프트 제도의 빈틈을 이용해 인기구단에 지명된 사건 때 나왔다. 1978년 에가와 스구루(江川卓)는 신인드래프트 회의 전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해 일본 야구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당시 일본 야구규약은 “드래프트에 지명된 선수는 구단과 다음해 신인드래프트 전전날까지 협상을 벌일 수 있다”고 명시했다. 섬나라다보니 구단과 선수가 협상을 벌이다 자칫 날씨 또는 교통상황 때문에 다음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못할까봐 만들어진 ‘전전날’ 규정이었다.

요미우리 입단을 원했던 에가와는 1977년 11월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스의 지명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야구유학을 떠났다. 다음해 신인드래프트 전전날까지 라이온스 행을 거부했던 에가와를 데려가면서 요미우리는 “지명권이 사라진 선수는 자유계약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모든 구단이 반발했다. 소송으로 이어졌다. 요미우리 편을 들었던 일본야구기구(NPB)의 커미셔너는 퇴진했다. “다음 총재는 법조계 사람을 뽑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스포츠동아DB


지난 9일 한국배구연맹(KOVO) 이사회는 여자부 샐러리 캡을 확정했다. 표 대결 끝에 5개 구단 연합의 안(샐러리 캡 18억 원+옵션 캡 5억 원)이 통과됐다. 흥국생명은 “갑자기 모든 선수의 연봉을 공개하고 검증하겠다는 방안에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사회의 결정으로 새로운 시즌부터 여자부는 연봉과 옵션 등을 공개하고 검증도 받아야겠지만, 빈틈은 여전히 있다. 당장 몇몇 구단이 계약을 하고도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어차피 계약 마감일인 23일이면 KOVO에서 일괄적으로 FA선수의 계약을 발표할 것이다. 그래서 미루는 측면도 있고 계약이 남은 선수와의 협상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 또 그동안 음성적으로 줘왔던 옵션을 연봉으로 전환하는 일이 복잡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는데 새로운 검증 규정이 적용되기까지는 80여일의 공백이 있다. KOVO는 2020년 7월 1일부터 2021년 6월 30일까지의 계약을 검증한다. 4월 10일 FA선수 공시와 함께 새롭게 적용된 규정 사이에는 약 80일의 시차가 존재한다. 이 기간 공백의 80일 동안 구단이 마음만 먹으면 검증을 피해갈 방법은 많다. 기존에 계약한 선수는 물론이고 새로 FA 계약을 한 선수도 선금을 준 뒤 7월 1일부터 시작되는 계약서에는 연봉을 줄여서 제출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샐러리 캡 소진율도 인위적으로 낮춰진다.

사실 공백의 80일이 아니더라도 구단이 검증을 피해갈 방법은 많았다. 은퇴 뒤에 주겠다고 선수와 구단이 짜고 계약하면 막을 방법은 없다. 가족이나 에이전트에게 줘도 본인이 털어놓지 않는 한 KOVO나 구단이 찾아낼 방법은 없다. 내부고발제도가 도움을 줄 것이라지만, 구단은 비밀엄수계약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 결국 이사회에서 아무리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도 구단은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낸다. 그래서 V리그 이사회는 규정보다는 대중의 눈을 이용한 검증과 모두가 납득할 공정가격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이사회에서는 샐러리 캡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특정구단의 선수에게만 예외를 인정해주자는 말도 나왔다. KOVO는 “모두에게 똑같이 규정은 적용된다. 특정선수 1명에게만 예외를 두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모든 구단이 원한다면 미국프로농구(NBA)의 예외조항처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래리 버드 룰(Larry Bird Exception)로 불리는 예외조항은 팀의 간판선수와 재계약하고 싶은데 샐러리 캡이 문제가 될 경우에는 예외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한 팀에서 3년 이상 뛴 슈퍼스타들에게 주는 특혜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샐러리 캡 때문에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팀을 옮겨 다니면 리그의 흥행에도 좋지 않다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만들어낸 규정이다. KOVO 이사회도 자꾸만 새로운 법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합리적 대안을 먼저 찾아보기를 권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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