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1위 고진영이 직접 털어놓은 ‘아, 나의 할아버지’

입력 2020-05-05 1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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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미국 진출 후 첫 메이저 챔피언에 올랐을 때, 그는 “1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우승을 바친다”는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11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올해의 선수’ 트로피를 받은 뒤에도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유독 남달랐던 할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정. 다 이유가 있었다. 여자프로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솔레어)이 5일(한국시간) LPGA 홈페이지에 공개한 ‘내 할아버지의 딸’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작고한 할아버지와의 애틋한 인연을 고백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의 기억이라도 더 지키기 위해 힘겹게 싸우는 모습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다”는 말로 첫 문장을 시작했다. 조부 고익주 옹은 기억력 장애를 일으키는 알츠하이머병과 오랜 시간 싸우다 2018년 4월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는 내게 ‘진영’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첫 손녀였고, 처음부터 나와 할아버지는 특별했다”고 돌아본 고진영은 “할아버지는 나를 웃게 해 주시는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할아버지에게 알츠하이머병이 찾아온 것은 2014년. “슬프지만 할아버지는 함께 있을 때에도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고 적은 고진영은 “하지만 내가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은 내가 TV에 나올 때 할아버지께서 나를 기억하셨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TV로 골프 대회를 보시며 나를 응원하셨고, 그 덕분이었는지 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열 번 우승을 했다”고 떠올렸다.

“잔인한 도둑이 매일매일 조금씩 할아버지의 기억을 빼앗는 일은 슬프고 지켜보기 힘들었지만, 병마에 맞서 싸우는 할아버지의 용기와 위엄을 보며 오히려 큰 영감을 받기도 했다”며 할아버지의 투병이 자신이 심리적으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고진영은 초등학생 시절 박세리의 2008년 US오픈 우승 영상을 재방송으로 접한 뒤 골프에 입문하게 된 사연, 권투 선수 출신의 아버지가 유독 체력을 강조해 줄넘기에 열중했던 어렸을 때 모습, 가족들의 걱정 속에 LPGA 도전에 나섰던 시간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 등도 솔직하게 풀어냈다.

“나는 모든 팬들이 스코어보드의 숫자나 진열장의 트로피보다 ‘인간 고진영‘을 더 많이 봐주길 바란다”고 덧붙인 그는 “나는 누군가의 친구이자 딸이며 손녀 그리고 골퍼다. 만일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봐 준다면 내 인생과 선수로서의 삶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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