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이대호. 스포츠동아DB
십수 년간 롯데 자이언츠 지명타자 자리는 대부분 고정됐다. 홍성흔, 최준석(이상 은퇴), 이대호 등 주인공은 차례로 바뀌었지만 한 시즌의 절반 이상을 지명타자로 나서며 타격에만 전념했다. 허문회 롯데 감독은 지명타자 자리를 주축 타자들에게 고루 분배할 계획이다. 달라진 롯데를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다.
그간 롯데의 지명타자 자리는 거포의 상징이었다. 시작은 홍성흔이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롯데에서 1963타석을 소화했는데 그 중 1878타석(95.7%)을 지명타자로 나섰다.
배턴은 최준석이 이어받았다. 최준석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1474타석 중 1371타석(93.0%)을 지명타자로 출장했다. 이대호가 합류한 2017년에는 지명타자 자리를 나눠가졌지만 여전히 최준석의 지분이 60%를 넘었다.
최준석이 팀을 떠난 2018년부터 지명타자는 이대호의 몫이 됐다. 이대호는 지난 2년간 1153타석 가운데 842타석(73.0%)에서 지명타자를 맡았다.
홍성흔과 최준석, 이대호 모두 타석에서 팀의 중추 역할을 해냈다. 이들이 수비에 공을 들이는 시간에 상대적으로 타격에 집중한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특정 선수가 지명타자 자리를 도맡는다면 자연히 다른 타자들은 대부분의 경기에서 수비를 소화해야 한다. 144경기 장기 레이스에서는 체력 저하의 사이클이 자주 찾아올 수밖에 없다.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도 특정 선수의 수비력이 심각하게 떨어지지 않는 이상 지명타자 자리를 일종의 쉼터로 삼아 여러 야수들에게 번갈아 맡기는 추세다.
허문회 감독의 생각도 비슷하다. 허 감독의 첫 공식경기였던 5일 KT 위즈와 2020시즌 개막전 지명타자는 정훈이었다. 이대호는 1루 미트를 꼈다. 허 감독은 “고정 지명타자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민병헌, 손아섭, 전준우는 물론 딕슨 마차도까지도 체력이 떨어지면 지명타자로 출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허 감독은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막이 늦어져 일정이 빡빡하다. 축소된 장기 레이스다. 선수들의 체력 안배는 순위를 가르는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더블헤더와 월요일 경기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야수들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명타자 자리가 특정 선수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다.
주전 1루수로 나서게 될 이대호의 의지 역시 충만하다. 수비를 맡으면서도 타격을 유지하기 위해 겨우내 구슬땀을 흘렸다. 15㎏ 가까이 체중을 감량한 가장 큰 이유도 결국 안정적인 1루 수비를 위해서다.
수원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