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전임단장의 역할과 현대캐피탈의 준비

입력 2020-05-20 13: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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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KOVO

팬들은 큰 관심이 없겠지만 최근 V리그에는 새로운 흐름이 하나 생겼다.

배구단 업무만 담당하는 전임 단장이 늘어가는 추세다. 그동안 대부분 구단들이 회사에서 다른 업무를 하는 임원을 배구단 단장으로 임명해 겸업을 시켰는데 차츰 전임 단장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최근 KB손해보험도 이태웅 전임 단장을 임명했다.

팬들은 단장보다 선수의 이적이나 외국인선수 누구를 데려오느냐에 더 관심을 두지만 사실 단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최근 야구드라마 ‘스토브리그’를 통해 그나마 단장의 역할이 일부분은 알려졌다. 물론 드라마는 허상일 뿐 실제와는 큰 차이가 난다. V리그에서 단장은 리그의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이사회의 멤버로서 법도 만들고 실행하면서 감독선임, FA선수 영입 등 팀의 정책방향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최종책임자다. 감독에 가려서 그 역할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을 뿐 사실상 팀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좋은 단장이 있는 팀은 당연히 성적도 좋다.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도 받는다. 지금 V리그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현대캐피탈이 좋은 예다. 최근 현대캐피탈은 5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던 신현석 단장이 명예롭게 물러났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현대캐피탈은 2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과 2번의 리그 1위를 차지했다. 역대 어느 단장보다도 좋은 성적이었다. 최태웅이라는 좋은 감독과 풍부한 선수단 구성 등의 기본바탕도 좋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신현석 단장은 입을 닫고 귀와 호주머니를 여는 가장 모범적인 단장의 모습을 보여줬다. 모기업에서 최고위급 임원으로 일했던 그는 배구단의 단장이 되자마자 자신을 낮췄다. 선수단 지원 단장으로 자신의 역할을 정하고 현장의 중요한 결정은 최태웅 감독에게 모두 양보했다. 그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천안 훈련장에서 사라진 단장실이었다. 최태웅 감독에게 단장실을 양보하고 자신은 프런트 직원들과 함께 좁은 사무실을 썼다. 그가 뒤에서 감독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도록 지원하고 헌신하자 팀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2002년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스에서도 있었다. 그전까지 삼성은 돈도 많고 좋은 선수도 많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은 없었다. 원인은 여러 가지였지만 프런트가 현장을 통제하려다보니 생기는 역효과라는 말도 나왔다. 비서실의 감사와 경영진단을 2번이나 받았지만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프로야구단은 기업이 아닌데도 기업의 시각으로만 답을 찾으려니 문제해결은 되지 않았다. 이를 해결한 사람은 신필렬 당시 사장이었다. 그는 프런트가 선수단을 통제하지 않고 서비스를 해주는 사람들이라고 역할을 정의했다. 사장의 새로운 정책방침에 구단 직원들은 당황했지만 사장이 먼저 자신을 낮추자 우승은 기적처럼 찾아왔다.

현대캐피탈은 신현석 단장의 퇴임을 앞두고 이교창 부단장을 함께 근무하도록 했고 최근 단장으로 승진시켰다. 이 과정에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단장은 누구보다 구단의 일을 전문적으로 잘 알아야 하기에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현대캐피탈은 새로운 단장에게 충분히 현장에서 공부할 준비기간을 줬고 전임단장이 추진해온 정책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기업에서 아무리 유능했고 많은 업적을 남겼더라도 스포츠산업은 생소한 분야다. 하루아침에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임원 마지막에 쉬었다가 지나가는 단장이라면 필요 없지만 전문적으로 일을 하려는 단장이라면 충분한 준비과정이 있어야 한다. 재임기간 동안 배구 공부만 하다가 끝나는 단장으로는 리그의 발전이 없다. V리그는 결정권자들의 보다 높은 전문성을 요구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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