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마흔에 생애 첫 만루홈런 친 이성우와 가족

입력 2020-05-2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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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이성우. 스포츠동아DB

요즘 잘나가는 LG 트윈스는 27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15-4 대승을 거뒀다. 정찬헌이 무려 12년 만에 선발투수로 승리를 따냈고, 외국인타자 로베르토 라모스의 3연속경기홈런과 오지환의 연타석홈런까지 쏟아졌다.

대중은 유명 스타들의 결과에 더 관심을 갖지만, 때로는 그 화려한 빛에 가린 무명 선수들도 생애 최고의 날을 맞는다. LG 백업 포수 이성우는 11-3으로 앞선 8회초 1사 만루서 한화 김범수를 상대로 홈런을 터트렸다. 이미 승패가 판가름 난 뒤라 선수의 기록과 연봉협상을 위한 홈런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는 의미 있는 한방이었다.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의 타자가 선수생활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시즌에 생애 첫 그랜드슬램을 쏘아 올렸다.

성남서고를 졸업하고 2000년 LG의 육성선수로 시작했지만 1년 뒤 방출됐다. 이후 상무~SK 와이번스(육성선수)~KIA 타이거즈~SK를 거쳐 2019년 LG로 돌아온 야구이력을 보면 선수생활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018년 SK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그의 성실성을 인정해 프런트로 전향할 것을 권유했지만, 이성우는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사그라질 뻔한 선수생활에 무슨 큰 미련이 남아서인지 거절하고는 친정팀의 문을 두드렸다.

주전이 아니면 쉽게 허락되지 않는 포수라는 특수 포지션. 그동안 선배, 동기는 물론이고 후배에게 밀리면서도 이성우는 어떻게든 버텼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마스크를 쓰는 횟수도, 타석에 서는 빈도도 뜸해졌다. 그래서 대타, 대주자 기회가 오거나 주전 포수가 지쳐 막판 땜질용으로 들어갈 때도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어쩌면 지금이 내 야구인생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라운드의 평범한 것들이 달리 보였다.

이런 이성우를 버티게 해준 원동력은 가족이었다. 남들처럼 1군에서 뛰지 못하고 2군 경기에 나서는 그로선 “아빠는 프로야구선수”라고 자신 있게 말할 기회조차 없었다. 단 한 번이라도 아이들에게 아빠가 프로야구선수라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줄 날을 위해 기다렸다. 마침내 지난해 그런 기회가 불쑥 찾아왔다. 6월 21일 잠실 KIA 타이거즈전이었다.

LG 이성우. 스포츠동아DB

9회초부터 후배 유강남을 대신해 마스크를 쓴 이성우는 8-8 동점인 9회말 무사 1·2루서 생애 첫 끝내기안타를 쳤다. 그는 첫 방송 인터뷰에서 “19개월 된 둘째에게 아빠가 야구선수라는 것을 알게 해줘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제 그 딸은 무럭무럭 자라 30개월이 됐다. 아빠는 11개월 만에 또 다시 야구선수라는 것을 딸에게 알려줬다. ‘야구의 꽃’이라는 만루홈런을 통해서다.

이성우는 “야구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손을 내밀어준 구단에 감사하다.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4~5년 전인데, 마흔에도 야구를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작년에 첫 끝내기안타에 이어 올해는 야구선수로서 늦었지만 데뷔 첫 만루홈런까지 쳤다. 작년 마지막 홈경기 때 구단에서 선수들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 때 우리 아이들도 참여시키고 싶었지만, 지방에 있어 참여하지 못했다. 아빠가 야구선수로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주고 싶었는데 아쉬웠다”며 “그렇지만 오늘(27일) 선수로서 마지막일 수도 있는 만루홈런으로 확실하게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준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2020년 5월 27일, 이성우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지구상에서 가장 야구 잘하는 사람으로 영원히 남게 됐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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