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날 주심은 선수를 쫓아갔나?

입력 2020-06-16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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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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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이 하나 나왔다. KIA 타이거즈-SK 와이번스전 3회말이었다. 2-0으로 앞선 가운데 1사 2루서 헛스윙 삼진을 당한 SK 정의윤은 배트로 홈플레이트를 강하게 내리치고 물러났다. 방망이는 두 동강이가 났고, 파편은 정의윤의 오른발에 맞고 앞으로 튕겨나갔다.

정의윤은 볼카운트 0B-1S서 2번째가 박근영 주심에 의해 스트라이크로 선언되자 불만을 품었고, 헛스윙 삼진 후 분노를 폭발시킨 듯 보였다. 이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여부는 각자 응원하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다만 터무니없는 공을 주심이 스트라이크로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볼로 줘도, 스트라이크로 줘도 무방한 보더라인 피칭이었다.

석연찮은 장면은 그 다음에 나왔다. 정의윤이 화를 내며 덕아웃으로 돌아가는데 주심이 쫓아갔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본 SK 코치들이 즉각 뛰쳐나와 주심을 말리면서 더 큰 불상사로는 번지지 않았다. 정의윤에게 ‘경고’만 주어지고 일단락됐지만, 이 과정에선 적잖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왜 박근영 주심은 정의윤을 쫓아갔을까. 만일 정의윤이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판단하면 불러서 퇴장을 주면 끝날 일이었다. 그럴 권리는 심판에게 있다. 야구규칙 8.01조 ‘심판원의 자격 및 권한’ (d)항의 ‘각 심판원은 선수, 코치, 감독, 또는 교체선수가 재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스포츠맨답지 않은 언행을 취하였을 경우 출전 자격을 박탈하고 경기장 밖으로 퇴장시킬 권한이 있다’가 명시돼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주심이 선수를 따라간 행동에 정당성이 없다. 선수에게 설득할 내용도 아니었다. 스트라이크-볼 판정은 어디까지나 심판의 결정이 최종인 재정이라고 야구규칙 8.02조 (a)항은 강조한다. 선수와 싸우거나 토론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 행동은 이해되지 않았다.

선수는 흥분할 수 있지만, 심판은 흥분하지 않아야 한다. 야구규칙 ‘심판원에 대한 일반지시’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심판원은 가끔은 강한 인내심과 훌륭한 판단력을 요구하는 난처한 지경에 몰리는 경우가 있지만 이러한 난관을 헤쳐나가는 최우선적인 요점은 감정을 다스리고 자제력을 잃지 않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심판도 인간인 까닭에 화를 낼 상황도 생기겠지만, 심판복을 입었다면 절제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요즘 심판을 놓고 말들이 많다. 과거와 비교하면 확실히 권위가 떨어졌다. 구단들과 KBO가 자주 심판을 희생양으로 삼다보니 팬들의 부정적 시선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예전에는 그래도 심판을 이해하고 응원하려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점점 그 숫자는 줄어든다. 그 대신 로봇심판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진다. 그 결과 어떤 일이 파생될지 심사숙고하지 않은 채 너무도 쉽게 심판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억울하다면 심판들 스스로도 권위를 지켜야 한다. 잘못해놓고도 쓸 데 없이 우기라는 얘기가 아니다. 명백히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고, 그 책임도 지는 당당한 자세가 절실하다. 이런 것이 없으면 심판은 더 빈번하게 동네북이 될지도 모른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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